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말이지. 나, 과연 웃고 있나? 오늘 하루, 열 번은커녕 다섯 번도 웃지 않은 것 같은데. 거울 속 무표정한 내 얼굴을 한 번 쳐다본다. '이 딱딱한 얼굴 누구세요?'. 매일매일 웃을 이유보다 화낼 까닭을 찾고 있지는 않았을까? 비판적인 말로 존재감을 드러내려 애쓰지는 않았는지 생각한다.
같은 상황에서도 웃는 얼굴로 밝은 면을 찾아보자. 긍정적인 마음은 대책 없음의 동의어가 아니다. 오히려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힘이고, 스스로를 격려하는 과정이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어떤 일을 할 때, 밝은 면을 바라보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간다. 반면 어두운 면만 바라보는 사람은 불평에 머물러 결국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때가 많다. 웃을 일을 만들어 하루 열 번 웃자. 웃는 얼굴은 다 예쁘다. 보톡스보다 효과 좋을 듯.
출처 : 무한도전
그리고, 하루 한 번 선한 일을 하자. 문득 생각했다. "착한 사람이 되자"라는 마음으로 살고 있나? 누군가에게 작은 친절을 베풀었나? 솔직히 말하면, "나쁜 사람만 되지 말자" 정도로 타협했던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착한 사람이 많은 세상이 되었으면 바라다니 나도 참.
'11111'이라는 말을 아침 일찍 들었다면, 워크숍에 혼자 와서 뻘쭘해하던 분께 먼저 다정하게 말을 걸었을 텐데.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래, 선한 일을 하자. 내가 먼저 착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엘리베이터에서 달려오는 이를 위해 열림 버튼을 누르고 잠시 기다리는 일, 눈에 띈 쓰레기 하나 주워 거리를 밝히는 일, 바쁜 사람을 위해 좋은 주차 자리를 남겨 두는 일. 선한 행동을 '남들의 눈에 띄는 착한 척'으로 여기며 부끄러워한 것 같다. 내향인이어서 수줍다는 마음 뒤에 숨어, 선한 행동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을까. 밥 한 술만큼의 용기를 내어 선한 일을 하자. 그리고 말이지. 착한 척이 뭐 어때? 착한 척을 하다 보면 언젠가 진짜 착해질 수 있잖아?
운동, 독서, 글쓰기가 영양제라면, 웃음, 선한 행동은 밥이다. 아무리 좋은 영양제를 먹어도 밥이 부실하면 소용없다. 운동하고 읽고 쓰는 것도 결국 웃으며 착하게 살기 위한 노력이다. 행복하게 웃는 사람이 아니라면 다 무슨 소용인가 말이다. 그러니 결론은 하나다. 영양제만 먹지 말고 밥도 잘 챙겨 먹자. 웃고, 선행을 베풀고, 성장하는 삶을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