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려치울 회사가 없다
나는 지난해 미국에서 돌아온 후 소소하게 비즈니스 영어 수업으로 근근이 먹고살면서 약 9개월 동안 나만의 사업을 준비했다.
사업이라고 하니까 좀 거창하지만, 어쨌든 사업자를 내면 사업이니까 어색해도 이렇게 부르련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우리나라에도 있긴 하지만 아직 흔하지는 않아서,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일이었다.
준비를 하던 9개월 동안 내 머릿속은 동공 지진이 아니라 두뇌 지진이 났다. 지켜보는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막막한 마음에 패션 회사를 다니면서 유튜브와 사업 준비를 함께 하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몇 군데 면접을 봤다. 나이가 많아 서류부터 받아주는 곳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유학생을 알아주는 디자이너 브랜드는 면접만 보면 다 붙었다. 다만 그 회사들을 다니면 주 6~7일 근무가 눈에 보였다.
“주말에 알바를 쓰면 돈이 드니까 사원을 쓰는 게 낫죠.”
쿨하게 웃으며 말하던 면접관에게
‘사원은 돈을 안 줘도 되나 보군요...’
내 취업의 문턱을 더 이상 높이고 싶지 않아 속으로 말했다.
패션 회사를 다니면 사업이나 유튜브는 꿈속에서 준비해야 했다. 주말 근무나 격주 토요일 근무는 당연했고, 부부 회사, 가족 회사 등 취업하면 좋지 않다고 전해 들은 조건들이 모조리 붙어 있는 회사들만 골고루 붙었다.
미국에서는 국적이 걸림돌이었는데, 이제는 나이가 걸림돌이다. 한 패션 디자이너 카페에 늦은 나이에 미국을 가고 싶다고 글을 올렸을 때 뜯어말리던 디자이너 분들의 댓글이 떠올랐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여전히 패션을 사랑한다는
점이다.
패션에 관련된 일을 평생 하고 싶다. 덕업 일치는 패션에 관련된 직업에서 이룰 수 있다.
다만 더 이상 회사를 다니기가 싫었다.
알바 자리를 알아봤다. 동대문에서 새벽 6시부터 정오까지 옷가게를 지키고 물건을 파는 장사 알바였다. 일찍 일어나고 경험도 쌓이고 반나절을 활용할 수 있어 좋아 보였다. 이력서를 내밀자,
“여길 대체 왜 오셨어요...? 취직을 안 하시고....??”
하는 반응이 전부다.
나이 많은 유학생은 말을 안 들을 것 같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일찍 그만둘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다루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고 알바 자리에 족족 떨어지는 이유를 합리화했다. 면접만큼은 자신이 있었는데, 알바를 자꾸 떨어지니 자존감도 함께 떨어졌다.
나중에는 의류를 포장하고 배송하는 알바까지 알아봤는데 우선 오전만 일하는 알바는 일자리가 많이 없고, 합격한 곳은 풀타임 근무를 원했다.(이쯤 되면 적당히 일할 바에는 시작도 할 수 없는 일복이 터진 팔자다.)
“아픈 데는 없으시죠? 허리라던가... 무릎이라던가...”
서른다섯이 골병드는 나이인가 싶어서 웃음이 나왔다.
알바 자리를 구하다 짜증이 날대로 났다. 하던 거나 하면서 얼른 사업자를 내기로 했다.
사업자 등록은 허무하리만큼 쉬웠다.
그냥 인터넷 상으로 시키는 대로만 하면 5분 만에 등록증이 나온다.
준비한 것을 어디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잘할 수 있을지,
어떻게 세상에 알리면 좋을지...
막막했다.
안갯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사실 지금도 걷고 있다. 조금은 걷혔지만 저 앞에 있는 뿌연 것이 안개인지 연기인지 화염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일에 본격적으로 박차를 가한 지 3개월 정도가 지났다. 그동안 내가 느낀 프리랜서의 이상과 현실을 적어보려 한다. (기나 긴 서론이었다.)
내가 하고 싶으면 해도 되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하면 된다.
회사에서는 정해진 기한 내에 맡은 일을 할 수 있게 대충 눈치를 봐 가며 일하는 요령이 필요했다.
나는 요령을 부리지 못해서 몸이 상하는 스타일이었다. 내 몸 상태를 챙기기보단 일을 빨리 끝내버리고 싶었다. 너무 힘들어서 쉬고 싶을 때에도 꾀를 부리면 금방 티가 나서 다음 일을 맡았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와 ‘ 완벽주의’, ‘칭찬받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를 합치니 몸과 정신에 무리가 왔다. 회사 생활을 장기적인 레이스라고 본다면 나는 단거리를 뛰고 지쳐 쓰러졌다. 만약 계속 회사를 다녔다면 일 중독에 걸렸다가 번아웃이 오거나, 성격 혹은 정신이 이상해 지거나, 몸이 상하거나, 시집갈 타이밍만 노리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만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던 상황이 지금은 크게 달라졌는가를 생각해보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
여전히 일을 많이 하고, 더 하고 싶어 하고,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일을 하고 있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을 때는 하고, 안 하고 싶을 때는 안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서 한다는 생각이,
내가 쟤보다 더 많은 일을 떠맡았을 때 억울함을 느끼는 소모적인 감정싸움에서의 해방감이,
하루를 온전히 내 의지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즐거움이,
나에게는 큰 플러스로 작용하고 있다.
자기도 잘 모르면서 다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무리하게 일을 시키며 출근부터 퇴근까지 새우눈을 뜨고 감시하는 사장님,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한다는 매뉴얼은 없는데 실수하면 오직 모멸감만 줄 수 있는 욕만 골라서 던지거나 버럭버럭 화를 내는 신경질적인 상사, 편 먹고 뒤에서 남 욕하고 따돌리기 좋아하는 직장 동료가 없다.
쪼으는 상사도, 피곤한 눈치 게임을 해야 하던 동료도, 나눈 이야기를 곱씹으며 이불을 걷어 찰 선후배도 없으니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그런데 그 대가로 돈을 주는 사람도 없다.)
친절하고, 매사에 긍정적으로 임하려는 나를 당연시하거나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이 줄었다. 오히려 고마워하고, 기분 좋게 받아들여 주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착하면 호구다, 일만 곰처럼 많이 하게 된다, 여우처럼 행동해야 한다, 얕보이면 함부로 대한다’ 같은 것들이 국룰처럼 여겨졌다면 이제는 친절을 호의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호의를 둘리로 여기는 사람들이 줄었다.
일회성 만남이 대부분인 환경에서 일하다 보니 가끔은 고립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만큼 다양한 직종에 근무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새로운 감정들이 솟구치고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운다. 일을 하면서 사람을 만나는 게 즐거운 건 처음이다.
회사를 다니며 다른 수익을 만드는 경우도 많지만 본업 자체를 다방면으로 확장할 수 있다.
나는 프리랜서가 자신의 재능을 나누는 사이트들을 통해 사업을 홍보했다. 다행히도 코로나로 취미 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는데 불행히도 코로나로 오프라인 취미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없어졌다.
그래도 내가 주요 수입원으로 일하는 서비스에 많은 분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주셨고, 해당 웹사이트의 매니저나 촬영 담당 PD와 프로모션이나 수업 기획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나눌 정도로 아직은 호응이 괜찮은 편이다.
현재는 내가 주로 일하는 일반인 대상 이미지 컨설팅 외에도, 안경 브랜드의 화보 촬영을 위한 스타일링, 퓨전 국악 재즈 3인 그룹의 스타일링, 유튜브 촬영(뜸하게 올리고 있긴 하지만), 온라인 수업 기획, 영어 수업까지 할 수 있는 건 다 하면서 수입원을 다양화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아는 지식을 나누기 위해 노력 중이다.
회사에서는 잘못하면 혼내는 상사가 있었다. 혼이 나면 기분은 나쁘지만 여전히 월급은 들어온다. 실수는 실수로 받아들여지고 지나치게 반복되지 않는 한 사회초년생에게는 비교적 관대한 편이다.
내가 내 일의 주인이 되면 가르쳐주는 사람도, 혼을 내는 사람도, 칭찬해주는 사람도 없다. 내가 잘하든 못하든 대중이 반응하고, 세상은 생각보다 차갑다. 잘 못 하거나, 운이 없거나, 그 외의 어떠한 이유로도 언제든 밥줄이 끊길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감정이 무관심이라고 했다.
왠지 사업이라는 말을 들으면 일이 물밀듯이 쏟아지고 열심히 밤낮으로 일하는 사업가가 떠오른다.
현실은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단지 운이 안 좋으면, 소개를 하는 것에 서툴면 등 다양한 이유로 대중의 외면을 받을 수 있다. 누가 지켜보지는 않지만 지켜보는 것보다 마음의 부담이 백배는 더 하다.
회사를 다닐 때는 일과 삶의 경계를 퇴근 전과 퇴근 후로 나눌 수 있었다. 퇴근하고 나서는 일 생각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서 쉬거나 다른 취미 활동을 할 여유가 있었다.
이제는 말 그대로 퇴근이 없다.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다음에 할 일 생각밖에 없다. 다음 손님 준비도 해야 하고, 유튜브도 찍어야 하고, 온라인 강의도 만들어야 하고, 영어 수업도 준비해야 하고, 책도 한 권 써보고 싶고... 하루는 24시간이고 몸은 하난데 잠은 충분히 자야겠고 할 일은 수십 가지다. 욕심이 많아지니 더 그렇다.
회사 갈 때는 그렇게 안 떠지던 눈이 8시면 자동으로 떠진다. 8시가 이른 시간은 아니지만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잠이 든 시각에 관계없이 일정하게 떠진다. 본능을 이기는 마음의 부담은 내가 선택한 길에 따르는 책임이다.
불안의 요소를 두 가지로 나눠보자면
물질적 불안 - 고정적 수입 부재
심적 불안 - 소속감의 부재
로 볼 수 있다.
물질적 불안은 내부적인 조건뿐 아니라 코로나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외부적인 상황에서도 악화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사업자는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다. ‘오늘은 이 정도 벌었으니까 내일도 이 정도 벌 꺼야.’라는 개념은 영세 자영업자에게 있을 수 없는 논리다.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책에 따르면 인간은 소속감을 얻기 위해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기도 한다.
“내 자유를 포기할 테니 대신 나의 불안을 가져가시오.”
회사, 학교, 특정 집단 등에 소속된 감정은 인간의 타고난 불안감을 낮춘다.
나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1인 기업이다. 하지만 나는 타고난 불안의 정도가 높은 편이다. 그래서 일과 삶의 경계가 더 무너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최선의 방법은 그저 하루를 사는 것이다. 열심히 살되, 힘들면 쉬고, 좀 쉬었다 싶으면 다시 살살 걷고, 뛰고, 다시 쉬고.
컨디션을 확인해가며 나만의 페이스를 대로 나와 함께 손을 마주 잡고 달리는 것.
하루 동안 있었던 뿌듯하고 즐거운 일들을 찾아내 나에게 칭찬을 많이 해주는 것.
그 누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나 스스로가 한심해 보여도 내가 나를 인정해주고 내 편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그동안 내가 찾아낸 가장 좋은 불안을 줄이는 방법이었다.
얼마 전 앞통수에 혼자 발랄하게 하늘하늘 춤을 추는 흰머리를 발견했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가끔 새치가 보인 적은 있지만 이렇게 앞머리에 정통으로 생긴 적은 처음이라 충격을 받았다. 뽑지 말고 자르라길래 자르는 동안 생각했다.
그동안 완벽하게 일하려고 최선을 다했구나.
고생했다.
앞으로 좀 더 고생하자!
ㅠㅠㅋㅋ
취업을 했다면, 알바를 구했다면, 지금 있는 이 모든 일들은 내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거나 더 늦어졌을지도 모른다. 하나만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대로 풀리지 않아 속상했는데, 뒤돌아보면 뜻대로 풀리지 않은 것도 내 길이었다.
머리가 희끗희끗 해졌을 때 나에게 잘했다고 후회 없다고 칭찬해줄 수 있도록, 나에게 당당하고 나에게 인정받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