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두수미 해프닝

희망찬 새 해, 용두사미 아닌 칼두수미 해프닝으로 시작하다

by 대륙의 변방

연말연시, 이젠 지났다고 봐야하려나? 나 어릴적엔 울나라가 '신정연휴'라 그래갖고 딱 3일이 휴일이었어. 이제 그 기간이 지났으니 내 무의식엔 '연말연시의 느슨한 기간 끝'이라고 여겨지는고야. 내가 그 기간에 한게 뭔지 알아? 평소 엄두가 안나서 안해먹던 거 덤벼보기. 그래서 한게 탕수육, 프라이드 & 양념치킨, 뭐 그딴거.


난 튀김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그래서인지 잘 모데요...한국에 살 때도 치킨 배달 이런거 잘 안했었거든. 근데 해외에 살면서는 프라이드 치킨, 나아가서 양념치킨 이딴 것들이 마치 한국음식의 대표선수인것 같더라?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치킨집이 있는데 이게 넘 비싼거라. 가성비라 그러지? -요즘엔 또 다른게 보이더라만. 가심비? 이건 아직 습득을 못했어- 그게 영 아니야. 양이 넘 적고 가격이 비싼거야. 그래서 내가 팔을 걷어부쳐 보기로 결심한거지.


'하고자 하는 자에겐 하늘 아래 못할 일 없으리니 다만 하고자 할지니라'를 모토로 지난 연말 탕수육부터 시작했어. 음...제법 괜찮았어. 마치 배달시켜 먹는 것처럼 바닥에 늘어놓고 한국 영화를 감상하면서 느슨하다못해 늘어지는 기분으로 입도 즐겁고 눈도 즐거운 시간을 가졌지.


그 다음 연시엔 치킨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어. 허벅지 부위(가만, thigh라는데 닭의 허벅지가 어디지 도대체?)와 날개부위를 넉넉히 사다가 밑간을 하면서 난 자신감에 충만했지. 나로선 처음 해보는거고 사실 배달 치킨도 먹어본적이 많지 않은터에 그나마 '먹어본게 실력이다'를 억지 주장하며 도전한거지. 여기서 그 '적은 양 + 비싼 가격'에 한맺혀 엄청 많은 양을 튀기는데 아주 몸서리쳐지게 지겹더라고. 기름은 튀지 펄펄 끓는 기름 웅덩이에 튀김옷 뒤집어 쓴 닭고기 조각들을 넣어도 넣어도 주는것 같지가 않지... 암튼, 난 끝을 봤어. 스토브 주변이 온통 난리가 되긴 했어도 어쨌거나 성공적으로 마쳤어. 녀석들의 입밖으로 "이거 진짜 맛있다" 를 끌어냈으면 된거 아니겠냐고.


지난 연말에 탕수육을 먹을 때는 '베테랑'을 봤고 이번 치킨을 먹으면서는 '베를린'을 봤거든. 글고보니 이번 연말연시엔 '류승완 감독 특별편성'이었구나. '군함도'도 봤으니. 베를린에서 북한 사투리를 접하다보니 먹으면서 짬짬이 생색을 내는데 말이 이렇게 나오더만. "야 고조 니 오마니 음식솜씨가 상당하지 않네? 내 이렇게 잘할줄 나도 몰라써야." 하면 녀석들이 치킨을 씹다가 돌아보며 "엄마 쫌"하는 눈빛으로 날 쏘아봐.


자 이젠 연말연시 마무리 시간이야.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물었지. 기름진 걸 많이 먹었으니 된장찌개를 먹고잡은지 칼국수를 먹고잡은지. 만장일치로 칼국수였어. 근데 지난 두 번의 성공체험으로 또 도전을 하기에 이른거지. 칼국수의 면을 직접 맹글어보기로 한거야. 내 머리속엔 휘리릭 영상 하나가 펼쳐져. 음, 반죽해가 밀어가 썰어가 펄펄 끓는 멸치국물에 뿌리듯이 넣어 익어가는 그 그림 있잖아.


야심차게 반죽을 해서 나름 어디서 본건 있어가지고 숙성? 그거 한답시고 랩을 씌워 놔두기도 했고 자 이제 면을 밀 차례야. 밀대가 있을리가 있겠어? 나름 긴 와인 병이 있어서 씼어서 그걸로 밀었어. 왜 무슨무슨 장인들 하는 프로그램에서 하는대로 있잖아. 쭉쭉 밀어서 척척 한 두단 접어설랑 빠르게 칼을 놀려 착착착 좁다랗게 썰은 다음 죽 들어올리면 길다랗게 국수가락이 나오는거. 어라? 나는 그게 안되네? 엔간히 민다음에 폼나게 두번쯤 접은 다음 나도 속도는 느리지만 그 장인들처럼 썰었걸랑? 근데 밀가루를 뿌렸는데도 그게 딱 붙어버렸숴! 앗, 이런 예상치 못한 결과라니.


음, 국물은 이미 팔팔 끓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하다간 아무래도 날을 새거나 전혀 다른 그림의 음식이 나올거 같더라고. 해서 얼른 계획을 수정한그야. 안되겠다, 같은 출신성분으로 할 수 있는 것. 얇고 길게 써는 일이 안될 것 같으면 얇게 뜯어서라도 넣을 수밖에! 수제비로 바꾼거지.

감자가 들어간 수제비가 아닌 호박이 잔뜩 들어간 수제비로 거듭 태어났다고나 할까. 하하. 여기저기 튀어 기름 투성이가 된 대신 이번엔 여기저기 허연 밀가루로 난장판이 된끝에 칼국수가 되지 못한 수제비를 먹어야했지.

"그동안 계속 튀김을 먹다가 국물 맛이 아주 담백하고 시원하지 않니?"를 억지 선동하면서...


에이 마지막도 성공체험으로 마무리했으면 좋았을텐데. 희망찬 새 해를 '용두사미' 아닌 '칼두수미'의 해프닝으로 시작하다니.

이젠 밀가루, 기름 이런거 말고 평범한 밥으로 돌아가야 할 때라고 봐. 모름지기 일상은 밥이고 밥은 일상일지니...

돈츄띵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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