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제목에 끌려서

by 대륙의 변방

혹시 새 영화 '헤어질 결심' 봤어? 나? 물론 아직 안봤지. 아니 못봤지. '볼 결심'이야 진즉 한 상태고. 내가 그 영화를 보려고 마음먹은 이유는 세가지야. 첫째, 신선한 제목에 끌려서. 이게 열중 반 정도의 비중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어. '결심'이 반 아니겠어?


영화 '헤어질 결심' 이 깐느 영화제에 출품? 혹은 초대인가? 되었다고 한 소식을 접했을 때도 내가 꽂힌 건 전적으로 제목이었어. 헤어질 결심이라니. 요즘 많이 보이는 제목 스타일로 했다면 어땠을까. 이를테면 이렇게. '헤어지기로 했다' 또는 '헤어지기로 한 이유' '헤어지기로 했다고?' 푸하하. 요즘 이런 류의 제목들에 잔뜩 물려있기 때문에 영화제목마저 그랬다면 나를 끌어당길 수는 없었을거야. 아무튼.


헤어질 결심, 하면 커플에게 권태기가 찾아오고 징글징글 싸워대다 자연스런 수순으로 보여지진 않잖아. 지난 1980년대 라디오에서 틀면 나오던 이정석의 '사랑하기에 떠나신다는' 삘 외에도 뭐가 더 있는 느낌? 애잔하기보다 결연한 그 무엇을 깔고 있다고 보이지 않아?

그리고 '헤어질 결심' 한번쯤 안해본 인생이 어딨겠어? 아니지, 어쩌면 우리 인생은 그 자체인지도 모를 일이지. 자 한번 꼽아볼까? 이별, 이혼, 나처럼 이민도 그렇고 응? 또 뭐야, 요즘 인간관계의 고민들 있잖아, 손절, 그뿐인가 이놈의 회사를 다녀 말어? 좋아 결심했어, 퇴사 등등. 하다못해 옷장안에 살 빠지면 입으리라 모셔둔 옷을 두고 아, 내 살아생전 그런 일은 안일어나지 싶다며 어느날 불현듯 찾아온 현명한 깨달음끝에 처분하기로 하는 것도 다 그걸로 볼 수 있다고 봐. 그게 다가 아니지. 우리가 애덜 키우면서 보잖아. 신발 휙 벗어던지고 쿵쾅쿵쾅 집에 들어서면서 하는 말, '나 이제 걔랑 안놀끄야' 를 몇 번 듣다보면 애들이 다 커 있는거. 봤지? 인간이라면 이 '헤어질 결심'으로부터 피해갈 길이 없어요...가만보니 아주 심오한 제목이네 이게.

암튼 본론으로 돌아와서, 제목을 접하자마자 볼 결심을 해버렸다 이거야. 본토가 아닌 곳에서 볼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야 하지만.


둘째는 박해일. 열중 셋 정도의 비중을 차지해. 박해일이라면 이거 또 봐줘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아무렴. 그렇고 말고. 난 그의 발음이 참 좋아. 난 한국 영화를 보면서도 어떨 땐 자막이 필요할 때가 있는데 박해일은 이런 면에서 전혀 불편감을 주지않지. 유노와라민?


셋째는 리뷰나 평론들이야. 난 그동안 궁금하게 생각해오던 게 있었거든. 평론하는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 이른바 '까대면' 자신의 영화에 대한 전문가적 안목이나 식견이 돋보인다고 여기는 걸까 하고 말이야. 긴 평론이나 리뷰의 글을 봐도 이건 뭐 '깜냥'도 안되는게 어디서 함부로 영화 만든다고 설쳐댔냐, 그렇게 밖에 못만드냐 하는식으로 준엄하게 꾸짖는 식도 많다고. 대중들은 재밌게 보며 너그러운 평을 하는 모습이 있는데 반해 그들이 날린 한줄평을 보면 말이지. 마치 '관객 여러분~ 당신들이 관객으로서 개 돼지의 수준이라 그런가본데 이건 그렇게 수작은 아니랍니다~'하며 깨우쳐주기라도 하듯 조소 어린 코멘트를 해대잖느냐고.


그런데 이 영화는 긴 글이든 한줄 평이든 칭찬 일색이드라? 비판 또는 다른 영화들에서 보이는 조소풍의 견해를 단 한 건도 접한 적이 없어. 아마도 평론가 전원 몰빵인거 같아. 어떻게 그렇게 다른 시각 하나가 없을까. 다들 푹 빠져 있는 것 같던데? 내 평생 그런 만장일치를 본 적이 읎어요... 그니까 평이 좋아서 보려는게 아니고 도대체 어떻길래 마치 곱게 안보는게 그들의 본분인양 하던 사람들이 한결같은 목소리를 내는지 좀 봐야겠단 거지.


암튼, 조만간 꼭 볼 수 있기를 바라. 보고나서 시덥잖은 수다를 떨 결심이 선다면 그때 다시 보자고. 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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