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조, 임경선,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나다운 삶’을 찾기 위해서라면, 나는 그 반대 방법이 낫다고 봐. ‘하고 싶은 걸 찾기’보다 ‘하기 싫은 걸 하지 않기’부터 시작하는 거지. 왜냐면 ‘좋음’보다 ‘싫음’의 감정이 더 직감적이고, 본능적이고, 정직하니까. ‘하기 싫은 일’, ‘곁에 두고 싶지 않은 사람’을 하나둘 멀리하다 보면 내가 뭘 원하는지가 절로 선명해져. 글쓰기로 치면 그래. 일단 손 가는 대로 막 써놓고,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가지치기하는 것. 그러면 글이 명료해지고, 내가 처음에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도 분명해지지. 더 나아가 ‘아, 싫다’라고 느끼는 순간 나를 그들로부터 멀리하는 것, 그게 결국 나를 사랑하는 법이라고 생각해.
—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19쪽
‘나다운 삶’을 찾기 위해 ‘하기 싫은 걸 하지 않기’를 하라니요? 언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 실은 저, 40년 넘게 살면서 ‘좋아하는 게 뭐야?’라는 질문에 우물쭈물하지 않고 대답하게 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이제야 “말없이 타자를 두드리는 행위”, “새벽에 마시는 커피”, “가만히 책 읽는 시간”, “수영할 때 귀에서 들리는 뽀글뽀글 소리” 같은 걸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됐어요.
그런데 하기 싫은 건... 어떻게 찾나요?
하기 싫은 걸 찾기 위해서, 반대로 좋아하는 걸 왜 좋아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결국 저는 ‘혼자’, ‘조용히’가 필요한 사람이더라고요. 누가 저한테 “소원 하나 들어줄게”라고 하면 이렇게 말할 것 같아요. “음악도 틀지 않은 조용한 카페에서, 바다를 바라보다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다, 노트에 글자를 끄적이고 싶어요. 아무도 저한테 말 걸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진짜 그런 일이 생긴다면 “로또 맞게 해 주세요. 무병장수도요.”라고 하겠지만요.)
이제 알겠어요. 제가 하고 싶지 않은 건 ‘큰 소리 내기/듣기’, ‘남이 들으면 싫은 말 하기’, ‘말을 많이 하기.’ 예요. 언니도 이미 눈치챘겠지만, 저 타고난 내향인이거든요.
좋게 말하면 ‘조용한 평화주의자’, 나쁘게 말하면 ‘방해를 싫어하는 좁은 오지랖의 소유자’. 바로 저예요.
그런데 쓰다 보니 점점 마음속으로 야단이 나요. 아무래도 직업을 잘못 고른 것 같거든요. 남에게 관심 없는 사람이 하루에 백 명 넘는 사람에게 떠들어 대요. 오늘은 학교 식당에서 질서 지도를 하느라 전교생을 만났고, 새치기 현장에선 핏대를 세워 소리를 질렀어요. 말을 듣지 않는 녀석들에게 듣기 싫은 말도 해야 했고요. 쉬는 시간은 언제나 소음 공해 현장이지요.
오늘은 글쎄, 중학교 1학년 애들한테 이렇게까지 말했어요.
“선생님이 너희 혼내는 게 재미있겠니? 내가 미친 사람도 아니고.”
좋은 말만 해주고 싶은데, 그러면 또 애들이 못배워서 잘못될까 봐 걱정돼요. 어른이 되어서 그러면 안 되잖아요, 그쵸?
아휴, ‘하기 싫은 일’을 생각하다 보니 신세한탄까지 왔네요. 언니가 그랬잖아요.
에세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저자가 자기 생각이나 생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자유롭게 쓰는 것을 허락하는 장르잖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쓰면 자칫 그걸 쓴 당사자 본인만 즐거울 뿐이야..... 마음에 스미는, 혹은 투명한 깨우침을 주는 인생의 교훈 같은 것을 선물처럼 숨겨두어야 한다고 봐. 그 교훈의 내용과 전달방식이 창의적이고 은근하고 세련될수록 그 에세이의 매력은 더 클 것이고.
—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195쪽
그러니까요 언니, 오늘 제가 언니한테 털어놓은 이야기는 우리끼리만 보는 걸로 해요.
이제 다소 교훈적으로 마무리하려고요. (교훈을 선물처럼 숨겨놓는 것은 어떻게 하는 걸까요? 이래서 작가가 못 되나 싶네요.)
싫은 일을 해야하는 까닭은,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해내는 과정 중 하나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를테면 '나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으니까 말 안 듣는 녀석들을 잘 가르쳐야 해.' 처럼 말이에요.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하고 있는 싫은 것 투성이 속에도, 사실은 내가 사랑하는 것들, 행복한 순간들이 숨어 있어요. '소불행’ 속에 ‘소행복’들이 오골오골 들어 있다고 할까요.
꼭 해야하는 것을 하면서도 싫은 일을 피할 수 있는 날은, 좀더 지혜로워진 미래의 나에게 맡길게요. 지금은 이게 최선인듯 해요.
오늘은 그냥 그렇게 생각해 버릴래요. ‘정신 승리’라도 괜찮아요. 그럼 안녕!
P.S. 오늘따라 유난히 짜증 게이지를 가득 채우고 집에 온 이유를 알겠어요. 제가 '고요'를 사랑한다고 고백했잖아요? 그런데 오늘은 퇴근 직전까지 겨울 축제 오디션 심사위원(무려 심사위원!)을 했거든요.
찢어질 듯한 일렉 기타, 부서져라 두드리는 드럼, 번번이 삑사리 나는 마이크. 귀는 살려달라 아우성쳤어요.
근데 그거 아세요? 잔뜩 긴장한 얼굴로 노래 부르는 아이들을 보니 눈은 행복했어요. 잠시나마 찡했던 것 같기도 하고.
이 또한 ‘소행복’과 ‘소불행’이 손을 맞잡고 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