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 뉴욕에서, Jay님의 PM이야기
오늘의 주인공 jay님 소개
제이님은 제가 본 사람들 중 가장 강단있는 분이세요. 소신있고 멋진 분이어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닮고싶다는 생각이 드는 분입니다! 인터뷰 내용도 가장 유쾌했던, 인터뷰 중 하나여서 재밌게 보실 수 있을거에요!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 뉴욕에서 Mobile Group Product Manager로 일하고 있는
정재화, 영어 이름은 Jay라고 합니다.
(해외취업을 고민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유튜브 한번 봐보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 뉴욕에서 Mobile Group Product Manager로 일하고 있는
정재화, 영어 이름은 Jay라고 합니다. 한국에 있을 때 컴투스 게임회사에서 게임 기획을 하다, 서비스를 만드는 테크 회사에 이직하면서부터 PM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살다 미국으로 오게 되었어요.
PM 정의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어요. 제가 생각하는 PM은 프로덕트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여러 파트 의견을 조율해 완성된 프로덕트를 내놓고,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게끔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전반적으로 책임을 지고 끌고 나가는 직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으로 가시는 분들은 보통 미국에서 유학했던 경험이 있거나, 잡을 서칭하고 미국에 오시는데, 저는 가족 상황때문에 어쩔수없이 급하게 가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여기저기 정보를 찾아봤지만 미국에서 학교를 나오지도 않았고, 살아본 경험도 없이 PM으로 구직한 사람은 잘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미국에 가서도 내 pm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뉴욕에 도착했을 땐 제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포기한 상태였어요.
뉴욕에 오고 나서 이곳저곳에 이력서를 보내기 시작해봤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연락이 많이 오더라고요! 한국에 있을 때 일했던 포트폴리오나 경험들을 인정해주는 곳들이 꽤 있어서 생각보다 쉽게 잡을 수 있었어요.
두 가지가 있었어요. 무조건 pm을 할 수 있는 회사. 그리고, 그 중 짧은 시간에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회사를 가고 싶었어요. 빅 테크 회사를 갈 수 있는 옵션이 있더라도, 타이틀은 가질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일을 해야 한다 생각했을 때 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어요. 미국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양한 미국 마켓을 대상으로 프로덕트를 만듦으로써 미국 고객들의 니즈를 빨리 습득할 수 있는 회사를 찾는 게 목표였습니다.
한국은 어떤 이야기를 할 때 따라오는 편이라면, 미국의 경우에는 한국보다는 더욱 적극적으로 많은 질문들을 하고, 본인들이 이 프로젝트를 투입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물어본다는 게 가장 큰 차이예요. 예를 들어 A라는 걸 하자 했을 때, 한국은 수동적인 느낌이었다고 한다면, 미국에서는 그걸 왜 해? 내가 하는 게 어떤 임팩트를 줘? 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고 설득해야 하는 일이 많아요.
업무 프로세스는 비슷한데, 인터랙션이 달라요. 한국 같은 경우에는 모든 사람들이 같이 공통적으로 일에 대한 내용을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일에 대해 간단히 얘기하고 뭔지 알지? 하면 알아듣는 경우가 많은데, 미국은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나의 어떤 기준으로서 이 사람이 이걸 알 것이다 라고 가정하기 힘들어요.
한국 사람들이 눈치가 굉장히 빨라요. 눈치라는 게 상대방의 관찰에서 시작되는데, 대다수의 서양 문화는 '나'의 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니 오히려 한국인의 강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떤 측면에서 발휘되냐면, 결국엔 미국에서도 셀링과 PR을 잘하는 사람이 돋보일 수 있어요. 짧은 시간에 매력을 끌어들이는데, 한국 사람들은 이런 과정에 뉘앙스에 대한 이해도가 빠르기 때문에, 이 눈치를 활용하면 어떤 조직이나 인간관계에 있어 한국인으로서의 강점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30대 중반에 미국에 이민을 오다 보니, 문화나 언어적으로 스며드는 거에 대해 한계를 느꼈어요. 나도 완벽하게 문화를 이해하고 싶다! 스며들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는 갭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기까지 어려웠던 것 같아요.
깨닫기까지 심적으로 힘드셨을 것 같아요.
따라잡을 수 없다 라고 인지를 하니까 되려 마음이 괜찮아졌어요. 언어를 네이티브로 하는 수준을 0~100 라치면, 저는 이제 95 밖에 못 갈 거라는 걸 어느 순간 인정하게 되더라고요. 이 전의 저는 목표가 100이었기 때문에 힘들었죠. 안 되는 걸 된다고 하면 마음이 아프잖아요? 그러다 어느 순간 100을 갈 수 없다는 걸 인정을 하면서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말씀드리고 싶은 건, 단순히 '두렵다'라는 것 때문에 이걸 포기할 필요는 없어요. 여러 방면에서 지원을 해보면 길은 있어요. 제가 처음 갈 때는 이 길이 안 보여서 두려웠는데, 와 보니까 이렇게 오신 분들이 꽤 있더라고요.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 실행하시면 충분히 잘하실 수 있어요.
아무래도 PM 같은 경우에는 영어 실력 수준이 높아야 해요. 내가 생각하는걸 논리 정연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팀원들과 완벽하게 합의가 안 이루어졌을 때 논리적인 구조로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휘가 안 좋거나 발음이 안 좋은 건 덜 중요한 것 같아요.
영어를 공부하게 된 계기가 있는데, 이 이야기는 에피소드가 길어요.
저는 대학교 때 시골에 살다가 서울에 올라왔어요. 어느 날 친구 누나가, 일당 아르바이트해볼 생각이 없네요. 뭐냐니까 새벽 4시에 영어 종로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달라는 거예요. 그때만 해도 인터넷 수강신청이 없던 때였어요. 근데 줄만 서면 되는데 일당 15만 원이래요. 뭔데 줄 서는데 15만 원을 주나 싶었어요. 새벽에 가니 정말 줄을 길게 서 있더라고요. 스무 살 때였는데, 어린 마음에 충격 먹었어요. 왜냐면 제 고향은 영어 학원도 시내 전체에 한 두 개밖에 없고, 영어 공부에 대해 신경도 안 쓰는 분위기였거든요. 유일하게 외국인이라고 보이는 사람들은 몰몬교 사람들이었어요.
근데 서울에 오니 다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거예요. 와 신기하다 했어요.
하루는 친구랑 포장마차에 술을 마시는데, 옆 테이블에 한국인처럼 보이는 분이 영어로 대화를 하고 있었어요. 친구가 그걸 보더니 재수 없어! 하며 구시렁거렸어요. 지금은 느낌인지 알겠지만, 그땐 제가 시골에서 올라와서 그 친구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친구에게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한국사람이 괜히 영어 쓴다고 뭐라 하더라고요. 근데 그 친구도 강남에 영어 학원을 다니고 있었거든요. 저라면 차라리 학원에 돈을 쓸 바에 옆 테이블 가서 말 걸어서 대화하면 더 싸고 좋게 배울 수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했어요.
집에 오면서 왜 서울 사람들은 영어를 잘하면 엄청난 능력을 가진 사람처럼 대우를 해주는지 이해가 안 갔어요. 술을 먹은 상태에서 아 그럼 내가 사람들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걸 고쳐 줘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날 집에 가서 집에 있는 TV에 모든 한국 채널을 지우고 MP3 노래도 다 지워버리고 다음날부터 영어로만 말했어요. 애들이 한국말로 해도 저는 영어로 대답하기 시작했어요. 한국어로 수업하시는 교수님이 한국어로 질문해도 저는 영어로 대답했어요. 정말 아예 한국어를 안 썼어요. 학교에서 미친놈이라고 소문이 났어요.
어느 정도였냐면 학교에서 집에 갈 때 지하철 타고 가잖아요. 집에 갈 때 심심하니까, 전화가 온 것처럼 영어 하면서 간 적도 있고, 지나가다 길 잘 가는 외국인 보이면 갑자기 괜히 말 걸면서 '너 길 잃은 거 같아' 하면서 길 알려주면서 살았어요.
그렇게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이다 보니 실력이 올라갔다 보다는, 자신감이 올라가면서 '왠지 내 노력이 나를 배신할 것 같지 않아'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한국어를 썼던 적이 아예 없어요?
예 한 번도 없어요. 극단적으로 했어요. 마을버스 아저씨한테도 영어로 했어요.
제일 위기였던 시절은 언제에요?
부모님한테는 안 하는 걸로 결정을 내렸었어요. 이게 도저히 할 수 없는 게 부모님이 찾아오려고 했어요. 몇 번 부모님한테 시도를 해봤는데, 정신은 이상하게 된 줄 알고 찾아오시려 하더라고요. 그래서 포기를 했습니다.
커리어 관련된 꿈을 이야기해볼게요.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가 있어요. 저는 지금 제 스타트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제가 하고 싶은 건, 미국에서 미국 회사를 통해서 어떤 프로덕트를 만들어 미국 시장에서 성공해보는 게 꿈이에요. 한국에서 와서 실리콘 밸리에서 스타트업 크게 잘하는 분들 많은데, 아직도 B2B, SASS 같은 서비스를 하고, 고객이 사용하는 프로덕트는 아직 보질 못했어요.
저의 목표는 미국인의 일상에 태극기를 꽂아 보는 게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