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가을이다.
가을은 나에게 좋기도, 또 싫기도 한 의미를 주는 계절이다.
좋은 이유는 역시 ‘독서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날씨가 좋아 여기저기 놀러 다니고 싶은 때이기도 하지만, 어느 장소에서도 책을 읽기 참 좋은 시기다.
출퇴근길에 오가며 읽기에도, 집 안에서 창문을 바라보며 읽기에도,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읽기에도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싫은 이유는 야구 시즌이 끝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게다가 내가 응원하는 팀이 가을야구조차 가지 못해서, 일주일의 저녁 시간이 휑해져 버렸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나에겐 하나의 로망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취미를 아이와 함께 하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이었다.
사실 ‘취미’라고 하면 뭔가 거창한 장소에 가서 시간을 들여야 할 것 같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2년, 3년이 지나도 함께할 취미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러다 아이가 다섯 살이 되던 해, 처음으로 야구장 직관을 함께 가보았다.
큰 소리를 싫어하고, 코로나의 영향으로 사람 많은 곳을 많이 다녀보지 못했던 아이에게 야구장 외야석은 분명 두려움이자 도전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집에서 늘 틀어져 있던 야구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매력에 빠졌나 보다.
어느새 아이는 2년째 어린이 회원으로 활동하며, 언제 야구장 가냐고 나를 조르고, 나보다 더 많은 선수 정보와 응원가를 아는 수준이 되었다.
그리고 여섯 살 무렵, 한글을 깨치며 조금씩 글을 읽기 시작한 아이를 보면서 또 하나의 로망이 생겼다.
나와 아이, 그리고 남편이 소파에 나란히 앉아 각자의 책을 읽는 모습.
꼭 도서관에 가지 않아도, 숙제가 아니어도, 함께하는 시간 속에 자연스럽게 독서가 머무는 그런 일상이었으면 했다.
그래서 아이가 혼자 책을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나 또한 옆에서 얇은 책이라도 함께 읽었다.
이제는 자기 전에 각자의 책을 펴고, 한 권 혹은 정해진 시간만큼 읽는 루틴이 생겼다.
나는 하루 중 그 시간이 가장 기다려진다.
요즘 주변 엄마들이 종종 묻는다.
“너는 어떻게 네가 좋아하는 걸 아이도 같이 좋아하게 만들었어?”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도 신기했다.
난 그저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이렇게 특별한 일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시간을 기꺼이 함께해 주는 아이와 남편에게 새삼 고마움이 밀려왔다.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든 건 나였지만,
그걸 함께 즐겨주고 따라와 준 아이와 남편이 없었다면 나는 내 취미를 마음껏 누리지도, ‘함께 한다는 행복’을 느끼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좋아하는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건, 어쩌면 인생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인지도 모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