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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진 Oct 29. 2019

캐나다 야구장에 없는 네가지

'야알못'의 눈에 비친 한국 야구장과 캐나다 야구장 

인터넷 뉴스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야구장에 가서 관중들로부터 야유를 받았다는 기사를 보았다. 대체로 조용했을 것 같은 야구장에 울려 퍼지는 야유는 얼핏 마치 응원처럼 들리지는 않았을까 하는 객적은 농을 떠올리다가 '야알못'인 내가 한국 야구장과 캐나다 야구장에 가보고 느낀 점들이 떠올랐다.  


야구하면, 특히 프로야구 하면 '삼성 vs 라이언스'를 말하는 수준이던 내가 프로야구에 심취한 아들놈 덕에 야구장에 따라다니는 처지가 되었으니 21세기 신 삼종지도라 일컬을 수 있을까. 


아들녀석의 프로야구 사랑은 유별나다. 수년 전,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고 공식발표를 했을 때 녀석의 표정이 침울해지더니 굵은 한 줄기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캐나다엔 도대체 왜 가아...' 예상치 못한 반응에 적잖이 당황했으나 차분히 캐나다에 가기 싫은 이유를 물었었지. 요약컨대, 사랑하는 한국의 프로야구를 등질 수 없다는 것. 캐나다엔 한국 프로야구를 능가하는 메이저리그라는 것이 있단다 아들아. 메이저리그. 들어는 봤느냐. 한국의 뛰어난 선수들의 꿈의 무대, 아 메이저리그. 네 정녕 그곳에 가보고 잡지 않느냐 아들아...비굴할만치 달래고 꼬시고... 
출국을 며칠 앞두고 선산에 갔다가 들른 곳도 광주 무등 경기장이었다. 아니, 경기장을 가기 전에 선산에 잠시 들른 것이 차라리 맞는 말이겠다. 당시 새로 짓고 있던 경기장엘 조만간 꼭 다시 찾으리라 염원하며...징헌 넘, 아조 징헌 넘. 

캐나다에 와서도 낮과 밤이 거꾸로인 경기 시간대 맞추느라 새벽에 일어나 경기 챙겨보려드는 녀석과 참으로 실랑이도 많이 했다. 어느날 학교에서 토론토에 있는 로저스 센터를 다녀온 날, 난생처음 보는 돔구장에 '헐 ~ 대박!'이라는, 대한민국 10대들이 할 수 있는 찬사의 전부를 쏟아붓긴 하면서도, 뭔가 2% 부족한 그 무엇이 녀석으로 하여금 한국 프로야구 경기장을 더욱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그러던중 오매불망하던 지난 한국 방문 때, 녀석에게 있어 벼르고 벼른 하이라이트는 바로 야구 경기관람이었다. 떠날 당시의 염원은 못이루고 대신 서울의 잠실야구장엘 갔다. 기아 타이거즈 대 LG 트윈스의 경기. 녀석은 시즌이면 기아의 경기 실적에 따라 희노애락을 함께 하는 기아 타이거즈 왕팬이다. 올해는 기아가 영 실적이 안좋아 녀석의 애간장은 타들어가는 모양새였다. 


드디어 경기 시작 시간이 되고 애국가가 울려퍼질 때, 옆에서 흘깃 본 녀석의 표정은 마치 세상에 존재하는 자랑스러움이란 자랑스러움은 다 그 얼굴에 담은 듯 했다. 경기가 시작되고 얼마 안있어 녀석을 못내 아쉽게 만들었던 그 2%의 정체가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다. 

워워워 워워워 미치도록 사랑한다 기아 타이거즈
최 강 기 아 타 이 거 즈 미치도록 사랑한다 


힘찬 응원단장의 구호아래 팀응원가는 물론 선수 개인별 응원가까지 울려퍼지는 경기장은 벌써 후끈하다. 
그 뿐인가. 2스트라이크인 상황이면 '삼진 짝짝짝'에 '삼~구 삼진'의 응원구호, 
또 투수가 상대팀 주자에게 견제구를 던지면 바로 터져나오는 야유에 그에 맞선 상대팀 응원석에서 날아오는 역견제응원이 얼마나 재밌는지. 가끔 톡쏘는 양념처럼 등장하는 풋풋한 청춘들의 현란하고도 파워풀한 치어리딩까지. 고래, 바로 이 맛이디! 

10시가 넘은 늦은 밤시간, 경기가 끝나고 쏟아져 나오는 인파속에 흥분기가 가시지 않은 녀석이 하는 말. 자기는 이담에 커서 캐나다 말고 한국에 다시 와서 직장생활하며 살면서 기아의 모든 경기를 다 쫓아다니며 살 생각도 하고 있다나. 아, 이런 단무지같은 미숙한 수컷을 어쩐디야...  

지난해 이맘때 볕좋은 어느 가을 날, BLUE JAYS 대 BOSTON RED SOCKS의 경기를 보러 로저스 센터에 갔다. 나는 경기를 보러간건지 그 '대박'이라는 돔구장을 구경간건지 암튼 이 미숙한 수컷을 아직은 따라다녀 주고는 있다. 일요일이어서인지 한국에서보다 더 웅장한 객석, 아니 관중석에 꽉찬 사람들은 온통 BLUE. 






캐나다 야구 경기장엔 없는 네가지.  

첫째, 응원 막대가 없다. 
둘째, 배꼽티입은 날씬한 젊은 여성이 없다. 한국에선 치어리더나 시구하는 이나 배트 주워오는 이는 다 아리따운 처자던데... 
셋째, 응원가가 없다. 
넷째, 치킨 먹는 사람을 못찾았다. 

다시 잠실 야구장. 
경기가 후반을 넘어 끝으로 향해갈 무렵, 응원은 무르익어 클라이막스에 다다르면 이젠 2%를 꽉 채우고도 흘러 넘쳐 응원석은 결속력으로 끈끈해지는 순서가 아닐까.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 열차에 흔들리는 차창 너머로 
빗물이 흐르고 내 눈물도 흐르고 잃어버린 첫사랑도 흐르네 
깜빡깜빡이는 희미한 기억속에 그때만난 그사람 말이 없던 그사람
자꾸만 멀어지는데 
만날순 없어도 잊지는 말아요 
당신을 사랑했어요. (기아) 


후끈후끈 왁자왁자한 경기장을 걸어나오면서 녀석이 내게 그런다. 남행열차 부르는데 옆에서 엄마 목소리가 커지더라며 엄마가 어떻게 기아 응원가를 그렇게 잘 아냐며. 아들아, 그만한 일로 네 어미가 다시 보이더냐. 대단찮은 일로 그런 존경의 눈빛을 받으니 심히 쑥스럽구나. 아 이것참 쑥스럽대두... 

단순하고 미숙한 수컷은 대한민국 중장년층의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1위가 남행열차인 것을 모르기에 제 엄마가 기아 응원가를 불렀다고 여긴채, 그날 에미와 아들은 하나가 되었다.
흐흐흐 아들아, 그거 아느냐? 

내가 K-POP을 모르지 뽕짝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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