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비교하지 않으면 행복해지는 미학
뚱뚱해.
살을 빼야겠어.
날씬해지고 싶어.
초등학교에서 단체로 신체검사를 할 때 문득 든 생각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이후로 나는 제대로 먹지 않고 살을 빼기 위해 다이어트에 집중했다.
중고등학생이 되자 이성에 호기심이 생겼고 외모에 대한 집착은 더 심해졌다.
턱을 깎아야겠어.
광대뼈도 마음에 안 들어.
이 망할 놈의 두 조합 때문에 인상이 사나워 보여.
나랑 친한 저 친구는 얼굴이 조막만 하고 눈코입도 오목조목 예쁜데 난 왜 이렇게 생겼지?
아빠를 닮은 것 같아.
아빠는 남자니까 남자답게 생긴 건데,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난 거야?
너무 싫다.
쟤는 예쁘면서 키도 큰데,
난 키도 작아.
키는 작으면서 앉은키는 왜 크고 얼굴은 또 왜 이렇게 큰 거야?
난 큰 키로 자라야 했는데 아마 다이어트 때문에 덜 자란 거 같아.
눈은 작고 짝짝이야.
눈이 더 컸으면 좋겠어.
쌍커풀 수술을 해야겠다.
요즘 쌍꺼풀 없는 사람이 없는데 그 정도는 필수래.
콧망울은 예쁜데 좀 퍼져있는 거 같아.
안면윤곽 하고 나면 코도 좀 좁혀야 할 것 같아.
입이 너무 튀어나왔어.
경망스러워 보여.
안면윤곽 하면 입도 같이 들어가겠지?
여전히 뚱뚱해.
살을 빼야겠어.
5키로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5키로만.
가슴이 작아.
가슴이 컸으면 좋겠어.
가슴수술도 해볼까?
요즘은 자연스럽게 내 가슴처럼 잘해준다던데.
엉덩이도 좀 더 빵빵했으면 좋겠다.
허리는 또 왜 이렇게 일자야?
통나무가 형님하고 따라오겠네.
몸매가 예뻤으면 좋겠어.
열한 살이 되던 해부터 최근까지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해 온 말들이다.
이 모진 말들을 모두 한꺼번에 던진 건 아니다.
내가 나에게 비난의 말을 걸어오는 순간은 시시때때로 다양하게 찾아왔다.
주변의 친구들과 만나거나 어울릴 때,
대중매체나 SNS의 유명인사들을 볼 때,
지나가는 행인을 바라볼 때,
우연히 알게 된 사람들 무리 중에 뛰어난 사람이 보일 때,
전 남자 친구의 여사친을 알게 되었을 때,
남자 친구의 형제들의 여자 친구들을 보았을 때,
혹은
혼자 집에서 거울을 볼 때나 옷을 사러 갔다가 탈의실에서 내 벗은 모습을 보았을 때.
가끔은 외면해보려고도 하고,
가끔은 돌연 다이어트에 돌입하기도 하고.
수술을 결심하고 부모님을 졸라 보기도 하고.
자아 비판의 긍정적인 면은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를 한다는 점이라고 했다.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서
열심히 운동을 했다.
3시간 동안 무리하게 러닝머신 위를 걷고 뛰고 또 걸었다.
고구마와 사과만 먹거나 아침을 왕창 먹고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과외를 해서 번 돈으로 끊임없이 예쁜 옷과 액세서리를 사들였다.
영어학원을 다녔다. 내 몸을 쉬지 않고 움직였다.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불안해서 다리를 떨었다.
자기 계발서를 닥치는 대로 열심히 읽었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겉도 예쁘고 속도 예쁜 사람.
살을 빼고 공들여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입었다.
다음날 할 화장과 입을 옷들을 전날 밤에 미리 구상해두었다.
대학교에서 인기가 꽤 생겼다.
예쁘다고 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고백해오는 선후배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셀프디스는 끝나지 않았다.
인기에 집착하는 건 피곤한 일이었다.
겉이 예뻐졌는지는 몰라도 속까지 예뻐지진 않았다.
마음이 허했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먹고 싶은 것을 마냥 참다 보니 지나가면 맛있어 보이는 것들 천지였다.
하루는 그것들을 왕창 사다가 다 먹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거식증에 걸렸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집에 놀러갔다. 친구가 해 준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고 그날 밤도 친구 몰래 먹은 것을 게워냈다.
내가 그런 증상을 보이기 전에, 나와 함께 살았던 룸메이트와 내 친했던 친구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1.
대학교 때 잠시 한 방을 같이 썼던 내 룸메이트는 통통했고 동그란 얼굴이 귀여웠다. 옷을 개성 있게 잘 입었고, 눈이 조금은 슬퍼 보였지만 웃는 얼굴이 예뻤다. 그녀의 친동생이 기숙사에 들어오기로 해서 방을 함께 쓰기로 했다며 우리는 더 이상 같은 방을 쓰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 점점 말라가더니 그녀가 화장실에서 토하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들이 생겼다.
결국 뼈만 앙상하게 남은 그녀를 마지막으로 보았고, 자살을 시도해서 한밤중에 경찰이 출동했다는 말이 그녀에 대한 마지막 소식이었다.
#2
통통한 몸에 나름 귀여운 생김새를 가졌던 내 친구는 정말 착했다. 빼어난 외모는 아니었지만 친절했고, 사람을 대할 때 허물이 없었다.
대학에 가자마자 그녀는 살을 빼고 성형을 했다. 누가 봐도 예전보다 예뻐졌다. 인기가 많아졌고, 남자들이 번호를 물어보는 일도 종종 생겼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과 연애를 했다. 그 남자에게는 폭력성이 있었다. 그녀에게 폭언과 구타를 일삼았고, 헤어지자는 친구의 집 앞을 몇 시간이고 지켰다.
친구는 너무 무섭다며 내 방에 찾아와 나와 함께 있었고 많이 울었다. 결국 그 남자는 함께 찍은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며 친구를 협박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내 친구는 성격이 변했다. 착하기만 했던 그녀가 남을 묘하게 험담하고, 남자들이 모두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도끼병 같은 것에 걸렸다. 친구가 예전 같지 않다고 느낀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와 멀어졌다.
함께 친했던 친구에게 그녀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그녀가 모진 연애를 끝으로 몸을 함부로 굴린다는 이야기, 룸쌀롱에 나간다는 이야기, 유부남과 마약을 하며 바람을 피운다는 이야기, 부자 할아버지를 만나면서 그에게 시집을 가려고 노력을 한다는 이야기, 미팅했던 남자들과 모두 잠자리를 갖고 그 남자들이 그녀와 함께 했던 밤을 공유한다는 이야기. 마지막으로 들은 건 그녀가 어머니의 보호 아래 함께 산다는 이야기였다.
친구는 예전부터 모든 면에서 자기보다 뛰어난 언니와 자신을 비교했다고 한다. 언니는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쁜데 자기는 얼굴도 예쁘지 않고 언니에 비하면 공부도 못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어느 날 친구의 언니가 내 친구에게 보낸 문자를 봤다. ‘그렇게 살 거면 뭐하러 사냐?’ ‘너처럼 살면 인생 쓰레기밖에 못 돼, 이 X아.’ 등의 폭언을 친동생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아직 그녀와 친하게 지내는 내 친구는 그녀에게서 자신의 언니가 얼마나 최고급 결혼식장에서 결혼을 했는지, 형부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언니네 집이 얼마나 좋은 아파트인지 등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다고 한다. 아직도 그 언니는 친구의 그림자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나 보다.
그들처럼 나 또한 채울 수 없는 구멍이 가슴 깊은 곳에 있었다.
아무리 주변에서 예쁘다예쁘다해줘도 믿지 않았다. 내 성에 차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나는 항상 더 노력해야 하는 존재였다.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로 결심한 시점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미국에 온 것이었다.
내가 되고 싶었지만 절대 될 수 없었던 순백색의 피부에 바람이 불면 날아갈 듯한 여리여리하고 참한 이미지의 동양 여자를 이곳에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열망했던 너무나 마른 여성도 보기 드물거나, 혹은 서양인이다 보니 비교 대상에서 일찌감치 제외되었다.
또한 미국에서의 여성에 대한 미의 기준은 확연히 달랐다.
서양인 여성들은 턱을 각지게 하려고 수술을 받고 광대가 도드라져 보이게 화장을 한다. 마마무의 화사 같은 섹시한 스타일이 여기서는 훨씬 각광받는다.
이들은 몸매도 제각각이다. 뚱뚱해도 원하는 옷을 입고, 오히려 너무 마른 몸보다 육감적인 몸을 선호한다.
나름 탄력 있는 내 몸을 꽤 괜찮게 여겨보기로 했다.
햇볕에 잘 타는 자연스러운 구릿빛의 내 피부색을 좋아해보기로 했다.
포토샵을 하지 않기로 했다.
사진 속 나의 턱을 깎고, 눈을 키우고, 콧볼을 줄이고, 팔뚝살을 없애고, 스티커를 붙이고, 다리 길이를 늘리는 등의 모든 기술적인 활동들을 중단했다. 스스로를 비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나만의 깐깐한 기준에 맞게 탄생한 ‘내가 아닌 나’를 보여주는 행동을 멈추기로 했다.
가감 없이 막 찍은 내 모습이니 물러설 곳이 없다. 역시나 마음 깊은 곳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들린다.
왜 이렇게 못생겼지?
얼굴 너무 크다.
살쪘네. 살빼야겠다.
다리가 짧군.
그러다 마침내 이 모든 것 또한 나라는 생각이 들며 그냥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기로 마음먹었다.
나름 조화롭게 생겼다.
얼굴이 작지 않아도 눈코입이 서로 잘 어울린다.
이 말은 중학교 때도 들었었는데 무시했다.
통통하지만 보기 안 좋을 정도는 아니다.
건강해 보인다.
다만 예전에 무리한 다이어트를 하며 러닝머신 위에서 장시간 혹사시킨 무릎은 조금만 살이 쪄도 아프다. 무릎을 위해 식단 조절과 근력 운동을 ‘건강한 방법으로’ 조금씩 병행해야겠다.
허벅지와 엉덩이 라인이 꽤 괜찮다.
집중적으로 더 키워봐야겠다.
자연스럽고 강한 여성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포토그래퍼 Kate T. Parker의 책 ‘Strong is the New Pretty’가 화제다.
그녀는 딸아이들의 사진을 찍어주다 자신의 딸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행동을 할 때 진정으로 행복해 보이는지 깨달았다고 한다.
그녀의 딸들은 거칠고, 지저분하고, 역동적인 상황 속에서 더 환하게 웃었고, 그 모습들은 그녀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 후 그녀는 많은 여성들의 ‘완벽하지 않은 아름다움’, 그리고 강한 이미지를 풍기는 여성들의 사진을 찍었고, 책으로 엮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마음의 소리를 완벽하게 차단한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모든 이의 눈에 예쁘게 보이려 노력할 필요는 없다는 점과,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줄 사람을 찾는 게 어려웠던 이유는 정작 나조차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는 점을 알았다.
여태 나를 가장 삐딱하게 바라보던 사람은 나 자신이었고,
나를 가장 작게 만드는 사람 또한 나 자신이었기 때문에.
완벽한 사람이 되려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완벽한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내 눈에 마침내 완전해져도 또 다른 기준을 들이대면 그 완전함은 다시 불완전해지고 만다.
불완전함도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모두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하나하나가 가치 있는 것이라고,
나부터 굳게 믿으며 흔들리지 않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젠(Jenn)
만들고 경험하고 사랑하고 소통하는 일에 재미를 느끼는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