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속의 녹두빈대떡

by 대륙의 변방

어제는 하루종일 비가 내렸어. 어? 이건 김광석 노래 '사랑했지만'의 노랫말이잖아? 혼자 떠는 모노수다중에도 시같은 노래 가사가 줄줄 나오는걸 보니 내 감성도 죽지 않았다 이거야. 하하. 아무튼. 전같으면 눈이 올걸 이젠 2월이라고 비로 내리나? 싶었지. 진짜 출근길에도 오던 비가 퇴근길에도 내리고 있었다면 캐나다 날씨로선 의외이다 싶게 오래동안 오는 거였어. 캐나다는 있잖아, 강수량은 적지 않을듯한데 강우량은 적지 싶어. 이거, 순전히 내 느낌대로 지껄이는 말이니 너무 의구심 갖지는 말아. 아무 근거 없다고.


비 내리는 배경과 장소는 다르지만 변함없는게 뭐게? 한국에선 비 오는 날이면 라디오 같은데서 엄청 흐느적거리는 코멘트들 많이 하고 커피 타령 많이 해댔던걸로 기억해. 근데 나는 그런 정서보담 다른 쪽이 땡겼어. 갑자기 녹두 빈대떡이 그렇게 먹고싶드라. 성분이 꽤 충실한 녹두 반죽이 기름에 거의 튀겨지다시피 돼서 젓가락으로 한 입거리 집을 때 겉의 바삭한 느낌 있잖아. 그리고 입으로 옮겨오기 위해 젓가락을 들어올렸을 때 바삭한 위 아래 사이로 밖으로 삐져나온 숙주 같은 나물의 자유분방한 조화. 실제 눈을 통한 시각도 아니고 기억에서만 재생되는데도 이렇게 생생할 수가. 완전 3D야. 하도 간절하니까 막 둥둥 떠다니는 것 같잖아. 하다못해 완성된 녹두빈대떡 위에 화룡점정으로 얹혀진 어슷 썰어진 윤기도는 빠알간 고추까지 얼마나 생생한지 몰라.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먹지~~ 뭐 이런 노래가사도 있었던거 알아? 빈대떡도 빈대떡 나름이지만 그게 쉬운 일인가 어디? 특히 녹두 빈대떡이라면 더욱. 냉장고에 있는 건 달랑 힘빠져 가는 숙주. 그것에 힘입어 일을 벌인 건 참 무모함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어.


나의 야심찬 작업이 될성 부르지 않은 건 녹두의 부재 때문만은 아니야. 소싯적에도 그랬고 나이 들어가면서 실천은 여전히 어렵지만 나름 건강식에 대한 관심이 남못지 않은 사람이거든 내가. 녹두반죽은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은 설정이니 그렇다쳐도 평범하게 밀가루로 갔으면 그냥 비오는 날 부침개라도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왜 갑자기 언젠가 사둔 오트밀가루가 생각났을까. 거기에 신김치, 숙주 그렇게 막 버무렸어. 김치가 있으니 따로 간은 안해도 되겠다고 혼자서 굳게 믿으면서. 지글지글 기름에 지져낸 바삭한 식감을 상상했으면서 왜 팬에 기름은 안두르는거지? 둘렀어도 올리브유였겠지만. 강박이란 이렇게 우리 삶을 지배해요... 때로는 일을 그르쳐요...


자, 완성. 이건 뭐 처음부터 김치전을 하려던건지 뭔지 애매한 메뉴를 시식할 차례. 하는중에도 짐작이 가능했고 다 된 걸 내려다보면서도 나는 아무에게도 예의상 또는 인정상 권할 생각을 하지 않아. 이건 말이지. 지구상에 단 한 사람, 나밖에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음식이란걸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야. 기름기 없지, 밀가루 특유의 살짝 응집된(?) 식감도 없지, 거기다 싱겁지... 숙주의 아삭함과 신김치를 씹을 때 느껴지는 희미한 소금기가 나를 위로하는 전부였어. 그래도 난 남기지 않고 다 먹었어. 나한테는 그럭저럭 맞아. 물론 아쉬움은 많이 남지. 나라고 뭐 맛있거 맛있는줄 모를까봐?


오늘은 비가 내린건 아닌데 바람불고 꾸물꾸물한 날씨였어. 같은 계열의 날씨지 뭐. 여전히 기름기 잘잘 흐르는 바삭한 겉면에 자유분방하니 배합된 재료의 조화로움이 돋보이는 그 메뉴는 유효하지. 퇴근후 집에 와서 어제 한 그 짓을 또 했어. 이건 나아질 가망이 없으니 '재도전'이란 말조차 쓸 수 없는 거 알지? 그냥 똑같이 했어. 그러면서 한발 더 나아갔지. 다음번엔 두부도 막 으깨서 넣어볼까? 했다는거 아니야. 그러면 나이 들어갈 수록 더욱 요긴하다는 단백질이 더 보강되겠네 함서. 못말려 못말려.


사실 특정한 음식에는 절대 대안이란 있을 수 없다는걸 깨달았어. 단적으로 말해 건강식 버전은 없다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그 음식이 있을뿐이야. 그걸 먹으면 먹는거지 칼로리가 높네, 조미료가 많이 들어가네 어쩌고 하면서 말 많으면 못 먹는 거지. 짜장면은 그냥 짜장면이지 정제하지 않은 통밀가루로 반죽한 쫄깃한 면발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유기농 MSG 넣은 건강식 짜장면은 없어요. 떡볶이는 떡볶이지 탄수화물은 줄이고 단백질은 높일 방법? 없어요... 삶은 달걀 추가가 전부지 뭔 수가 있겠어. 다른 획기적인 게 있다면 그때는 이미 떡볶이로서 정체성을 잃게 되었을 가능성이 커. 유노와라민?

앗, 주저리 주저리 모노 수다를 떠는동안 눈이 내리기 시작했어. 비도 그쳤는데 환상속의 녹두빈대떡은 이제그만할까 해. 언젠가는 말이야, 내가 인터넷에 검색해본 (흐흐흐 처절하지 않아? 못먹는 빈대떡 검색이나 해보자?) '순희네 빈대떡'집이나 내가 아는 '종로 빈대떡' 혹은 말로만 듣던 '광장시장'표 녹두 빈대떡을 먹어볼 날이 있겠지? 그 때는 '건강식 버전'일랑 생각도 말고 있는 그대로의 음식을 즐겨줄까 해. 입술에 번들번들 기름기 흘러내려도 암시랑토 안허고 크게 한 입 베어물거여~~~ 내 기억속에 더욱 생생한 3D 자료 업데이트를 위해서 말야. 흐흐흐 오늘 모노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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