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뉴욕꼬질이들 Mar 30. 2020

미국 남자와 연애는 처음이라 ep.29

뒷바라지의 서막


민익씨가 돌아왔다.


한 남자가 나를 위해 다른 나라로 물을 건너오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그동안 몇 가지 인상 깊었던 점들을 엮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1. 화장실을 안 가는 로봇


이산가족 상봉을 방불케 하는 재회의 순간을 거쳐 택시 기사님의 차에 함께 탔다.

공항에서는 짐이 많아 손을 잡을 여유도 시간도 없었다.


택시에서 은근슬쩍 그가 앉은 쪽으로 손을 내민다.

무시무시한 바이러스도 잠시 잊는다.


처음 사귄 날로 돌아간 것 마냥 어색하다.

둘 다 쭈뼛쭈뼛 말이 없다.


“잠은 좀 잤어?”


“아니.”


“한숨도 안 잤어?!”


“응.”


예민해서 일까 그는 비행기를 타면 잠을 안 잔다. 나는 비행기든 차든 택시는 뭐만 타면 곯아떨어진다.

바퀴가 굴러갈 때 진동에 아기들이 금세 잠이 든다는 데 나는 아직도 멘털이 아기인가 보다.


“왜 잠을 하나도 못 잤어?”


“그냥.”


허리가 아프다는 민익씨를 보고 있자니 측은하다.

14시간 비행은 정말 힘들다.


“화장실은 갔어?”


“응.”


“몇 번?”


“한 번.”


“열네 시간 동안 화장실을 한 번 밖에 안 갔다고?!”


“응.”


허리가 아플만한 건 둘째 치고, 방광의 크기가 얼만한지 모르겠다.

나는 장거리 비행을 할 때 심심하고 지루할 때마다 일어나서 화장실에 다녀온다. 나에게 복도석은 필수다.


“복도 자리가 아니었나 봐?”


“복도였는데.”


뭐라 할 말이 없다.

미국에서는 한 번 집 밖으로 나오면 화장실에 갈 생각은 안 하는 것이 좋다. 공중 화장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어느 건물에 들어가도 화장실은 찾기가 힘들다. 그래서 밖에 나가면 집에 돌아올 때까지 참거나, 머나먼 백화점을 찾아 떠나야 한다. 가끔 운이 좋으면 스타벅스에 딸린 화장실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흔치 않다. 그래서인지 나는 뉴욕에서 난생처음으로 길바닥에 있는 사람 똥을 봤다. 전화부스 뒤에 숨겨져 있었다. 급했던 모양이다.


아무튼 오랜만에 만난 민익씨의 신체적 특질이 새삼 놀랍다.



#2. 세요니다 민익봇


택시에서 내렸더니 민익씨를 고용한 고용주가 기다리고 있다. 학원을 관리하는 디렉터라고 본인을 소개하셨는데, 한국 남자분이다. 모르는 한국 여자가 곁에 있어서 조금 놀란 눈치다.


“친구인데 도와주려고 공항에 마중 나갔다가 같이 왔어요. 미리 말씀을 못 드려서 죄송해요.”


“아, 아닙니다.”


여자 친구라고 하면 혹시라도 민익씨가 프로페셔널하지 않다는 인상을 받을까 싶어서 둘러댔다. 근데 누가 봐도 뻔하긴 하다.


디렉터가 학원의 위치나 민익씨가 살 곳에 대해 간단히 알려준다. 민익씨의 집은 냉장고, 세탁기, 옷장, 침대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작은 단칸방이다.


그가 살면서 필요할 것들을 쇼핑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민익씨는 꾸준히 한국말을 공부하고 있지만 아직 단어나 간단한 문장을 말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한국말을 하고자 하는 열의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뜨겁다.


내가 물건을 사러 가면 계산대 직원분들과 항상 나누는 이야기가 있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우리나라가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는 이유를 알겠다. 인지하지 못하고 늘 하던 말이었는데 민익씨 덕분에 깨달았다.


민익씨는 내가 “안녕하세요?” 하면

“세요?” 하고


내가 “감사합니다.”하면

“니다.” 한다.


그리고 마치 본인이 직접 한국말로 대화를 한 것처럼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다.


앵무새를 데리고 다니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하지만 그러려니 한다.


#3. 뒷바라지의 서막


나를 위해 머나먼 타국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와 주었다는 생각에 나는 한동안 민익씨에게 간도 쓸개도 다 빼줄 기세로 대해줬다.


타지 생활을 아예 처음 해 보는 그 인 데다, 한국말도 서툴고 음식도 생소할 것 같아서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코로나의 여파로 중간 지점에서 만나지 못하고 그가 사는 수원까지 손수 가야 했고, 거의 아무것도 없는 그의 집을 위해 해 줄 일이 많았다.


책상과 의자, 믹서기와 밥솥이나 청소기구 등 필요한 것들을 주문했다.

한국말을 모르니 거의 내가 온라인으로 주문하거나 함께 가서 사줘야 했고, 환전을 하나도 해 오지 않은 그를 위해 원화를 긴급 공수하고 그에게 내 미국 계좌로 돈을 부치도록 했다.


미국 뉴욕에는 분리수거도 없고 음식물 쓰레기봉투도 없고, 일반 쓰레기봉투도 없다. 나오는 모든  쓰레기는 음식물 일반 가릴 것 없이 아파트에서 지정한 쓰레기통에 버리면 된다.

음식물 쓰레기봉투와 일반 쓰레기봉투를 사는 곳부터 시작해서 버리는 방법 및 분리수거하는 법까지 알려줘야 했다.


끊임없이 배달 오는 제품들은 함께 힘을 모아 조립하고, 세탁기나 보일러, 에어컨 사용법 등 가르쳐 줄 것이 한도 끝도 없었다.


하드코어 게이머인 그가 티비를 사겠다고 했을 때는 전기세가 많이 나오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어 말릴까 싶다가도 최저가 상품을 검색하느라 쉴 새 없이 핸드폰을 두드렸다.


코로나 때문에 학원이 휴가를 줬기 때문에 아침부터 밤까지 그를 위주로 돌아가는 생활이 2주 정도 지속되었다.


음식이 입에 맞았으면 해서 그가 먹고 싶은 것부터 물었고, 적응하기 쉽고 마음 편하라고 그가 하고 싶은 것부터 물었다.


나는 그에게 은행, 가이드, 청소부, 비서, 매니저, 통역가, 엄마, 누나, 이모가 되었다.


중요한 건 여자 친구로서의 내가 없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나 먹고 싶은 것은 생각하지 않고 그부터 챙기다 보니 나를 잃어버리는 느낌이다. 한국 어머니들이 자식 키우다 많이 느끼는 감정이라고 들었는데 나는 애도 없는데 이게 무슨 짓인가 싶어 덜컥 현타가 온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출근하는 민익씨를 기다리며 함께 아침을 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민익씨는 혼자서 본인 아침을 홀랑 해 먹었다. 나도 그 날은 집에 돌아가야 하는 날이라서 수원에서 서울까지 먼 길을 떠나기 전에 뭔가를 먹어야 한다. 나는 당연히 둘이서 뭔가를 먹을 줄 알고 기다렸는데 자기 혼자 블루베리, 오트밀, 요거트 등을 듬뿍 넣은 건강 스무디를 만들어 먹은 것이다.


꾹꾹 참던 감정들이 폭발한다. 내 감정들은 종종 사소한 일들로 터져 나온다.


“당연히 같이 아침 먹을 줄 알고 기다렸어. 나는 서울까지 가야 해서 배고플 텐데 그렇게 혼자서만 먹고... 나는 안중에도 없어?”



“미안. 생각을 못했어.”


“자기 오고 나서 3주 동안 내가 계속 맞추기만 하는 거 알아? 내가 하고 싶은 건 하나도 못하고 계속 뒷바라지만 하는 거 같아.
여자 친구가 아니고 엄마가 된 기분이야.
난 여자 친구이고 싶지, 자기 엄마가 아니야.
왜 나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거야?”


당연하게 생각하다.


영어로도 정확한 표현이 있다.


take it for granted


누군가의 호의나 친절을 고마워하다가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을 일컫는 숙어다.


이런 표현이 있는 것을 보면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유명한 영화의 구절 또한 만국 공통인 것 같다.


“나는 자기 위해서 서울에서 수원까지 왔다 갔다 해. 와서 아침부터 뭐 먹고 싶냐, 오늘은 뭐 하고 싶냐, 어떻게 하고 싶냐 일일이 물어봐. 자기가 필요한 게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구하려고 노력해. 내가 이렇게 하는 일들이 쉬운 것 같아?”


영어로 싸울 때는 이성을 잃지 않고 차분하게 조곤조곤 말해야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의사전달을 할 수 있다. 감정적으로 마구 이야기하다가는 문법도 틀리고 단어도 생각이 안 나서 싸움을 망쳐버리거나 우스워질지도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영어로 말할 때는 ‘내가 이런 기분이 들어!’라는 말을 하는 것이 그나마 쉽다. 한국어로 나와서 영어로 번역하는 필터를 한 번 거쳐야 하기에 감정이 조금은 걸러진다. 한국말로 싸웠다면 크게 싸움이 번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제 와서 든다.


“미안해.”


미안하단 말 밖에 민익씨는 할 말이 없나 보다.


서러운 마음에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다음 주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거 다 하자. 나 생각해줘서 고마워. 나도 앞으로 자기 생각해주도록 노력할게.”


역시나 최고의 답변이다. 아들 키운 보람이 이런걸까.(?!)


마냥 싸우려고 덤빌 때는 민익씨도 조금 짜증스러워 보였는데, 우는 데는 장사가 없나 보다.


그래도 분이 가시질 않는다.


“학원 근처에 커피숍 있는데 거기서 같이 아침 먹을래?”


“됐어. 자긴 이미 먹었잖아. 그냥 다음부턴 나도 좀 생각해줘.”


아침부터 일방적인 싸움이 끝나고 집을 나서는 길에 민익씨의 직장 동료와 마주쳤다. 몽골에서 온 아누라는 아가씨인데 마침 아침밥을 안 먹었단다. 난 이미 택시를 불러서 같이 먹지 못하고, 민익씨는 졸지에 아누 아침밥 먹는 곁을 지켜주게 되었다. 참으로 아이러니다.


쿨하게 택시를 탔는데 만감이 교차한다.


‘내가 평소에 내 감정을 잘 표현하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면 되는데, 왜 괜히 맞춰만 주다가 별 것도 아닌 거에 쌩 난리를 피우고 싸우는 걸까.’


‘남자 친구가 왔다고 얼싸안고 기뻐할 땐 언제고 이제는 날 막대한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다니...나도 참...’


후회가 밀려온다.


민익씨는 요즘 우리의 데이트 비용을 모두 본인이 부담하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위험하다고 서울에서 수원까지 택시비도 준다. 모아둔 돈도 별로 없으면서 말이다. 나는 곁에서 모든 것을 도와준다는 핑계로 그걸 당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되려 내가 take it for granted 한 것이다.


내 감정선이 워낙 굵고 진하고 요동을 치다 보니 가끔은 스스로가 제풀에 지친다.


민익씨는 감정선의 기복이 없다. 무미건조하지만 드라마틱하지 않아서 좋다. 요즘음 처음 만났을 때랑 거의 똑같은데 아주 미세하게 애정표현이 풍부해졌다.


‘다음 주에는 더 잘해줘야지.’


가까이 오니까, 손에 잡히니까,

곁에만 있어줬으면, 내 곁에 와주기만 하면,

하며 없던 욕심이 다시 뭉게뭉게 솟구친다.


법륜스님 강의를 아무리 들어도 아직 멀었다.







많은 장거리 커플들이 다시 물리적인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오히려 위기를 맞는다고 하네요. 왜인지 대충은 이해가 갑니다만, 현명하게 잘 극복하기 위해 노오력 중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