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이 너희를 우쭐케 하리라?

차별함으로써 우월함을 확인하고자 하는 인간의 찌질함

by 대륙의 변방

인종차별. 캐나다나 미국 같은 이민국가에서 이 말처럼 민감한 말이 또 있을까. 만일 누군가 'racist'라는 말을 들으면 자신은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야 말겠다는 듯 결연한 의지를 보일만큼 퍽 민감한 이슈다. 직장이나 일정 규모의 조직에서 이런 말이 불거져 나온다면 직장문화 차원에서 이보다 심각한 사안이 없는 것처럼 취급될 만큼 매우 '불미스러운' 주제 되겠다.


민감한 만큼 미묘한 것이기도 하다. 지금은 아주 오래 전의 미국처럼 흑인은 열등한 존재로 규정해 놓고 한 버스를 타도 백인석 흑인석 따로 지정이 돼 있던 시절이 아니다. 제도적으로,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사항이라 대놓고 하는 경우는 사실 드물고 인종차별적 관념이 무의식으로 작용해서 의도하지 않은 가운데 사람들의 행동이나 말에 나타나는 경우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느냐다. 혹은 인종과 관련해 감정적으로야 기분 나쁘지만 그것이 딱히 인종차별이냐 아니냐 논란이 되는 사례는 드물지 않다. 이를테면 스타벅스 매장에서 주문자를 식별하기 위해 동양인 고객의 컵에다 추켜올린 눈으로 표시한다든지 중국인을 일컬어 '칭칭총총' 따위의 의성어로 비하한다든지.


visible minority & non native English speaker

캐나다에 오기 전, 무슨 도움이 될 거라고 <캐나다 사회>라는 세상 지루하기 짝이 없는 책을 구입해 읽었는지 모르겠다. 그 두꺼운 책을 꾸역꾸역 읽고 나서 내게 남은 새로운 '정보'는 딱 하나. 나는 캐나다 사회에서, 'visible minority'로 분류된다는 것. 즉, 해외에서 태어난 소수 유색인종, 그것이 캐나다 인구센서스상에 내가 속해있는 카테고리다. 더불어 non native English speaker 또한 나의 획득된 아이덴티티 되겠다.


'유색인종'이란 말은 사실 내 관념에 들어있는 표현일 뿐이다. 한국에서 살면서 더러 들어본 말이기 때문에. 사실 'visible minority'라는 말 자체에는 피부색 개념은 들어있지 않다. 그럼 한국에서 흔히 유색인종이라 할 때 누굴 일컫는가. 동남아 지역이나 흑인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인종 개념은 'white'를 기준으로 두고 그다음 우리 자신을 놓는데 여기까지는 색을 거론하지 않다가 그다음부터 짙은 순서대로 배열한 다음 유색인종으로 통칭하는 거다. 물론 이 서열은 순전히 우리 내부에서만 암묵적으로 작용하는 기준이다.


그러면 서구에서는 어떨까. 그들이 아무리 합리를 지향하고 과학문명을 일으킨 주역이라 하더라도 그들이라고 일상의 마음작용이 별다를까. 마찬가지로 비합리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보통의 인간 일터. 그들 자신을 가장 우위에 놓고 yellow든 brown이든 black이든 다 통틀어 유색인종으로 인식하지 않을는지.


인간들의 인식상에 존재하는 대략의 인종 서열도(?)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을 살펴볼까. 한국을 단기간 방문하거나 장기간 거주하는 백인들은 한국인들을 마치 지구 상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들쯤으로 여기지 않을까. 반면 우리가 함부로 쓰는 말로 소위 '못 사는 나라' 출신 일부 유색인종들은 '사장님 나빠요'나 '때리지 마세요'를 가장 먼저 배우면서 한국인들이 그들 말고 다른 누군가에겐 한없이 '프렌들리'한 사람들이란 걸 알까.


한편, '다문화' 사회인 캐나다에서 피부색이나 겉모습으로 인해 기회나 대우면에서 차별이나 불이익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 같다. 요즘 세상에, 제도나 규정에 반하면서까지 인종차별 행위가 행해질리는 없을 테고, 인간 심리 차원의 비열함에서 비롯된 미묘한 어떤 부분이 작용하여 교묘하게 이루어질 가능성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밖에 일상에서 일어나는 밸꼴리는 꼬락서니? 참 숱하지.


일찍이 우리는 한국에서 아무 근거 없이 'white' 다음으로 우리를 포지셔닝한 바 있으며 그것에 별 문제의식이 없이 살아오다가 그들이 'majority'인 곳에 살게 되었다 이거다. 크게 의식하진 않았어도 이들에겐 '친절'인지 '주눅'인지 모호한, 어쨌든 호의를 가지고 대한다 이거다. 문제는 평소 우리 다음이라 설정했던 인종들이 우리를 무시한다 느껴지면 백인이 그랬을 때보다 더 발끈하게 된다는 것. 그들은 전혀 우리 내부의 암묵적인 서열도를 알지도 못하고 동의한 바 없는데도. 흑인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우리 처럼 백인 다음으로 자기들을 포지셔닝한다는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일인자의 자리는 차마 아무도 안건들이고 이인자를 놓고 도토리 키재기 하는 형국이라니 참.


인종 차별인가 언어 차별인가

다른 한 편의 관점으로는, 인종 자체라기보다는 어쩌면 언어 차별일 수도 있다. 언젠가 한국에서 사는 외국인이 방송에 나와하는 이야기인즉슨, 한국인들은 모두가 친절한데, 자신이 한국어를 서툴게 말하는 것을 보고 신기해하면서도 마치 생각하는 것도 어린아이인 것처럼 여긴다고. 한국에서 살면서 서툴고 낮은 수준의 한국어를 사용하는 외국인(백인)의 경우, 한국어를 그만큼이라도 하는 성의에 대견해하는 시선이 향하기 일쑤다. 베트남인 아내에게 한국말을 못 한다며 폭력을 휘두르는 한국인 남편의 영상이 인터넷에 올라 여론의 분노를 산 경우와 대조적으로.


반면, 영어권 국가에 사는 non native English speaker가 '짧은' 영어를 구사할 때 앞에서와 비슷한 오류가 빚어질 수 있다는 거다. 차이가 있다면 한국의 외국인이 어린아이 취급을 받으며 원치 않는 도움을 강요받는 반면 여기서는 'stupid'하다는 이미지와 함께 언어 외적인 부분까지 평가절하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실제로 은근히 white supremacy(백인 우월주의)를 가지고 'bossy'한 태도를 보이는 인간도 보았고 인종 불문하고 백인에게 대할 때와 나에게 대할 때 태도와 행동이 다른 인간도 겪어 보았다. 이런저런 온갖 유형의 인간들이 어우러져 사는 사바세계에 살자면 도인이 될 것인지 쌈닭이 될 것인지는 순전히 나의 선택이긴 한데...


인종차별을 둘러싼 수많은 잡음들, 결국은 서로 다른 것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문제이고 아울러 그에 대한 태도가 아니겠는지. 차별함으로써 우월함을 확인하고자 하는 인간의 찌질함 외 그 무엇도 아닌.

가끔 떠올리는 게 있다. 온 인류가 사라지고 무인도에 딱 두 명의 인간이 남는다면? 거기서 무엇을 따질텐가.

니나 내나 그저 인간종인 것 밖에는.



<배경 이미지 출처. www.depositphot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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