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네 세상 어디에 있느냐?"

화장실 짬짬이 독서에서 건진 한마디.

by 대륙의 변방

혹시 화장실에서 뭐해? 아 참, 화장실에서 뭐하냐고 묻다니. 다시 물을께. 그러니까 화장실에서 하게돼있는 본질적인 업무와 동시에 하는 일로 뭐 있냐고. 예전엔 신문보는 사람, 책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겠지만 요새는 핸드폰이 압도적일 거 같은데.


나? 난 좀 된 세대잖아. 그니까 책을 들추는 쪽이지. 근데 참 매번 놀라운건 말야. 난 정말 오래 머물지 않는편이거든. 그런데도 한 권을 세월아 네월아 그냥 놔두다 보면 끝을 보긴 한다는거지. 거북이가 완주하는 이야기지. 얼마전에 한 권을 끝냈어. 한국의 서점에서 주문해서 배편으로 배송받아 오는데 몇 달이 걸렸는데 화장실에 놔두고 야금야금 읽은 것도 얼마인지 헤아릴 수도 없어. 그래도 뭐 어때, 급히 다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없으니까.


그래서 이번엔 뭘 놔두고 짬짬이 야금야금 읽을까 하고 고르는 것도 은근 재밌는 일이야. 오래전에 캐나다에 올 때 사온 동양 고전이 있는데 여태 손도 안댄게 있거든. 맹자라고 들어는 봤지? 그걸 왜 사들고 왔나 모르겠어. 한국에서 논어는 읽었었으니 마치 당연한 수순처럼 맹자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 공자왈 맹자왈...그러잖어. 그리고 또 있다? '사기'라고. 서양땅으로 이민길에 오르면서 동양의 고전들을 챙긴 사연! 모르겠어. 흔히 맨 땅에 헤딩질한다는 이민자의 고된 삶을 동양의 지혜를 등불삼아 헤쳐가려는 심산이었을까?


근데 며칠 놔둬봤다가 다시 책장에 도로 꽃았어. 왜그런지 영 잘 안읽히더라고. 그래서 결론을 내렸지. 아, 내가 해봐서 아는건데, 화장실에서 맹자는 좀 아니더라! 흐흐.. 맹자 도로 꽂은 바로 옆에 책이 눈에 띄더라고. 바로 법정스님의 '오두막 편지'. 들고와서 펼친데가 내 눈에 들어왔고 이게 기가 막히게 시의적절해요. 들어봐봐.


"너는 네 세상 어디에 있느냐?

너에게 주어진 몇몇 해가 지나고 몇몇 날이 지났는데,

그래 너는 네 세상 어디쯤에 와 있느냐?"


마르틴 부버라는 사람이 쓴 '인간의 길'에 나오는 말이래.

법정스님은 책에서, '이 문장을 눈으로만 스치고 지나치지 말고 나직한 자신의 목소리로 또박또박 자신을 향해 소리내어 읽어보라'고 권하고 있어. '자기자신에게 되묻는 이 물음을 통해서 우리는 각자 지나온 세월의 무게와 빛깔을 얼마쯤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 물음을 통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진정한 자신의 소리를 듣게 될 것'이고 '삶의 가치와 무게를 어디에 두고 살아야 할 것인지도 함께 헤아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어. 어때, 좀 숙연해지지않아?


함 진짜 소리내에 읽어보자고.

너는 네 세상 어디에 있느냐?

너에게 주어진 몇몇 해가 지나고 몇몇 날이 지났는데,

그래 너는 네 세상 어디쯤에 와 있느냐?


하아~ 12월도 끝자락에 접어드는 이즈음에 우리 안을 살펴보자고. 고요히...

오늘은 그리 수다스럽지 않았지? 때가 때이니만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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