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붓는 속편 홍보 기사에서 건진 보석같은 한마디는
섹스 앤 더 시티란 미드, 들어는 본 적 정도가 아니라 아주 잘 알거라 생각되는데. 맞지? 이번에 속편이 만들어진 것도 알리라 생각돼. 근데 이건 왜 속편(sequel)이라 불리우는건지 모르겠어. 시즌 XX 라 하지 않고 말이야. 한국에서 본편이 방송되던 오래 전, 야심한 밤에 다림질같은 거 하면서 더러 본 적이 있지.
그게 미모와 재력을 갖춘 30대 뉴욕녀들의 이야기잖아. 딴건 별로 걱정없어 보이는 그들의 사랑, 우정, 삶에 관한 섬세한 감정과 심리들이 더러 공감되기도 하고 또 패션에 목숨거는 명품족 그들의 옷구경, 신발구경, 그리고 그들이 잘 차려입고 쇼핑백 주렁주렁 들고 활보하는 뉴욕거리 구경에 눈이 즐겁기도 하기에 더러 봤었던 기억. 어쨌거나 난 절대 팬은 아니었지.
각기 다른 분야에서 나름 잘 나가는 그녀들 네 명의 친구들이 주말이면 갖는 브런치 회동으로 한국의 주부들 사이에서도 브런치 모임 붐이 일었었다는 것도 기억나네. 늘상 이야기의 끝부분엔 캐리의 나레이션으로 마무리를 하잖아. 그 내용은 여성으로서 공감할만 한 것이기도 했었지만 난 다리미 코드를 뽑으면서 늘 내뱉던 것 같아.
그래서 뭐...
그들의 화려한 삶을 구경하다가 내려다 보면 납작 펼쳐진 남편 '와이샤쓰'의 구김이 꼭 그들과 대비된 내 남루한 삶의 상징같아서 말이지. 암튼. 마치 요즘 sns 속 남들은 다 멋지고 빛나는데 나만이 지지궁상인 것 같은 그 대비 말이야.
그런데 12월 초에 첫 방송을 앞두고 몇 달 전부터 얼마나 포털 사이트에 도배를 해댔는지 알아? 하루에도 족히 대여섯 개의 기사가 올라오는거야. 첫 편이후로 십수년이 흘렀으니 배우들도 나이가 꽤 들었을거 아니야. 내가 그 많은 관련 기사에 번번히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단 하나였어. 관련 사진을 보면 같이 나이들어가는 입장이란 유일한 공통점이 두드러져서. 흐흐흐 그럼 그렇지 당신들도 늙는군요...하는 저열한 안도감 같은거?
자, 내가 그동안 섭렵한 그들의 무차별 기사 폭격의 내용들을 늘어놔 볼까. 사만다 역을 맡은 킴 캐트럴과 캐리역의 사라 제시커 파커는 사이가 안좋았다며? 킴의 오빠인가가 죽었을때 애도를 표하는 사라에게 고맙다는 말대신 사람좋은 척 하지 말라며 거절한 사연을 들면서 속편 제작 결정이 났을 때 사라와 함께 작업하기 싫어 출연을 고사한 이야기, 거기에 캐리의 남편 역을 맡은 크리스 노트는 킴의 생각이나 감정에 대해 알지 못하지만 내가 아는 사라 제시카 파커는 그런 사람 아니다 라고 했다는 이야기. 그 공백을 메울 다른 캐릭터에 관한 이야기, 극중 그녀들의 게이 친구역을 맡았던, 암투병후 세상을 뜬 동료배우 그리워하는 이야기, 그들의 나이들어감에 관한 견해, 그리고 첫 에피소드가 나간 다음엔 이런 기사도 있었어. 캐리의 남편인 미스터 빅이 심장마비로 죽는 것으로 끝났나보지? 극중에서 보이는 미스터 빅의 식습관이 심장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심장전문의의 코멘트 등등 많고 많아.
그런 것들을 읽으면서 나는 궁금했어. 이 드라마가 내가 몰라서 그렇지 어마어마한 관심과 인기를 끄는 드라마였나? 팬들은 정말 이런 기사에 목말라하며 방송날짜를 손꼽아 기다릴까, 아님 단지 홍보팀들의 적극적 홍보활동의 산물일뿐일까. 2년 째 계속되는 팬데믹 상황에서 백신 다 맞은 동료가 아침에 일하러 왔다가 양성반응이 나와 바로 집에 돌아가는 것을 보고 와서도 나는 그들의 기사를 접했고, 나자신이 세번째 백신을 맞은 날 밤에도 나는 그 기사를 읽어야 했어. 새 변이 오미크론이 나타났다는 기사 바로 아래는 또 섹스 앤 더 시티, 그 아래는 어느 곳에선가 홍수로 전 지역주민이 대피해야 했다는 기사가 이어지더라. 아, 섹스 앤 더 시티, 섹스 앤 더 시티... 이러다가 코로나 바이러스는 섹스로 인해 감염된다는 환각이 생기면 어떡하나 싶다니까. SATC 피로를 넘어 화가 날 지경일 무렵 어느날 정말 마음에 드는 내용을 접했어.
극중 변호사인 미란다는 50대의 나이에 인권을 연구하기 위해 대학원을 가기로 했대. 전편을 삐딱하게 보던 내가 그나마 네 명의 여인네중 가장 마음이 가는 캐릭터가 미란다라는 것을 깨달았어. 미모와 젊음, 그리고 남자에 안달하지 않는듯 하면서 가식없이 삶에 발을 딛고 단단히 선 자에게서 풍겨나오는 성숙한 매력에 끌렸달까. 푸하하~ 뭐라는 것이여 시방. 완전 미란다 팬이구만 뭐. 이름만큼 귀여운 여인 샬롯이 넌지시 충고 또는 권유를 하지. 학교로 돌아가기 전에 소싯적 아름다웠던 빨간머리로 돌아가는 것은 어떠냐고. 흰머리를 염색하지 않고 그대로 놔둔 미란다 가라사대,
"이 세상엔 젊어 보이려 애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많아."
역시 미란다, 했어.
그리고 나는 그 섹스 앤 더 시티에 이 말을 고대로 돌려주고 싶어졌지.
"이 세상엔 섹스 앤 더 시티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많다"고. 속편도 부디 성공하시라고, 다만 이젠 뚜껑 열렸으니 볼 사람들은 볼 것이고 그중 열광하는 사람들은 뜨겁게 호응할 것이고, 사는게 바빠 미쳐 못보는 이들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다만 섹스 앤 더 시티가 마치 세상의 중심인듯 쏟아붓지는 마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