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패션학교 유학으로 10년 연애의 종지부를 찍다.
'꼭 가야겠어?'
다섯 글자가 또다시 내 마음에 날카롭게 수 놓인다.
많이도 싸웠다.
아무리 싸워도 결론은 단 하나다.
나는 너와 함께 우리의 가족들이 있는 나라에서 작은 가정을 꾸리고 단란하게 사는데 꿈인데 너는 왜 나 하나로 만족할 수 없는 거니.
안타까운 탄식과 전할 수 없는 마음 둘이 만들어낸 어색한 정적이 우리 사이를 가로질러 흐른다.
십 년의 연애라고 하기에는 연인이 아닌 사이로 지낸 기간이 상당히 길지만, 그래도 햇수로 십 년이라 빡빡 우긴다면 내 유학 결정으로 우리는 십 년 중에 가장 많이 싸웠다.
나와 그의 푸른 이십 대가 서로를, 그리고 이성을 알아가는 아름다운 과정이었다면 나의 유학 결정은 그 소중한 과정들로 이룩한 우리만의 세계를 뒤집어버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유학을 떠나고 싶어 한다면 나는 과연 그를 따라갈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을 때 내가 정말 그 사람을 많이 사랑하고 그 사람의 (나에게,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대하는) 태도와 포부에 믿음이 간다면 나는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주변에 그렇게 남편을 따라 외국으로 간 사람들이 많기도 했다.
그러는 너는 왜 안돼? 남자가 여자를 따라가는 건 이상한 거야?
머릿속이 복잡했다. 사회의 성차별 문제까지 고민할 만큼 우리 관계의 실타래는 십 년 치만큼 엉켜버렸다.
이제와 깨달은 결론을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서로가 인생에서 추구하는 가치관이 달랐다.
그는 소중한 사람과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좋은 아버지, 좋은 남편이 되어 가정에 충실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여태 내가 만난 남자들 중에서, 그리고 오십 퍼센트 정도 확신하건대 앞으로 만날 남자들을 모두 통틀어도 누구보다 바르고 정직하고 똑똑하고 사랑과 자신감이 넘치는 그에게 참 어울리는 꿈이었다. 그리고 백 프로 확신하건대 그는 그 꿈을 어렵지 않게 이룰 것이다.
반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것, 꿈을 이루는 것,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만한 일을 벌이는 계획을 세우는 것 등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들과 동시에 해낼 자신이 없었다.
연애관계에 있어서 나는 자존감이 낮았다.
강한 불안형의 애착 유형과 히스테리성 성격장애가 만들어낸 산물이 사랑하는 상대를 향한 집착과 우상화, 비운의 여주인공 크리와 어그로라는 것들은 나를 찾아낸답시고 읽어댔던 수많은 얄팍한 심리학 서적들이 가르쳐 준 내 사랑방식이었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생각해보기도 전에 그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 그리고 그 사람의 세상에 내가 들어가 온전히 자리를 잡고 최대한의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잊어버리고 그래서 나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연애가 오래되면 그것이 힘들었다.
매일 밤 자기 전에 꼭 울리던 전화벨은 밤마다 집에 잘 붙어있는지 확인하는 구속처럼 느껴졌고, 혹여 전화로 다툼이 생겼을 때는 모든 것을 풀어야만 전화를 끊도록 해주지만 끝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문제 해결 방식은 내 죄를 억지로 인정하기 전까지 잠을 잘 수 없게하는 고문 같았다. 결국 코털이 삐죽 튀어나왔다던지 너무 게걸스럽게 먹는다던지 하는 사소한 점들마저 눈엣가시로 느껴져 틈만 나면 그에게 헤어지자고 했고, 우리는 지겹도록 헤어졌다 만났다를 번복했다.
내가 혼신을 다해 사랑에 쏟아부은 노력이 나를 짓누르고 그만한 가치가 있었을까 의문점을 던지게 되는 연애의 현자 타임이 오는 순간 나는 나에게 너무나 미안해진다.
미안해. 그동안 남자 하나 바라보느라 미처 너를 못 챙겼네.
누가 시키지도 않았기에 누굴 원망할 수도 그렇다고 나를 탓할 수도 없는 서글픔이란.
이 서글픔을 스스로 해결하지 않는 이상 나의 연애와 결혼은 끊임없이 나를 잃어버리고 되찾는 과정의 연속 이리라.
서로의 가치관이 크게 상충하지 않으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그 날까지
나는 오늘도 너보다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Jenn
; 옷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는 큰 꿈을 가지고 느지막이 패션에 뛰어든 겁 없고 명랑한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