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뉴욕꼬질이들 Sep 26. 2021

나이가 들수록 가까이할 사람을 만나기 어려워지는 이유

내가 가진 슈퍼파워 때문에

나는 타고난 예민한 기질로 인해 평균보다 조금 더 발달한 듯한 초능력(?)이 몇 가지 있다.


대체 왜 그럴까 궁금하던 찰나 MBTI 검사 결과를 보고 심하게 공감하며 ‘내가 이래서 그렇구나’ 한 적이 있다. ‘평화로운 중재자 유형’인 INFJ가 나왔는데 단순히 MBTI라는 검사를 떠나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오늘은 그 슈퍼파워에 대해 자세히 말해보려 한다.


첫 번째, 나는 곁에 있는 사람의 에너지를 흡수한다.

언뜻 에너지 뱀파이어 같지만 사실 정반대다. 나는 상대방의 에너지에 굉장히 빨리 전염이 된다.


곁에 있는 누군가의 고통, 우울, 행복, 기쁨 등의 감정을 어쩌면 당사자보다 더 잘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깊은 공감과 지나친 감정 이입은 내 주특기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이 과정은 굉장한 감정 소모가 일어나기 때문에 평소에나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무심하게 지내려 노력한다. 하지만 나와 가깝거나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자제하기가 어렵다.


그 사람들이 나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의 마음을 열어 이야기를 털어놓는 동시에 내 머릿속은 무척이나 바빠진다.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의
기분을 나아지게 해 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사람에게 도움이 될까?
여기서 이 말을 하면 상처를 받을까?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은 무엇일까?’


일명 무한 공감 팩토리가 미친 듯이 돌아가는 순간이다.

사실 상대는 그저 내가 잘 들어주기만을 바랄 텐데, 쓸데없이 오지랖을 부릴 때도 있다. 특히 가족에게는 더욱 그렇다. 나와 가까운 사람일수록 상대의 이야기를 자주 듣고 공감해야 하는 것이 스스로 너무 고통스러워서 상대의 고통을 빨리 끝내버리고 싶은 마음 때문인 것 같다. 공감 능력에 비해 부족한 인내심이 드러난다.


어렸을 때부터 눈치를 하도 많이 봐서 얻은 능력이라 생각해 울적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 능력은 지금의 나처럼 서비스 직에서 일할 때 큰 도움이 된다. 상대가 감정적으로 어떤 상태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비교적 빨리 알아차리면 원하는 것들을 알아서 준비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감 에너지는 한정적이라, 일정 기간 이상 너무 많이 사용해서 완전히 방전이 되었을 때는 엄청나게 신경질이 난다. 그래서 좋지 않은 에너지를 주는 사람과 오랫동안 함께 있으면 나는 그 사람의 어두운 기운과 나의 우울함을 합쳐 깊고 깊은 땅굴 속에 떨어져 버리고 만다. 내 앞길도 못 챙기면서 구원자를 자청할 때는 쉽게 데이트 폭력의 타겟이 되기도 한다.

너의 고통을 해결해줄 수 없다면 나도 함께 우울할게.


둘째, 타인에 대해 (비교적) 금방 파악한다.

이 부분은 자칫하면 사람을 함부로 판단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아주 조심스럽게 사용하는 슈퍼파워다.

어릴 적부터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이사를 많이 다녔다. 길어도 2년에  번씩 거처가 달라지면서  새로운 사람을 사귀고 적응을 해야 했다. 역마살에도 적응을 해서 같은 천장을 2 이상 바라보고 있으면 몸이 근질근질하다. 해외 여러 나라들까지 다니면서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쌓은 데이터들이 슈퍼 파워를 사용할 때  역할을 한다.


비단 외모만으로 누군가를 유추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대화를 일정 이상의 시간 동안 하다 보면 그 사람의 말투, 행동, 표정, 몸짓 등이 아주 미세한 변화까지 저절로 내 머릿속에 하나하나 새겨지면서 데이터가 구축되고, 어떤 경향성이 있는 사람인 것 같다는 정보가 자동으로 도출된다. 머릿속이 파이썬으로 코딩하는 컴퓨터가 된 기분이다. 있지도 않은 일들로 넘겨짚지는 않으려고 주의하기 때문에 파악한 정보들은 대체적으로 잘 들어맞는다.

그렇군요. (내 머릿속)

이 능력 또한 내가 가진 직업에서는 아주 큰 도움이 되고, 일상에는 종종 걸림돌이 된다. 상대가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아도 그의 장단점을 비교적 빠르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 연애를 할 때는 내 기준에 잘생긴 사람이나(ㅋㅋ) 호감을 가진 사람에게 종종 알면서도 눈을 감아버리기는 기만을 한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세상 사람들은 모두 완벽하지 않다. 너무 심한 단점은 애초에 차단해서 시간을 아낄 수 있지만, 그 기준이 애매할 정도의 단점들은 내 곁에 두어도 되는 사람인가에 대해 큰 혼란을 주며 인연을 이어나갈 용기를 빼앗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이 정말 어렵다. 상대뿐 아니라 나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능력도 발달해서, 내가 부족한 부분과 잘하는 부분도 금방 눈에 들어온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을 찾으면 끝도 없이 찾아낼 수 있고, 좋은 점도 마찬가지다.


내 마음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갈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이지만, 너무 피곤해서 차라리 무심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때에 따라 센스가 될 수도, 지나친 예민함이나 히스테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곁에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평화를 느끼고 마음이 안정된다.


믿음을 주는 한결같은 사람, 정서가 안정된 사람, 물처럼 흘러가는 대로 두는 편안한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두 세 배로 평화롭고 행복하지만 말이다.


나의 슈퍼파워를 당연하게 여기기보다 고마워해 주는 사람에게 골든 리트리버처럼 충성하는 의외로 단순한 나는 복잡한 인간인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삶에 가이드북이 있었으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