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가려니 걱정이다
직장 동료라고 하기도 무색할 만큼 말도 한 번 섞어본 적 없는 젊은 여자분이 여교사 화장실에서 마주쳤을 때 물었다.
제가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분께 왜 국수를 끓여드려야 하죠? 그나저나 누구신지...
되물어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딱 스물아홉 되던 해에 그런 질문들을 가장 많이 들었다. 매일 보는 가족부터 먼 친척 그리고 생판 처음 보는 택시기사 아저씨까지 나의 결혼과 육아 계획에 대해 물었다. 미국에 오기 직전까지 명절마다 작은 엄마는 “결혼해야지” 하고 집요하게 물었다. “하하.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하고 자연스레 넘어가려 했는데 끝까지 “그래서 결혼을 언제 할 건데?” “결혼해야지.”라고 뻐꾸기시계처럼 반복하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는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모른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어색한 웃음만 짓다 집에 가는 길에 엄한 가족들만 성난 내게 봉변을 당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딱히 할 말이 없어서, 혹은 관심의 표현, 극소수이겠지만 의도적으로 괴롭히려고, 아니면 내가 나서서 집안에 시집 안 가는 골치 아픈 처녀를 해결하겠다는 정의감(작은 엄마의 경우는 괴롭히려는 의도와 이것이 섞여있었던 것 같다.)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같은 얘기를 너무 여러 번 반복해 들으면 짜증이 나는데, 나를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비슷한 주제의 말들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듣는다는 건 고문이 따로 없었다.
태어난 성질대로 하면 “제가 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시죠? 남자나 소개해주시던가 돈을 좀 보태주시던가 아님 너 자식이나 먼저 보내시던가요~” 하고 밥상을 뒤집어엎을 텐데, 사회성이라는 명분으로 눈은 파르르 떨리고 입만 웃고 있는 내가 그렇게 비꼬아 말하기란 하늘이 두쪽이 나서 루돌프가 산타 분장을 하고 내려와도 못 할 일이었다.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아 예.. 하하 그러게요.” 하고 어색한 쓴웃음을 삼키며 묵묵히 참고 가만히 있는 것밖엔.
주변 사람들에게 내 고민을 말하니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대답하라는 사람도 있었고, 그냥 신경 쓰지 말라는 사람도 있었고, 자기는 그런 말 들으면 웃지 않고 그냥 가만히 째려본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다 괜찮은 방법인데 나는 물어본 사람이 상처를 받지 않을까, 내가 예의 없는 사람으로 비치지 않을까, 너무 말이 공격적으로 들리지 않을까, 우리 부모님이 자식 교육 잘못 시켰다고 욕먹지는 않을까 되려 남들을 걱정하고, 그저 한 마디 한 마디에 내가 상처를 받고 담아두고 속으로 분해하는 것을 택했다.
미국은 정말 나이를 안 물어본다. 가끔 학교 친구들이나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친구들이 물어보는 경우는 있지만 초면에 나이, 결혼, 임신 등의 이야기는 개인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해 묻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대체로 내 나이를 잊고 살았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며 정말 마음이 편했다. 남들과 나이를 기준으로 내 삶을 비교하는 습관도 고칠 수 있었고, 이 나이쯤에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없어졌다.
한국에서 하듯 만나자마자 통성명 후 나이를 물은 뒤(존댓말이 필요한 문화이기 때문일지도) 좀 편해졌다 싶으면 남자 친구에 대해 물어보고 어떻게 만났나 결혼은 안 하나 등을 물어본다면 겉으로는 상냥히 대답해 줄 수도 있지만 예의 없는 사람이라고 낙인찍힐 수도 있고, 뉴욕에서는 대놓고 기분 나쁜 티를 내며 왜 그런 걸 묻냐고 할 수도 있다.
내 경험의 한 예로 보스턴에서 눈이 파란 미국인 고모 할아버지와 한국인 고모할머니 사이에 태어난 삼촌들을 만났다. 삼촌의 친구들과 맥주 한 잔 하러 펍(pub, 호프집)에 갔는데 거기에는 고모할머니가 이전부터 말씀해주신 돈도 잘 벌고 어렸을 때부터 지켜봤는데 아주 괜찮은 남자라고 했던 사람도 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미국인에게 시집보내려고 고모할머니가 꾸며주신 자리일지도 모르겠다. ㅎㅎ 어쨌든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미국에 오자마자 처음 미국인들과 대화하는 자리에서 내게는 다소 충격적이었던 몇 가지 장면을 기억한다.
Scene1 삼촌이나 삼촌 친구들이 다 배부르다고 안주는 안 시키고 맥주만 시켰다. 그런데 누군가 수제버거 세트를 시켜서 그 많은 것을 혼자서 꾸역꾸역 다 먹는다. 우리나라의 술집에서 친구들에 둘러싸여 혼자서 저렇게 한 끼 식사를 제대로 하는 게 가능할까? 나는 혼자 먹기가 눈치 보여 같이 쉐어를 하던지, 작은 것을 시켜서 야금야금 먹을 것 같은데. 더 신기한 건 그 친구가 뷔페를 먹든 햄버거를 먹든 랍스터를 망치로 두들겨 먹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Scene2 우리 삼촌 친구들은 서른 후반이다. 고모할머니가 맘에 들어하셨던 친구는 여자 친구와 10년 넘게 같이 살고 아이도 둘이나 있는데 아직 결혼을 안 했다. 이것저것 물어보고(지금 생각하면 이불 킥이다.) 이야기를 듣다 나도 모르게 “What are you waiting for?”(뭘 기다리는 거야?)라고 무심결에 이야기해 버렸다. 내 딴에는 악의 없이 호기심에 던진 말이었지만 상대방 입장에서는 난생처음 본 동양 여자가 자기가 10년 동안 유지했던 연애사에 대놓고 끼어들어 부모님 같은 질문을 한 것이다. 그 친구는 은근히 기분이 나쁜 티를 내며 나에게 “What are YOU waiting for?”이라고 말했다. 주변 친구들은 “Whoa~~” 하며 그 친구의 passive aggressive(소극적으로 공격적인)한 공격을 자제시켜 주었다.
한 육 개월쯤 지난 후 다시 그 친구분을 만났을 때 지난번에는 내가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돼 여기 문화를 잘 몰라서 그랬다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더니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삼촌들의 친구에게 미리 배웠으니 망정이지, 혹시라도 직장에서나 다른 인간관계에서 그런 실수를 했다면 여전히 배우지 못했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어떤 유튜브 동영상에서 누군가가 그랬다. 작은 마을을 이뤄 같이 모여 살고 농사를 짓는 부족사회에서는 서로 모든 것을 공유하고 각자의 일상을 꿰고 있는 것이 소위 말하는 정이고, 사랑이고, 단합하는 일련의 방법이었다고. 그런 부족사회를 이루던 한국이 너무나 급속도로 발전하는 바람에 기성세대는 기존의 문화를 버리지 못하고, 새로운 세대들은 개인주의를 받아들이고 기존 세대의 방식에 거부감을 느끼며 세대 간의 갈등이 생기고 있다고.
얘기를 들어보니 맞는 말 같았다. 한국에서 지나가는 말에 상처를 받곤 했던 예전에 비해 나는 강해졌고, ‘상처를 받는다’는 개념 자체를 버리기 위해 상당히 노력했다. 그래도 한국에 가면 사랑하는 사람들 혹은 가까이서 자주 보는 사람들에게 쏟아질 질문 세례가 두렵다. 가끔 그런 장면에서 다르게 대처할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별로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면 그 사람의 나이를 떠나서 ‘아, 사고방식이 옛날 사람이구나.’ 하고 잊어버리거나, 혹시 나에게 상처를 주려고 끊임없이 의도적으로 반복하는 작은 엄마 같은 사람에게는 정중하게 ‘죄송하지만 계속해서 듣기에 제 기분이 안 좋으니 그만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해야지. 누군가가 나를 위해 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말을 이제는 직접 해줘야겠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사적인 질문은 던지지 않으려 무던히 노력할 것이다. 나는 다양한 문화를 접했고, 상대방의 감정 못지않게 내 감정을 중요하게 여기고, 개인주의를 선택한 미국물 먹은 여자니까 말이다.
젠(Jenn)
경험하고 창조하고 소통하고 사랑하는 것을 좋아하는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