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회사 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 이어졌다. 그러다 몇 달 전부터 계획해 둔 제주도 여행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은 즉흥적으로 가기엔 내 성격상 불안했기에,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계획을 세우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불가피하게 항공, 숙소, 렌트 외에는 아무 계획도 세우지 못했다. 불안했다. 하지만 설레었다.
'아직 아이인데… 아무 데나 갔다가 못 먹는 음식, 못 하는 활동이 많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 반. '그래도 이제는 제주도 정도는 계획 없이 다닐 만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 반. 그렇게 여행은 시작되었다.
첫날부터 기분 좋은 순간과 신기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돼지고기를 잘 안 먹던 아이가 음식점에서 "엄마, 여기 너무 맛있다!"를 연발하며 먹었다. 겁이 많던 아이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동굴에 도전하기도 했다. 물론 결과는 "너무 무서웠어… 동굴 다시 안 올래." 였지만, 그래도 도전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고등어회를 차려주었을 때, 편식도 심하고 입이 짧은 아이가 그 회마저 맛있게 먹는 모습은 충격이었다. 어른들도 잘 안 먹는 고등어회를 아이가 맛있게 먹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승마에 도전했을 때도 그랬다. 사실 말을 타자마자 울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오히려 마지막 코스까지 신나게 웃으며 타고 돌아왔다. 내가 "말이 뛰어올 땐 무섭지 않았어?"라고 묻자, 아이는 "아니! 너무 재밌었어! 말 꼬리가 내 등을 자꾸 쳐서 엄청 웃겼어! 다음엔 더 오래 타고 싶어, 엄마!"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우도에서 스쿠터를 탈 때도, 계획에 없던 무서운 보트를 타고 싶다고 조르던 것도 놀라웠다. 정말 즐겁게 타고 나왔을 때, 나와 남편의 눈과 입은 놀라움으로 크게 벌어져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꿈만 같던 여행은 끝이 났다. 사실 아이와 여행을 다니면 마지막 하루쯤에는 '이제 좀 집에 가고 싶다, 힘드네…'라는 생각이 종종 들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하루만… 이틀만… 조금만 더 있다가 돌아가고 싶다'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계획 없이 떠나는 게 두려웠던 나에게, 아이는 마치 이렇게 말해준 듯했다.
'엄마, 나 이제 많이 컸어. 할 수 있는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아. 그러니까 걱정 말고 재밌게 잘 놀다 오자.'
그리고 나 또한 끊임없이 되뇌었다.
'우리 아이가 언제 이렇게 컸지… 이제 이렇게 많은 것을 함께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구나.'
마음 한 구석에는 아기였던 시절이 그리워질 때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한 뼘 한 뼘 커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릿하고 뭉클해진다. 그것이 내가 육아를 하며 느끼는 가장 큰 행복의 순간이고, 나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