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하는 것으로 살아남는 법
심장이 쿵쿵 뛰었다. 이보다 더 긴장된 순간이 있었을까? 24년을 살며 수많은 도전을 해봤지만, 첫 출근의 떨림은 또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대학 교수님의 추천으로 중소기업이지만 제법 굵직하고 안정적인 IT 솔루션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내가 원하던 직종은 아니었지만 전공을 살려 적어도 민폐가 되지 않는 직원이 되고픈 작은 소망으로 첫 출근길에 올랐다. 같이 입사한 동기는 나를 포함하여 4명이었는데, 함께 신입사원 설명회를 듣고 점심도 먹고 커피도 마시면서 조금이나마 떨림을 잊어낼 수 있었다. 우리는 약 2주 동안 신입사원 교육을 받게 되어 있었는데, 당시 우리 팀의 대리였던 분이 직접 교육해 주시기로 했다.
(여담이지만 그 대리님은 내 직장 생활의 첫 사수이자 지금은 평생의 동반자가 된 남편이다.)
매일 몇 시간씩 직접 강의 형태로 교육을 해주시고 과제를 내주면 우리는 매일 그 과제를 진행해야 했다. 대학 때도 늘 과제와의 싸움이었지만 실무에서 직접적으로 쓰이고 필요한 내용이다 보니 훨씬 더 그 깊이와 무게감이 달랐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에 몇 날며칠을 새벽까지 노트북을 붙잡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런 마음가짐 때문이었을까? 난 과제수행을 가장 잘 해낸 신입사원이라고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 무렵, 같은 팀이었던 1년 선배들과도 같이 밥 먹고 커피 마시면서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했다. 한 여자 선배님은 조금 직설적이고 업무 성과도 다른 선배님들에 비해 월등하게 잘하는 분이셨는데, 모두가 처음에는 다가가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러나 나만의 웃음 리액션과 쾌활함으로 누구보다 그 여자 선배와 친해져 1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연락하며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한 달 정도 본사에서 교육 및 운영업무를 진행한 후에 나는 프로젝트 현장으로 바로 투입되었다. 고객사 솔루션을 만드는 프로젝트였는데, 이미 진행된 지 꽤 오래된 프로젝트임에도 언제 오픈할 수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아 난항을 겪고 있었다. 집에서 출퇴근도 꽤 멀고 워낙 강도가 높은 프로젝트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프로젝트 인원으로 소속되자마자 실무를 바로 시작하였다. 업무 난이도도 높았지만 먼저 진행하고 있던 선배들이 가장 힘들어했던 부분은 고객사와의 협업 문제였다. 이미 어느 정도 개발된 솔루션을 커스텀해서 납품하는 형식이긴 했지만 거의 모든 부분을 뜯어고쳐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런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마다 논쟁이 항상 있었다. 결국 내가 속했던 파트의 차장님은 해당 업체와 직접적으로 의사소통 하기를 거부하셨고 직접적으로 소통해야 하는 부분은 내가 맡아서 진행하게 되었다. 나는 아직 신입사원이고 각 기능들이 어떤 프로세스로 동작하는지 명확히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직접 하나하나 테스트하고, 코드도 확인해 가면서 공부부터 시작하였다. 매일 새벽 두 시 넘어서까지 일하고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자고 택시 타고 집에 가고 하는 일상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면서도 내 자리에서 할 몫을 다 하기 위해 고객사 미팅 자리에서 직접 리딩을 하고 소통하는 역할을 하면서 입지를 굳히기 시작하였다. 약 6개월의 시간 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고객사 담당자분과 엄청난 친분을 쌓았고, (본인 회사로 이직하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ㅎㅎ) 우려와 달리 해당 프로젝트는 성황리에 잘 끝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프로젝트 종료 후 본사로 복귀하여, 나는 운영 업무보다 여러 프로젝트 수행을 진행하였다. 신입사원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프로젝트를 경험하고 그 안에서 내 나름의 노하우도 쌓고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 해를 바쁘게 보내고 난 신입사원 신분에서 벗어나 새로운 신입사원을 맞이하게 되었고, 각각 한 명씩 사수가 되어 회사 생활과 업무 진행에 도움을 주는 가이드 역할을 하였다. 사수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더 알아야 했고 그러기 위해 새로운 것을 배워야 했고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역량을 키워야 했다. 이러한 여러 경험을 한 후 나는 2년 만에 종무식에서 우수 사원상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신입사원 때부터 적응도 잘하고 일도 잘했고 등의 자랑 이야기를 나열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록 개발자에 대한 꿈도 없었고 개발 실력에 대한 자신감도 없었던 사람이지만 내가 가진 나만의 강점이 있었기에 새로운 환경에서 큰 무리 없이 지내왔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이 가진 강점이 있고 그것을 주어진 여건에 맞추어 발산해 낼 수만 있다면 본인이 자신 없는 분야의 환경일지라도 충분히 성장해 나갈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늘 익숙하지 않은 길 위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스로의 강점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길을 만들어갈 수 있다면 어떤 환경에서도 성장할 수 있다. 당신도,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