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민한 사람이다. 스스로도 잘 안다.
그래서 밖에서 하루 종일 사회생활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온몸이 힘이 빠져 무기력해지곤 한다.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고 작은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다 보면 금세 지쳐버린다.
그런 내게 집은 유일한 평온의 공간이다. 아이와 남편은 온전히 내 편이고, 나를 이해하고 사랑해 주는 존재라는 인식도 크다. 그렇다고 해서 가족들에게 막 대하거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건 아니다.
다만 집에 들어서면 비로소 마음이 이너피스 상태로 풀린다고 할까.
그런 나에게 가장 버거운 건 집안일이다. 흥미도 없고, 억지로 하려 하면 스스로도 못나 보인다. 그럴 때면 남편이 먼저 나선다.
“내가 할게. 그냥 둬.”
“아냐, 오늘은 내가 할 차례야. 평소에 오빠가 많이 하잖아.”
“나는 힘들지 않아. 자기는 이미 많이 힘들잖아. 억지로 하지 마.”
“근데 오빠도 하기 싫지 않아? 재미도 없고 늘 똑같은 일인데.”
“응. 난 싫다는 생각이 전혀 없어. 그냥 하는 거야.”
그 순간 나는 잠시 멍해진다.
‘왜 나는 그게 안 될까? 하기 싫다는 생각을 품기 전에 그냥 몸을 움직이면 될 텐데. 그러면 스트레스도 덜 받고 금방 끝날 텐데….’
비단 집안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남편이 야근이나 회식으로 늦어 내가 아이를 혼자 돌볼 때면, 속으로 은근히 ‘나도 곧 하루쯤은 나가 놀아야지’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남편은 단 한 번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그저 ‘그냥 하는 것’ 일뿐이다.
“그냥 하기”
겉으로 보기엔 아무렇지 않게, 아무 생각 없이 하는 일.
뭐가 특별하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몇 년을 지켜본 내게는, 이 ‘그냥 하기’라는 태도가 삶을 훨씬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힘처럼 보인다.
‘힘들다. 하기 싫다. 왜 내가 해야 하지?’라는 생각 대신, 그냥 몸을 움직여 해내는 하루.
그 단순함이 오히려 예민한 내 마음을 가장 가볍게 만들어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