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구조조정을 단행하라
어떤 환경에 처음부터 익숙한 사람이 없듯, 처음부터 나태한 사람도 없다. 사람은 하루아침에 나태해지지 않는다. 서서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배어드는 것이 나태함이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그렇게 물들어간다. 내가 직장생활을 막 시작했던 그때, 나는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정말 일하고 있는 곳을 위해 뼈라도 묻을 것처럼 열심히 일했다. 오직 일만 했다. 하지만 주어진 일은 성실히 하되, 더 이상의 노력은 없었다. 일에 있어서도, 스스로를 계발하는 일에도. 그렇게 직장과 집만을 오가는 시간이 3년 정도 지나자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 그리고 어느 순간 어떤 위기감으로 스스로 지나칠 정도로 나태해져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매달 정해진 날짜에 월급이 나오고, 일도 익숙해져서 더 이상 큰 노력이나 스트레스도 없는 상태, 그냥 잘리지 않고 잘 다니면 살아가는데 지장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그때는 몰랐다.
사실 모든 직장인들은 나태에 물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신이 올라탄 직장이라는 배가 서서히 침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도 한다. 아니, 알면서도 다른 배로 갈아탈 생각을 못한다. 나는 그랬다. 직장을 떠나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딱히 잘하는 일도, 미치도록 하고 싶은 일도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나올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직장인으로 사는 동안 나 스스로 ‘자발적 구조조정’을 단행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부터 나라는 존재를 직장에서 지워나가는 연습을 했다. 직장생활을 소홀하게 하라는 것이 아니다. 회사가 전부라 생각하는 순진함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채워지면서 그때까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많은 것들이 보이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늘 '내가 사장이라면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기도 하고, 나의 몸값을 올리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를 해야 될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동안 이것저것 남들이 하는 자기 계발을 흉내 내느라 흐지부지 삽질만 하던 자기 계발이 아니라, 정말 나를 세상 가운데 세울 수 있는 결과물을 갖고 싶었다. 돈도 없고, 백도 없는데 실력까지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자기 계발이라는 이름으로, 인생 2막을 준비한다는 이유로, 보상을 제대로 받을 수도 없는 일들에 엄청난 돈과 에너지를 낭비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다. 직장에서 구조조정을 당한다면 당장 나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막상 생각하려니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것도. 그런 불안한 마음을 안고 비슷한 고민을 했던 사람들의 책을 읽으며 나름의 시나리오를 써보기도 하고, 시뮬레이션을 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가장 나에게 어울리는 가성비 좋은 방법들을 찾아 조금씩 움직여보기로 했다. '한번 해보는 거지 뭐!' 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조금씩 '자발적 구조조정'에 대한 나의 생각들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몇 년씩 학자금 대출로 대학원에 다니면서 무턱대고 가방끈만 늘리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정말 자신이 꿈꿔왔던 일이 아니라면 말이다. 나는 이미 이런 실수(?)를 저질렀다. 특별한 계획도 없이 대학원에 진학해버렸다. 전공이라도 좀 더 생각해보고 정말 원하는 공부인지 생각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때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뭐라도 열심히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목표였던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힘든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직장을 아예 그만두고 꿈꿔온 일을 하겠다며 오랜 준비 없이 덤벼드는 사람들이다. 꿈꿔 온 일을 하기 위해 창업의 꿈을 안고 직장을 그만두어 자신의 삶을 말아먹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벌어들이는 금액에 비해 살인적인 노동시간을 감당해야 하는 일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철저한 준비로 시작되지 않는 일은 일상생활이 엉망이 되고, 경제적 파탄에 빠지며 주변 사람들에게 홀대를 받게 된다. 삶의 균형을 해칠 수 있다. 그래서 직장에 다닐 때 스스로 ‘자발적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직장에 몸담고 있는 동안에 커리어를 위로만 쌓아가려고 하지 말고, 옆으로도 확장해보자. 자신의 경험을 살리는 일도 좋고, 가슴이 시키는 일이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았던 일도 좋다. 무엇이든 그 일을 시작하기에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며 시간과 에너지의 일부를 투자해보자. 새로운 것을 해나가는 짜릿함을 맛보면서 리스크는 줄여 훨씬 폭넓은 세계를 열 수 있다. 이때 가장 주의할 점은 당신 주변에서 들리는, 당신 가슴속에서 뜬금없이 들려오는 소음을 끊어내고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계획을 너무 세심하게 세워 실행하기도 전에 스스로 지치게 하지는 말아야 한다. 언제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에 대한 선택권은 자신에게 있다. 쓸데없는 타협과 갈등과 그만두고픈 끔찍한 날들과 맞닥뜨리지만 않으면 된다. 흥미로운 온갖 요소들이 삶에 가득하다. 걷잡을 수 없이 펼쳐지는 그 수많은 요소들에 때론 무너졌다 하더라도 절망할 필요는 없다. 상황을 바꿀 수 있는 힘 또한 바로 당신에게 있으니까.
나는 이러한 자발적 구조조정을 준비하는 최고의 방법이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엄밀히 말하면 글을 잘 쓰는 능력은 직장에 다니면서도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지만, 직장 탈출을 준비할 때에는 더욱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줄 최고의 무기가 될 수 있다. 글쓰기를 통해 자신이 꿈꿔 온 영역에 대한 책을 출간한다면 당신은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 그와 관련된 강연가가 될 수 있고, 칼럼 기고가도 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래서 글쓰기는 직장에 다니면서 당신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 갖가지 씨앗을 뿌려두는 것과 같다. 잘 살아남은 씨앗은 당신의 꿈을 키워내는 종자가 될 수 있고, 때론 바람에 날려 예상치 못한 곳에 뿌리내려 당신에게 더 큰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기회를 줄 수도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글쓰기로 뿌려놓은 당신의 씨앗들이 어떻게 성장할지 상상해보라. 흥분되지 않는가? 인생이 지옥이 아닌 천국이고, 하루하루가 신나고 즐거운 축제의 날이다. 좋아하는 일은 노동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경쟁 도서를 분석하고, 사례를 찾고 일하는 중간중간 쉬는 시간이 주어질 때면 그 일에 대해 생각하는 짬을 낼만큼 열정이 솟구칠 것이다. 자신의 잠재적인 능력을 끄집어내기 위해 스스로 수많은 질문을 던지는 한편, 자신을 직장이라는 일시적 안전지대 밖으로 기꺼이 끌고 나와 즐기는 시간들이 많아질 것이다.
물론 글쓰기가 인생을 바꾸는 만능의 역할을 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글쓰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자유형식의 글쓰기도 있겠지만 좀 더 전문적인 글을 쓰고 싶다면 글쓰기 스킬을 익혀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글을 쓴다는 것, 책을 쓴다고 해서 삶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쉬운 일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도해 볼만한 일임을 말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적어도 글을 쓰면서 불확실한 미래나 리스크 속에서 갈등하고, 모호하고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과 씨름하고,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는 순간들을 마주할 때 느껴지는 달갑잖은 좌절을 미리 스스로 경험해보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글쓰기를 통해 꿈의 씨앗을 심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글쓰기의 씨앗은 이렇게 심어지는 것이다. 그 씨앗은 이렇게 뿌리내려져서 거목으로 자라는 것이다. 그 좋은 모델이 지금은 세상을 떠난 변화경영연구소의 구본형 소장이다.
20년 가까운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변화경영전문가로 변신한 구본형 소장은 처음 책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게 잘 안 맞는 일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원하는 일을 하며 즐겁게 살자고 생각했다. 마흔이 넘어가면서 이렇게 사는 게 잘 살고 있는 건가 하는 회의가 자주 들었다. 3~5년 후에 나는 어떤 모습일까? 좋은 그림이 안 나왔다. 그러자 큰일 났구나 싶었다. 제2의 인생은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 그대로 있어도 언젠가는 회사를 떠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하다 책을 쓰게 되었다. 16년 동안 변화경영에 대해 일을 해 왔기 때문에 하고 있는 일을 그대로 묻어두기가 아까웠다. 물론 43세에 회사를 떠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러면서도 변화경영이라는 것이 비즈니스가 되는지 알아보자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쓰기 시작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즐거웠다. 흥분되었다. 괜찮은 직업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첫 책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강연 요청이 쇄도했다. 물론 운이 좋았다. 책 한 권 가지고는 직업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안 들었다. 계속 책을 쓸 수 있을까가 문제였다. 스스로 쓸 수 있는 힘이 있나 테스트해야 했다. 회사에 있는 동안 1년에 한 권씩 책을 낼 수 있나 시험해봤다. 3년 후 46세에 네 번째 책을 준비하면서 회사를 퇴사했다. 그렇게 해서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가 세상에 나왔다.” 구본형 소장은 이렇게 직장에 몸담고 있으면서 글쓰기로 끊임없이 자신을 테스트했다. 그리고 그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책은 나를 표현하는 것이고 변화경영연구는 전문 분야다. 책만 써가지고는 전문가라고 하기 어렵다. 특정 분야를 가지고 책을 쓰는 게 중요하다.” 특정분야를 가지고 3개월만 미쳐보자. 분주한 삶 속에서도 자기만의 관심사를 탐색해야 한다. 콘셉트를 잡고 자료를 수집하고, 경쟁 도서를 분석하고, 목차를 완성해 글쓰기를 시작해보자. 오직 꿈의 씨앗을 뿌려 수확의 기쁨을 얻겠다는 각오로 글쓰기를 삶의 우선순위에 두어 써보는 거다. 딱 3개월만 자발적 구조조정을 단행해보자. 나도 워킹맘으로 살면서 책 한 권을 써봤다. 각오를 하니 3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것이 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직접 경험하고 나니 그때부터는 하고 싶은 일들을 조금씩 계획하며 실천해보는 습관이 생겼다. 목숨 걸고 자기 혁명을 시도한 3개월이 어쩌면 당신의 인생 2막을 열게 하는 값진 시간이 될 것이다. 아깝고 소중한 인생, 1막으로 막을 내리지 않도록 지금 도전해보자.
당신 생애 단 한번 이루어보고 싶은 꿈이 있는가?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꿈,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인생이 있는가? 그렇다면 딱 3개월만 미쳐보자. 나태함과 분주함, 두려움, 이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 당신의 꿈을 이루어줄 글쓰기라는 리스크 적으면서 강력한 무기를 사용해보자. 그것을 무기 삼아 주어진 현실이라는 전쟁터에서 한번 싸워보는 것이다. 제2의 인생을 멋지게 살아볼 미래의 기회를 갖게 될지도 모르니... 먹고사는 일을 하면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스스로 3개월간 자발적 구조조정을 단행할 각오로 임한다면 더 빠른 속도로 원하는 인생을 살게 할 자신의 꿈에 프로펠러를 달수 있다. 매일 그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스스로를 황홀하게 하는지 경험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