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 베트남 하노이에서, 쏭지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
오늘의 주인공 쏭지님 소개
이번 인터뷰 주인공 쏭지님은 현재 하노이 취업해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계세요. 일과 취미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하노이를 가셨다는 이야기가 정말 흥미로웠어요! 인터뷰 내내 디자인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너무나도 많이 묻어나서 듣는 내내 행복했어요.
ssong zee
ss가 제 아이덴티티 귀걸이예요.
반 익명성 / 아이덴티티를 위해 이 사진으로 골라보았습니다 :)
안녕하세요~ 작년 6월에 하노이 취업해 두 번째 인생(?)을 살고 있는 공간 디자이너 쏭지라고 합니다.
저는 여행하는걸 정말 좋아해요! 기본적으로 1년에 3번, 해외는 2번을 꼭 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까지 오랜 기간이 걸렸어요. 제 업무가 야근이나 주말 근무가 많아서 신입 때는 더욱이 워라밸을 누리기 어려웠고, 경력이 쌓이고도 일 때문에 밤새우는 일이 많았어요. 여행도 밤을 새우고 비행기 타러 가는 경우가 많았죠. 심야 비행기가 필수였어요 ㅎㅎ 정말 한국 디자이너는 일에 치여서 사는 경우가 많아서, 드라마에 나오는 워라밸 깡패 디자인 실장님은 말 그대로 드라마 속에서만 가능해요.
그러다 보니 Work와 Life 중 하나만 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았어요. 취미를 가지기가 어렵죠. 어렸을 때 어른이 되어 내 능력이 쌓이면 또 새로운 공부하고 유학을 가야지~ 하는 꿈도 있었고, 해외 문화를 잘 접하면서(여행을 통해서든 해외 살기를 통해서든) 사는 꿈도 있었어요. 이런 생각에 하노이로 떠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일단 저는 유학을 가고 싶었어요. 언어 실력이 부족해 어학의 필요성을 느꼈는데, 어학부터 시작하기에는 나이가 들어 두려웠어요. 무작정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조금은 타협할 수 있는 해외 취업을 알아보자!라는 생각에 취업하기 3년 전 쯤부터 소소하게 해외 취업을 알아봤어요. 처음에는 사실 무작정 유럽, 미국 쪽을 알아보고 다녔어요. 찾아보다 느꼈던 건, 유학 생활을 오래 해서 네이티브 정도의 실력을 구사하는 친구들도, 외국인이라는 핸디캡 때문에 디자이너로 자리 잡는데 어려워했고, 커리어를 다른 쪽으로 전환하게 되는 일도 많더라고요. 하물며 저는 영어를 잘하지도 못하는데, 지금 일하는 만큼의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3~4년 시간을 들여 어학공부를 위해 학교를 다시 다녀야 하나? 싶어 유학 대신 해외 취업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쌓아온 커리어를 활용하면서, 해외에 살 수 있는 곳이 어딜까? 생각해보니 답은 동남아였어요. 태국, 캄보디아, 사이판,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등 동남아에는 디자인 시장이 많아요. 동남아는 한국 기업들이 해외 법인으로 많이 활동하고 있어서, 유럽 미국 쪽보다 일자리를 구하는 게 비교적 수월해요. 저에게는 구체적으로 원하는 포지션이 있었기에 제 커리어를 잘 살릴 수 있는 기업을 찾아서 베트남에서 취업하게 되었어요.
베트남에는 정말 많은 길이 열려있습니다.
언어의 장벽을 없애고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이 많아요. 워낙 한/중/일 세나라 기업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다 보니 현지 언어를 배우지 않아도, 여행자 정도의 영어 수준만 되신다면 충분히 직업을 구하실 수 있어요.
언어 장벽이 두려우신 분들이 많을 텐데, 실제로 일을 구할 때 언어 장벽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아요. 또 아직 우리나라에 비해 발달되지 않은 분야가 많아서 베트남에서 새로운 도전의 기회도 열려 있습니다.
한국과 다르게 베트남의 경우 주 5.5일이나 6일 근무를 합니다. 보통 토요일 점심까지 일해요. 이걸 들으면 다른 분들은 토요일도 일해야 해? 어후~ 라 생각하시는데, 사실 한국에서 일하는 것보다 덜 힘들어요.
그중 가장 큰 이유는 동남아 인건비인데요. 인건비가 싸다 보니 메이드를 풍요롭게 쓸 수 있어요. 메이드가 월, 수, 금 빨래 청소를 2시간씩 하러 와주세요. 운동화도 빨아주시는데, 이 비용이 월 6만 5천 원입니다. 한국에서는 퇴근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면 하루가 끝나 있었는데, 가격이 싸다 보니 메이드를 고용해서 일하게 되어서, 워라밸을 지키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커리어는 한국과 비슷해요. 한국에서는 보통 한 분야 디자인을 주력으로 하게 돼요. 주거 설계, 업무 공간, 상업 공간, 의료 시설 등 전문적 설계 파트가 나눠져 있는 편이에요. 베트남은 한국에 비해 트렌드는 살짝 시간 차가 있어요. 또한 인테리어를 요하는 기업들이 전문적으로 분야별로 구성되어 있지도 않아요. 그러다 보니 트렌디한 부호의 집을 인테리어 하다가, 오피스 인테리어를 하기도 해요. 다양한 인테리어를 접할 수 있다는 즐거움이 있어요. 시간 여행하는 공간 디자이너 같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 열심히 일해요. 그래서인지 눈도 높아요.
베트남 사람들은 일할 때 여유가 있는 편이에요. 그래서 한국에서 일하다 베트남에서 일하게 되면, 한국 사람들이 좀 답답해 할 때도 많아요. 사회주의 국가체제 때문인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사람들이 별로 없어요. 철저히 오더 받는 입장에서 일하는 느낌이에요. 제 업종이 크리에이티브를 요하는 일이다 보니 그런 점에서는 힘들 때가 있습니다. 반면, 시간이랑 업무를 주고, 지속적으로 체크할 경우에는 꽤나 좋은 결과물을 내는 것 같아요.
베트남인의 재밌는 특징 중 하나가, 베트남은 뚜렷한 모계 사회에요. 여성들이 일하는 비율이 높아요. 낮에는 되게 한량스러운 남성들이 길거리 찻집에서 짜(차)를 마시면서 그늘에서 노닥거리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어요. 베트남 여성분들 보면서 저는 찐 초특급 울트라 슈퍼우먼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9개월 있는 동안 한 직원은 임신 중이 었는데, 이미 출산도 하고 돌아와서 다시 일하고 있어요. 칼퇴해서 엄마의 삶을 살아내는 친구들이 많아요. 대단합니다.
여행을 자주 다니게 된지는 오래되진 않았어요.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정도의 커리어를 쌓을 때까지 오래 걸렸죠. 이렇게 다닌 지 몇 년 안 되었지만, 지금까지 다녀본 곳은 블라디보스토크, 파리, 치앙마이, 베이징, 일본,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쿠바 선교여행, 미국 지역별 여행 정도 다녔습니다. 친구들이랑 여행 리스트를 비교했었을 때 친구들은 유럽을 많이 다녔는데, 저는 미국 여러 주 여행을 다녔다는 게 특이한 이력(?) 같아요.
베스트 여행지가 있으신가요?
두 곳을 뽑을게요.
블라디보스톡
블라디보스톡은 2박 3일만으로도 온전히 다 누리고 올 수 있을 정도로 좋아요. 사실 갈 때 기대를 안 해서 그런지 몰라도, 만족도가 높았어요. 러시아 말을 몰라도, 한국어 메뉴나 여행에 대한 정보들이 너무 많아서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여행지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쿠바
선교여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 여행을 한 느낌이었어요. 남미 쪽으로 여행을 꿈꾸게 해 준 곳이에요. 오래된 건물이나 올드카, 옛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어요. 도시도 문화적으로 옛 분위기들과 어우러져 있어요. 쿠바는 오랫동안 스페인의 식민지였는데, 그러다 보니 옛날 유럽풍이나 스페인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 많아요. 또한 그런 아픔을 겪으면서, 도시 개발 같은 게 오히려 스톱된 느낌도 들어요. 옛날 것들이 잘 갖춰져 있지만, 현대에 발달하지 못해서 그 때의 영광에서 시간이 멈춘 느낌이에요.
사실 베트남에 오자마자 코로나 시국이 되어서 여행을 많이 못했어요. 그래도 베트남은 로컬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 많아서 좋은 것 같아요. 현재까지 방문해 본 곳은 푸쿠옥, 하롱베이가, 호치민 이에요.
하롱베이
하롱베이는 제가 처음에 베트남 오자마자 격리를 한 곳이에요. 하롱베이는 베트남에서 바다와 근접해있고, 골프장이 잘 갖춰져 있는 동네예요. 2주간의격리가 끝나면서 골프장에 놀러 갔었는데, 골프를 잘 치지 못하지만 골프장 자체가 너무 잘 되어있더라고요. 옆에 바다도 있고. 하루만 있었음에도 여러모로 힐링하고 온 기억이 있어요. 그리고 베트남이 골프 가격이 정말 저렴해요. 골프 가는 걸 좋아하시는 분들은 코로나 끝나고 하롱베이 정말 추천드려요.
푸쿠옥
여름휴가는 푸쿠옥으로 다녀왔는데 스토리가 있어요. 원래 저는 여름휴가 계획이 없었는데, 회사 실장님이 한국으로 들어가시면서 예약했던 푸쿠옥 여행을 노쇼로 날릴 수 있는 상황이 되었어요. 이걸 완전히 날리기에는 아깝다보니 제가 대신해서 다녀오게 되었어요. 예약자를 바꾸는 건 20만 원 밖에 안 하더라고요. 게다가 실장님이 저희 회사 통역하시는 분과 같이 계획을 하셨었는데, 그래서 제가 대신 가게 되어서 더욱 편하게 다녀온 여행이었습니다.
베트남이 막연히 더운 나라라고 여기시는 분들이 많은데 하노이 같은 경우에는 겨울에 좀 추워요. 얇은 패딩 입을 정도? 실제로 봄, 여름, 추운 가을(?) 정도로 나눠져 있는 것 같아요. 런던이랑 날씨가 비슷하다는 이야기도 나와요. 하노이 도시 자체 컬러가 약간 그레이 틱 해요. 안개도 많고, 스모그도 있어서 탁하고 건물도 빽빽해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밝고 화창한 베트남은, 호치민이 좀 더 가까운 것 같아요. 호치민은 1년 내내 더운 날씨가 유지되는 곳이에요. 외국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쇼핑몰이 발달되어 있고요. 그래서 그런지 하노이와 호치민 사람들의 성향이 달라요.
이런 말이 있어요. "호치민 사람들은 10을 벌어서 11을 쓸 때, 하노이 사람들은 10을 벌어서 1을 쓰고 저축한다." 하노이 사람들은 수도 시민이라는 자부심이 있어요. 중국 유교에 영향을 많이 받았고 오랫동안 수도의 시민으로 지내오다 보니 미래지향적이고 저축을 많이 합니다. 화려한 도시를 생각하면, 호치민이 화려하지만, 진짜 부자는 오히려 하노이에 있다는 말도 있다고 합니다. 집단주의가 강하고 예의, 격식을 중요시하고 보수적인 사람들이 많아요. 호치민은 베트남의 경제도시로 불려요. 외국인이 많이 다니고, 사람들 또한 경제적으로나 여러 면에서 좀 더 개방적인 느낌이 있어요. 그리고 지역차가 있어서 그런지 말도 많이 다르더라고요. 언어를 배울 때도 이건 호치민 발음이야!라고 짚어서 이야기해주는 때도 있습니다.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지금 그걸 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만약, 전혀 그림을 그려본 적 없지만,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다면 제일 먼저 할 일은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거예요. 해외에서 디자이너로 살고 싶다면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우선 해외에 내가 가고 싶은 회사나 하고 싶은 일을 먼저 찾고 이력서부터 내보세요. 10가지 일 중에 10가지를 계획하고 생각하는 것보다 10가지 중에 단 한 가지라도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시도하는 게 가장 빨리 가는 길입니다. 지금의 하루가 나중의 10년을 법니다.
저는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겠다! 이런 꿈은 전혀 없어요. 베트남에 있는 동안은 로컬 여행을 많이 하고 싶어요. 베트남에 좋은 여행지가 많아서 로컬 여행을 하면서 그림으로 담는, 그림일기를 작성하는 게 첫 번째 목표예요. 커리어에 상관없이 배우고 싶은 게 있다면, 베트남어와 골프가 나중에 좋지 않을까 싶어요.
제 인생의 모토는 "한국에서 자라서 동남아에서 늙어서 유럽에서 죽겠다"에요. 한국에서 태어났고, 현재는 베트남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동남아에서 일을 하면서 늙어가면 좋을 것 같아요. 노년에는 유럽에 어떤 문화를 접하면서 살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사이드 질문
현재 생각나는 것은 없어요. 베트남으로 나오게 된 계기 중에 하나가 어쨌든 해외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나오게 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목표의 성취를 충분히 누리고 있는 시기 같아요.
노후대책은 따로 세운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은 평생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미래에 대한 생각은 현실적인 고민 보다는, 무대 디자인을 좋아하다 보니 작은 소극장에서 청소만 해도 행복하게 죽을 수 있겠다 라는 꿈을 꾸며 살고 있어요.
어릴 때부터 연극을 좋아했어요. 돼지 저금통을 뜯어서 공연을 보러 다니곤 했는데요. 2층에서 볼 때와 3층에서 볼 때의 무대가 다르더라고요. 무대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이 이런 부분에도 신경을 쓰는구나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무대 디자인은 무대를 본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게 매력인 거 같아요. 인테리어나 건물들은 지속적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반면에 무대는 무대를 보고 싶어서 간 사람들에게만 전달되는 점이 좋아요.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무대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어요.
1층, 2층, 3층 다르다고 하셨는데, 무대 디자인 할 때 이런 점들을 입체적으로 고려하고 설계하는 건가요?
그런 경우도 있어요. 1층에서 볼 땐 무대 자체보다 배우 표정, 대사, 극 자체에 집중해서 보게 되는 반면에, 2층 3층에는 무대를 자세히 볼 수 있어요. 멀리서 봤을 때 공간적으로 임팩트를 줄 수 있는 게 많죠. 공연을 본 이후에도 이런 부분에 대한 기사나 논문을 찾아보면 느꼈던 경험과 재밌게 매치가 되는 게 많아서 흥미로웠습니다.
요즘 베트남은 한국의 트렌디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그렇지만 완전히 답습하지는 않고, 몇가지 제약이 있습니다. 베트남의 경우 모든 공간에 제단(향 피우는 공간)이 들어가요. 향 같은 걸 피우고 절하는 공간을 넣어야 하다 보니 베트남의 트렌디셔널 한 느낌을 완전히 묻을 수 없어요. 또한 항상 디자인할 때 머리 놓는 방향, 책상 위치 방향에 풍수지리를 적용해야 해요. 컬러감은 중국을 따라가는 것 같아요. 빨간색, 금전 이런 게 묻어있죠. 요즘에는 SNS가 발달하면서 트렌드를 접하는 속도가 빨라지다보니까, 디자인에 대한 선호도 또한 빠르게 변화하는 것 같아요.
마감재 같은 경우는 탄연 대리석, 우드를 많이 사용하는 거 같아요. 한국에서 수입하는 경우도 많아요. 베트남에선 한국, 유럽 자재가 수입 자재이기 때문에 부유한 분들은 수입 자재 사용을 선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