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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반장 Jun 21. 2019

[칼럼]유명한 여수, 알려지지 않은 여수 재생

여수시 도시재생지원센터의 첫걸음

머리말


도시재생이라는 말이 전국을 강타하고, 해마다 수백 개의 도시가 도시재생사업을 목표로 노력하고 있다. 아직도 많은 주민들은 재생이라는 단어를 생소하게 생각하고, 또 누군가는 기존의 개발이라는 단어와 반대되는 말로 이해하고 있거 나, 다른 의미의 개발사업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등 우리 사회를 둘러싼 재생과 관련된 크고 작은 일들은 다양한 방향으 로 발산되고 있는 듯 보인다. 살고 싶은 도시 만들기 시범사업이나 문화마을 만들기, 문전성시 프로젝트 등을 수행하고 있었을 때부터 주민과 함께 호흡하던 활동가들과 이제 막 도시재생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은 다른 것도 사실이다. 여수는 특별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도시이다. 2012 여수EXPO의 개최 도시이며, 가수 장범준이 부른 ‘여수밤바다’의 배경 도시로 흔히 알려져 있다. 조금 연배가 있으신 분들은 오동도의 동백꽃을 떠올리기도 한다. 대체로 관광과 관련된 이미지이다. 지금 여수시 도시재생지원센터의 전문가들은 모두 타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어 이들도 처음에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수는 매우 유명한 도시였지만, 여수의 재생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는 ‘장소 중심의 재생생태계 기반 마련’ 을 목표로 활동하기 위해, 여수의 이야기를 알아보는 것으로 첫 번째 업무를 시작했다. 오늘 소개하는 내용은 그 이야기의 한 조각이다.


여수의 성장


사실, 여수는 수산업과 물류로 성장한 도시였다. 예전에는 ‘쥐포 팔아서 서울 간다’라는 말이 있었고, ‘여수에서 돈 자랑 하지 마라’라는 말도 있었다. 지금도 구시가지의 어르신들과 대화하다보면 여수경제의 전성기였던 1970~1980년대 시절을 화두에 올리는 분이 많다. 이러한 경제 활동이 이뤄진 시가지의 형태는 일제 강점기에 거의 형성되었다. 일제 이전에는 과거 진남관을 둘러싼 매영성 바로 앞까지 바다가 있었다. 그곳을 일제강점기 시절 매립하고 만든 시가지가 지금의 중앙동이고, 그 당시 신(新)여수라고 불렸던 한려동이 오동도와 진남관을 연결하였다. 또 서쪽의 국동지역도 그 당시 매립으로 만들어진 지역이다. 그리고 매립지를 중심으로 바다에서 잡아 올린 수산물의 거래가 이뤄졌다. 육지에서 만든 생산물은 한려동의 항구를 통해 일본으로 나갔다. 해방 이후에도 산업구조는 비슷하게 유지되었다. 수산업은 여전히 활황이었고, 일본과의 공식 교류가 없어진 우리나라에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진 네트워크를 통해 일본의 상품이 들어왔다. 들여왔던 상품 중 하나는 대형 버스의 엔진이었는데, 이를 개조하여 어선에 장착하였다고 한다. 높은 출력을 갖춘 어선은 수산업을 중심으로 산업이 형성되어 있던 여수에서 매우 중요한 자산이었다. 여수의 어선은 전국에서 가장 강력한 엔진으로 가장 빠르게 많은 어획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또한, 쉽게 구할 수 없던 일본산 상품이 가장 먼저 거래되어 부유한 도시로 성장하였다.


쇠퇴 원인과 극복을 위한 노력들


일본과의 비공식 교역으로 얻을 수 있는 재화는 한일협정 이후 줄어들어 1990년대에 들어서는 사라졌고, 어족자원 고갈로 수산업도 하향곡선을 그렸다. 이것이 여수 원도심 쇠퇴의 시작이라고 주민들은  하고 있다. 그래도 먹고살 만하다고 생각하던 나날이 지나고, 어느날 갑자기 어족자원 보호를 이유로 시작된 어업쿼터제가 지역경제에 직격탄을 날렸다. 지역경제를 떠받치던 산업이 사라지니 상권은 위축되었다. 그리고 그 무렵 계획된 신도시로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을 방법이 없어졌다. 과거의 화려했던 미항(美港) 여수에는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변화의 필요를 느낀 것은 여수 원도심의 주민들이었다. 주민들은 여수시, 여천시, 여천군으로 구성되 어 있던 여수반도의 자원을 연계하고 활용하는 것이 쇠퇴하는 구도심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여천시는 여수산단(구 여천산단)의 근로자가 많이 거주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경제활동이 안정적이었다. 1994년 여러 진통을 겪고 네 차례의 주민투표를 통해 지금의 여수시로 재탄생한 여수반 도는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기대의 바람도 잠시, 감사원, KBS, 한국은행 지점 등이 이전 또는 통 · 폐합되는 등 종주도시 기능 쇠퇴가 가속화되고, IMF를 겪으면서 여수 원도심의 해운업이 축소되는 등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여수시가 생각한 회심의 카드는 여수EXPO였다. 기능을 잃은 여수역과 항구의 기능을 대신할 집객시 설은 여수 구도심의 활성화를 위한 마중물이었다. 아마, 지금 이러한 계획을 수립하였다면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경제기반형 사업으로 충분한 이유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수시에 천운이 따랐 을까. EXPO가 열리던 2012년 4월에 장범준의 ‘여수밤바다’가 발표되면서, 관광객이 급증하여 새로운 산업을 성장시킬 동력을 얻게 되었다. 여수EXPO의 사후 활용에 대한 숙제는 새로운 고민거리가 되었지만, 여수밤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자원을 연계해서 구도심 활성화에 연결하겠다는 구상은 계속 실현되었다. 2014년 도시재생선도사업을 선정할 당시, 여수시에서는 진남관과 여수밤바다를 중심으로 구도심 전역의 활성화를 위한 사업을 구상하였다. 또한, 점적인 도시공간 개발사업에 치우쳐 발생한 사회문제를 조명하고, 지역자원을 연계한 장소 중심의 재생전략을 제시하였다. 아쉽게도 선도사업에 선정되지 못하였지만 이때 수립한 계획을 하나씩 실현해 나갔다. 그것을 재생사업이라고 일컫지 않았지만, 구도심의 쇠퇴를 극복하기 위해 실행되었던 동별로 구성된 도시재생지원위원회와의 합작품이었다.


물리적 환경 구축: 이순신광장과 해양공원의 조성


2008년도에 여수시에서는 살고 싶은 도시만들기 사업을 진행했다. ‘바다가 예쁜 미경(美景) 여수 만들 기’라는 명칭의 사업은 구도심에 면한 해안가의 경관 개선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또한, 이 사업은 여수EXPO를 마중물로 원도심을 활성화하기 위해 계획되었다. 당시 여수시에서는 진남관에서 바다까지 이 어지는 경관축을 조성하고, 해안경관 조명을 설치하여 원도심의 관광인프라를 구축하려고 했었다. 이 축의 남쪽 끝에는 쇠락한 상가가 있었는데, 여수시에서는 그 장소에 광장을 만들기로 결정하였다. 바다 와 맞닿은 곳에 만들어지는 광장이 해안경관을 조망하는 거점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계획하였다. 또한, 주변 상인들이 상권 활성화를 위해 꼭 필요한 시설로 주차장을 지목하였는데, 이것을 반영하여 광장 지하에 주차장을 조성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순신광장은 원도심 관광의 거점이 되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이순신광장으로부터 좌, 우측의 해안을 따라 공원을 조성하였다. 바다를 따라 만들어진 산책로는 과거 부두 위에 만들어졌고, 예전에 배가 접안하였음을 알 수 있는 흔적이 남아있다. 경관이 좋은 장소에는 벤치를 설치하였고, 나무를 식재하여 뜨거운 여름,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하였다. 해양공원은 종포까지 이어지는데 이곳에는 또 다른 주차장이 조성되어 관광객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다양한 프로그램의 도입: 이야기와 낭만포차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광장과 공원의 조성만으로 원도심이 활성화될 수 있다면, 우리가 이토록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물리적 환경을 개선하고 거점을 만드는 사업은 활성화를 목적으로 한 계획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훌륭한 공간을 만들어냈지만, 공간과 주변의 적절한 연계가 없이는 활성화가 어렵다는 것을 알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여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연계하는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했다. 아이디어 중 첫 번째 소개할 것은 음식문화의 거리이다. 과거 어항으로 사용되었던 해안에 면한 건물들은 수산물을 판매하는 가게들로 가득하고, 그 다음에는 음식점들이 위치해 있다. 예전에는 고된 일을 마치고 식사를 하는 골목이었지만, 이제는 새로운 손님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러한 지역의 변화를 감지한 여수는 음식문화의 거리를 지정하고 간판을 정비해서 이순신광장까지 연결하였다. 때마침 지역 맛집 몇 곳이 방송에 나오면서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하고, 입소문이 난 식당을 중심으로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정작 여수토박이들이 옛날 맛집에서 점심을 먹기가 힘들어졌을 정도다. 두 번째 소개할 것은 다양한 축제이다. 여수 가막만의 선소공원은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들었다고 알려진 장소이다. 여수시민에게 이순신 장군의 좌수영과 거북선이 여수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은 남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이순신광장을 중심으로 통제영길과 여러 장소에서 매년 봄에 거북 선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또, 해양공원의 볼거리를 위해 불꽃축제도 시작하였다. 매년 가을에 개최되는 불꽃축제는 여수밤바다에 선상불꽃놀이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때는 여수 원도심과 왕래할 수 있는 대부분의 길이 통제된다. 그리고 불꽃놀이를 관람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 중 하나가 이순신광장이다. 여행 비수기인 봄, 가을의 축제를 통해 관광객이 사시사철 꾸준히 방문할 수 있도록 연계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 소개할 프로그램은 낭만포차와 천사벽화골목이다. 해양공원에 어둠이 드리우면 열리는 낭만 포차는 밤바다를 바라보며 술 한잔 기울일 수 있는 장소로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원래 낭만포차 주변은 야간에 불빛이 없을 정도로 쇠퇴한 지역이었다. 관광객들이 해가 진 후 마땅하게 즐길 거리가 없는 것이 관광도시 여수의 약점이었다. 그래서 여수시는 낭만포차 운영을 위한 음식품평회 등의 심사과정을 거쳐, 2016 년 5월에 처음 문을 열었다. 제2의 장범준을 꿈꾸는 음악가들의 버스킹과 어우러진 낭만포차는 순식간에 여수의 대표브랜드가 되었다. 그리고 주변지역의 건물에는 불이 켜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왕래하게 되었다.


투어리피케이션의 시작


근 10년간의 크고 작은 노력 끝에 이순신광장과 해양공원 주변은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으로 재생되었지만, 모두에게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낭만포차와 맞닿아 있는 고소동은 낮에는 벽화를 보러오는 관광객으로, 밤에는 낭만포차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로 인해 조용한 시간이 없었다. 처음에는 조금씩 동네가 살아난다고 좋아하던 사람들도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니 자연스럽게 자본이 뒤따랐다. 경관이 좋은 곳에는 루프 톱 카페가 들어섰고, 조금 넓은 필지에는 숙박시설이 들어왔 다. 원래 이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생경한 모습들이 늘어났다. 급기야 이곳의 주민들은 낭만포차가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며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일상의 공간에 대한 배려가 조금 더 있었으면 달랐을까, 낭만포차에 공유가치 창출이라는 목표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까. 주민들의 환영을 받지 못한 낭만포차는 올 9월 다른 곳에서 재개장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까지 소개한 일련의 이야기들은 지난 10년간 여수에서 재생이라는 단어가 없이 진행되었던 일들이었다. 재생을 목적으로 한 사업이 일반화되기 전에 많은 지방도시에서 자구의 노력으로 태어났던 장소들과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그 부작용도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조금씩 더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바뀌고 있다.


도시재생 뉴딜의 시대를 맞아


2018년 7월 공모를 통해 선발된 세 명의 전문가가 여수에 모였고, 지금까지 여수의 재생 노력이 지속가능한 재생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으고 있다. 2018년에 공공기관 지원형으로 선정된 문수주택단지의 주거지지원형 뉴딜사업과 올해 일반근린형 뉴 딜사업이 한려동에서 선정되었다. 여수시 도 시재생지원센터에서는 주민들과 호흡하면서 ‘재생을 위한 사업을 지향하고, 사업을 위한 재생을 지양한다’라는 원칙 아래 의견을 모아왔다. 처음에 만난 주민들은 뉴딜사업 공모에 선정되지 못한 서운함과 좌절감을 표현하고 있었다. 센터에서는 작은 단위의 활동 을 통해 마을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불어넣고자 했다. 소규모 재생사업과 주민제안 공 모사업에 참여한 주민들과의 매주 1회 진행 한 워크숍이 큰 역할을 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올해 공모사업에 선정된 한려동의 주민들 은 변화의 기회를 통해 마을의 재생을 바라 보고 있다. 한려동에서의 이러한 과정은 우리 센터의 4단계 재생기반 마련 계획에 따라 진행되었다. 첫 번째 단계는 토양 다지기이다. 이 단 계에서는 도시재생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많은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의 문턱을 낮추고 기존 주민조직과 협업하여 진행하고 있다. 두 번째 단계는 씨앗 뿌리기이다. 이 시점에서는 주민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작은 단위의 활동 및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세 번째 단계는 새싹 가꾸기이다. 이 단계에서는 프로그램 간 연계를 강화하고, 각기 다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주민들이 소통할 수 있도록 하여 새로운 네트워크를 구성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 과정을 거쳐 맺 은 열매를 재생산할 수 있도록 맞춤형 도시재생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전 과정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센터의 주축사업은 주민제안 공모사업과 도시재생시민대학이다. 주민제안 공모사업은 도시재생을 경험하면서 알아가는 참여형 학습현장의 개념으로 인식하고, 최대한 많은 주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도시재생시민대학은 도시재생에 대한 이해 정도가 다른 주민들을 대상으로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이 두 사업은 토양 다지기 단계부터 시작되어 각 단계에 대응하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도시재생시민대학의 프로그램은 1단계에 해당하는 입문반과, 2단계에 해당되는 심화반, 3단계에 해당되는 전문가 양성과정으로 나뉜다. 그리고 올해 일부 3단계에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지역의 주민을 중심으로 오픈테이블을 시작하려고 한다. 주민들은 오픈테이블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와 본인의 마을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갈등이나 현안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다. 여수시 도시재생지원센터는 이러한 과정이 견실하게 진행될 때, 여수시가 생각하는 맞춤형 도시재생사업을 실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맺음말


재생이라는 단어가 생소하다고 생각하는 주민들도 그동안 여수에서 있었던 일련의 변화과정을 함께 나누면서, 이것이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도시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이며, 나와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접하는 방식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로 인식하는 주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막연한 걱정이 가득했던 우리 센터도 뉴딜 공모사업 이후의 여수재생을 고민하고 있다. 유명한 여수의 잘 알려지지 않은 재생 이야기가 널리 소개될 무렵, 여수에서는 여수 냄새가 물씬나는 재생을 시작하고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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