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미래의 딸에게 유학을 권하는 네 가지 이유
나는 이제 2019년에 삼십대 중반에 들어선다.
결혼을 약속했던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는 미국에 온 지 두 달만에 그냥 여기와서 같이 살면 안될까 한 마디 했다가 부질없이 헤어졌고, 지금은 나와 취향이 잘 맞는 친구와, 먼 미래를 생각하기 보다는 서로를 만나고 있는 지금. 보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함께 노력하며 일 년 넘게 잘 만나고 있다.
하지만 종종 내 나이가 정수리를 짓누르는 뭉근한 느낌이 드는 순간에는 과연 이런 관계가 내게 좋은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커리어를 완전히 바꿔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지 일 년도 채 안 된, 그리고 워크 비자를 신청한 후 마냥 결과를 기다리며 아직 가까운 미래에 조차 내가 있을 곳을 알 수 없는 이 시점에 좋은 사람을 만나 복잡한 생각하지 않고 현재 속에서 서로 발전하는 이 관계 속의 내가 나는 보기 좋다.
상대적으로 늦은 나이에 유학을 와서 내가 잃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5년 간 일했던 안정적인 직장, 숨소리만 들어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가족과도 같았던 다정한 애인, 언제만나도 어제 만난듯한 10년 지기 동네친구들부터 고등학교 친구들, 마지막으로 현재의 나를 있게 해 준 무엇보다 소중한 우리 가족들까지.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데, 소중한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없는 사실이 가장 슬픈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물론 한국에 있었다해도 각자의 삶이 바빠 자주 보기는 어려울 테지만.
오늘은 이렇게 소중한 것들을 잃거나 혹은 물리적으로 멀어지면서까지, 늦깍이 유학을 통해 배운 점들, 그리고 내가 딸이 있다면(아들에게도 마찬가지 이지만 왠지 딸에게는 더욱 권장할 것 같으니까) 그 친구에게 유학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들을 조곤조곤 털어놓으려 한다.
특히 나처럼 하고 싶은 것이 있어 유학을 온 케이스는 더욱 그렇다. 나는 대학교 때까지 꿈이 없었다. 그냥 어려서부터 공부를 열심히 해야 착한 사람 훌륭한 사람이 된다길래 열심히 했고, 잘 살려면 직업이 있어야한다길래 직업을 가졌는데, 내가 좋아서라기보다는 남들이 볼 때 좋아보이는 걸로 골랐다. 있어보이고 싶어서. 남들이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혹은 부모님이 나에 대한 이야기를 남들에게 할 때 멋진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래서인지 내 마음은 항상 공허했고 점점 나를 잃어가는 것 같았다.
물론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긴 하겠지만, 잠시나마 교육계에 몸을 담았던 사람으로서 내가 보는 한국의 교육은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학생들에게 꿈을 갖도록 해주는 데는 한계점이 많다.
다들 남들 하는 공부를 하고, 남들 갖는 꿈을 갖고, 많은 사람과 다르면 별종 취급을 받으며, 수업시간에 질문을 하는 것은 왠만하면 나 왕따시켜주오 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경우가 많다. 자유로운 질문과 다양한 사고방식이 통용되기보다는 바르다고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한 방향으로 억제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한꺼번에 많은 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한 옛 교육의 폐해가 아닐까.
내가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것은 대학교 공부밖에 없긴 하지만, 나는 오자마자 미국 학생들은 다르다고 느꼈다. 개인주의와 묘하게 어우러지는 남의 선택을 존중하는, 혹은 신경쓰지 않는 마음, 다양함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모습은 내가 뉴욕에 있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을 것 같기도 하다. 다만 한국보다는 확실히 자신감, 당당함, 내가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방식들을 높이 사는 사회적 분위기가 명확히 있다. 그렇기에 내가 좋아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는 기회들이 교육 뿐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 많이 존재한다.
독립해 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알바와 학업을 당연히 병행하는 미국 대학생들의 모습, 그리고 그걸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예를 들자면 학자금대출같은) 또한 우리나라가 꼭 배워야 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다시 말해 진정한 친구를 보는 눈을 기를 수 있다. 한국에서는 내 마음에만 맞는, 오래도록 알고지내 스스럼없고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것 같은 친구들과만 함께 지냈다. 그리고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그 현상은 더욱 심해지는 것 같았다. 다만 그의 부작용은 마음에 맞는 사람과만 만나면 편하기는 하지만 나와 다른 느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애초부터 마음이 닫혀버리는 경우들이 생긴다. 그런데 여기와서 나이대부터 시작해 오게 된 사연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해 본 다이나믹한 인간관계의 드라마들 속에 휩쓸리면서 뒤늦게 정신적인 혼란도 많이 겪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여러 인간관계 속에서 온전히 중심을 잡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지 많이 고민하고 노력했다. (예를 들면 하트시그널의 평범한 인간관계 버전이 끊임없이 지속되는 상황이랄까)
책도 많이 읽고, 다양하게 만나는 다른 사람들에 내 모습을 비춰보기도 하고, 그 모습 속의 못난 나 또한 잘난 나처럼 사랑해주기 위해 인간은 원래 완벽하지 않다고 스스로를 다독여 주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나는 한국에 있을 때보다 조금 더 단단해졌다. 외부의 요인으로 인해 상처를 받기 보다는 오히려 나를 알아가려 노력하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좀 더 넓은 시야로 이해하기 위해 애쓰며, 내가 원하는 바를 당당하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나의 멘탈붕괴현상은 한국에 있을 때보다 줄었다.
가족과 떨어져 먼 타국에서 살다보면 스스로 해결해야 할 일들이 정말 많이 생긴다. 집 구하기, 밥 해먹기 등 생존에 필요한 일부터 학교 등록금 내기, 처음 접하는 영어로 된 수강신청, 그리고 취업과 같은 학업 및 경력에 관련된 일까지.
어짜피 큰 세상에 나가서 결국 스스로 해결해야 할 일들이라면 부모님의 정신적인 울타리 안에서 다수의 일들을 좀 더 어린 나이에 스스로 해 나간다면 훗날 독립하는 과정이 더 수월해 질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너무 어린 나이, 예를 들면 중고등학생때부터 외국생활을 한 친구들에게 종종 여러 부작용이 보이기도 했는데 이 부분은 추후에 더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게이나 나와는 조금 다른 사람들에 대해 관대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뉴욕은 그런 다양성의 한계를 뛰어넘는 듯한 사람들을 생활 속에서 접할 기회가 많다. 그들을 실제로 많이 접하게 되면서 내가 진정으로 관대해지려면 아직 멀었구나를 느꼈다. 생각으로 관대한 것과는 달리 실제로 그런 사람들을 곁에두고 접했을 때 거부감이나 편견없이 바라보는 일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개인적으로 노력중이긴 하지만, 미국사회 자체도 다양성을 수용하면서도 거부하는 관성이 적지 않음을 종종 뉴스를 통해 느낀다. 하지만 보다 넓은 세상에서 많은 것을 접하고 이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할 수 있다는 점은 외국 유학의 큰 이점이 아닐까 싶다.
앞서 말한 너무 이른 나이에 온 친구들을 보고 느낀 부작용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을 말해볼까 한다. 사람마다 다르기에 참고용으로만 생각해주시면 좋겠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의 울타리에서 멀리 벗어나 나와 다르게 생긴 그룹의 친구들 사이에서 스스로를 챙기다보면 안정적인 애정관을 가지기가 어려운 것 같다. 심지어 서른 넘어 유학 온 나만해도 처음엔 정신적으로 의지할 데가 없이 불안해서 계속적으로 연애를 하는 삶(?)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하물며 성인들도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결심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너무 어린 나이에 유학을 가려한다면 아예 부모님과 같이 오거나, 조금 나이가 들어서 대학생 혹은 그 이후에 오는 것이 정서적으로 더 좋을 것 같다.
물론 유학생들 중에는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살아온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펑펑 쓰고싶은 대로 쓰는 학생들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나와 비슷한 경우의 학생들, 그러니까 집이 경제적으로 부족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무척이나 여유롭지도 않은 정도의 기준을 두고 이야기해보겠다.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지 않고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돈을 쓴다 하더라도 결국은 내가 사용하고 잔고가 줄어드는 것을 직접 봐야하기 때문에 마음적으로 여유가 없어질 수밖에 없다. 좋게 보면 경제관념이 생기는 것이지만, 안좋게 보면 돈에 너무 연연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실제로 주변에서 비싼 곳에서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남자를 만난다던지, 돈을 보고 친구를 사귄다던지 하는 약간은 일그러진 경제관념을 가진 친구들이 종종 있었다.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외국생활을 하면 결국은 내가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경향이 본인도 모르게 생기는 것 같다.
외국에는 생전 접해보지 못한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슬프고도 재밌는 사실은 한국사람을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 같은데, 앞서 말한 부작용을 가진 친구들이 적지않을 뿐 아니라, 한국사람끼리 어울리려 하다보면 친구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좁아져서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확률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멋모르고 한국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순수한 마음을 갖고 친절하게 다가오는 것이라고 성급한 판단은 금물이다. 그 순수한 마음을 이용하려는 안타까운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사람도 많다. 그런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것은 정작 외국 뿐만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나와 잘 맞는 친구 혹은 연인을 만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앞서말했듯 선택의 폭이 좁아지기 때문에 몇 배로 어려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 모든 내용을 뒤로하고 내가 현재 내린 결론은 어디서 살든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외국에 살든, 한국에 살든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다. 다만 넓은 세상에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고 나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아주 비싼 돈을 내고 아까울 수도 아깝지 않을 수도 있는 투자를, 나는 감히 기꺼이 내 딸에게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내 무쇠와 같은 황소고집에 결국은 하고싶은 대로 하라고 널 믿는다고 아낌없이 지원해주신 부모님에게 감사하고 열심히해서 이 은혜를 꼭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효녀가 된다는 장점이 또 하나 있는가보네요.)
유학을 권장하는 사회 속에서 이력서 한 줄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다름 속에서 진짜 나를, 그리고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 젊은 피가 펄펄 끓는 영혼들에게 나는 조심스레 유학을 추천하는 바이다.
젠(Jenn)
옷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는 거창한 꿈을 안고 뒤늦게 유학을 떠난 겁없고 꿈많은 영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