잘라먹고 따붙이고 섞어 말하기
나는 해외에 살면서 영어가 딸리는 게 문제지 모국어인 한국어만큼은 상급 이상에 속한다는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다. 말과 글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1) 매우 그렇다 2) 대체로 그렇다 3) 조금 그렇다 4) 전혀 그렇지 않다... 에 최대한 겸손한다 해도 2) 번은 찍을 수 있으리라. 더욱이 나는 한자를 배운 세대여서 사자성어를 비롯하여 웬만한 빈출 한자어에 긴장하지 않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처음 접한 단어라도 개별 한자의 뜻으로 전체 단어의 뜻에 대한 유추가 가능하다.
그런데 최근 모국어마저 딸리는 현상이 느껴진다. 수년째 해외에 살면서 영어가 일취월장하느라 모국어를 압도해서는 절대 아니며 주로 영어로 생활하다 보니 모국어 쓸 일이 줄어들어 도태된 경우도 절대 아니다. 다만 언중이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세태를 반영하여 변형 및 창조한 탓이라 본다. 다음과 같이.
뒷부분을 잘라 말하는 경우.
'엘리 앞이야.'
'엘리 잡아놨으니 빨리 나와.'
엘리? 요즘 다시 인기 많은 'frozen2'의 엘사는 안다만?
'내가 스벅에 갔는데...'
스벅? 듣는 순간 내 아버지가 바지를 일컬을 때 쓰시던 '쓰봉'이 떠올랐다.
음쓰.
음쓰? 수영에서 호흡 배울 때 하는 음파- 음파-의 일종인가?
음식물쓰레기란 설명을 듣고 하도 의외라 뿜을 뻔했다.
슈스케.
슈스케? 새로 나온 아이스케키 이름인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시케의 어릴 때 헤어진 동생인가?
연말에 개봉한 영화 '천문'에 대한 기사를 읽다가 배우 한석규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뿌나 이후 두 번째 맡은 세종역...'이 있었다. 뿌나? 헤나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말이겠지?
영어는 이니셜을 쓰는 경우는 많아도 뒷부분의 철자를 날려버리고 짧게 말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영어의 경우 신생 어휘가 아니라도 딸리는 게 맞기 때문에 확신할 수 없지만. 주유소(gas station)에 가서 기름을 넣을 때 종종 궁금해하곤 했다. 왜 기름을 gas라고 할까... 그렇다면 그런가 보지 하면서 딱히 물어서 알려고도 찾아보려고도 하지 않은 채 그냥 기름을 넣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셀프'주유를 하는 도중 노즐을 붙들고 불현듯 유레카! 를 외치듯 깨달았다. 아, gasolin.
새로운 말들을 접하면 꼭 짐작을 해보고 이래저래 궁리를 하며 유추를 시도한다. 그런데 도저히 모르겠는 말들도 있다. 다꾸와 인스.
다꾸? 혹시 타코야키? 다꾸앙? 설마 탁구를 변형시켜 말하는 건 아니겠지?
인스? 인스타그램을 줄였지 또?
다이어리 꾸미기와 인터넷 스티커란다. 다이어리 꾸민다는 게 어떤 건지 모르고 인터넷 스티커를 본 적도 없기에 이건 처음부터 짐작 불가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웃어넘길 수 없는 말들도 알게 됐다. 휴거 빌거 이백충.
휴거? 20세기 끝자락에 널리 퍼졌던 지구 최후의 날이 21세기 버전으로 또다시? 공공 임대주택인 '휴먼시아'에 사는 거지를 일컫는 말이란다. 빌거라길래 '빌어먹는 거지'인가 했더니 빌라사는 거지라고. 빌라가 어떤 주택형태를 말하길래 그런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인지. 그나마 이것들은 사람으로는 여겨주는데 이백충은 월소득 이백만원 이하인 벌레라는 설명에는 벌레씹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면 끊이지 않는 성폭력 범죄자들은 성충 또는 색충이라 부르면 마땅하겠네. 나는 뭐가 될까. 해거? 또는 해충? 해외사는 거지 또는 벌레.
아름답지 않은 세상인심으로 그렇게 누군가를 멸시하고 짓밟는 말로 지어 부르면 어떤 쾌감이 있는 건가.
참 입맛 더럽게 씁쓸해질 뿐이다.
나와는 달리 어린것들은 이런데에 민감하고 저들 스스로의 언어생활에 도입도 스스럼이 없어 보인다.
어쩌면 그런 말들을 안 쓰면 '라테'세대라도 되는 줄 아는 것인지 아님 '힙'하게 느끼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느 날, 아이가 무슨 말을 하면서 이렇게 시작했다.
"내 좆부심인지는 모르지만..."
뭔부심? 좆부심? 이거 또 새로운 건데?... Let me see...좆부심이라...
맨날 그게 뭔데? 만 남발하기도 자존심이 상해서 순간 분발해야겠다는 의욕이 솟아서 열심히 생각했다.
"푸하하~ 너 네 좆에 자부심이 있다고?"
평소 같으면 일음절로 된 그 민망한 순 우리말을 입에 올리기 껄끄럽겠지만, 옛말에 신체발부 수지부모라 했거늘 한발 더 나아가 자식 놈이 본인의 특정부위에 자부심을 갖는다는데야 에미로서 어찌 흐뭇하지 않을런가. 떡볶이를 먹던 아이가 사레들린 듯 기침을 해대며 얼굴이 벌개졌다. 이거, 아닌가?
날로 새로 생기는 이 희귀한 신생 어휘들을 습득하기란 참 벅찬 노릇이다.
모르는 채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아니면 내 영어처럼 띄엄띄엄 알아먹고 살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