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멘탈이 되는 연습 (ft.존경하는 이 세상 모든 수험생 분들께)
나는 재수를 했다.
그것도 두 번.
그러니까 삼수를 했다.
내가 원하는 대학교는 연세대학교였다. 전공과는 무관하게 그냥 그 대학교가 좋아 보였다. 가면 기쁘게 열심히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나름 내가 공부를 잘하는 줄 알았다.
흔히 말하는 ‘공부 하나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공부 잘하는 애’가 내 타이틀이라고 믿었다.
남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 몰라도 나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나름 자랑스럽게 여겼다.
내가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하는데 점수가 안 나와서 속상해하는 것보다는 열심히 하지도 않는데 그에 비해 점수가 잘 나오는 게 좋은 거라는 말도 안 되는 합리화를 했다.
그렇게 초중고 12년을 살았다.
난생처음 이 나라의 모든 수험생들이 절대적인 기준으로 “너는 몇 점짜리”로 나뉘는 시험을 접했다.
난 아직도 수능시험은 꽤 정직하다고 믿는다.
희한하게 공부를 열심히 한 과목은 점수가 잘 나오고, 방심하거나 소홀했던 과목은 안 나온다.
물론 당일에 너무 떨어서, 컨디션이 안 좋아서, 배가 아파서 등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컨디션 조절조차 내 능력의 일부로 치부되는 마치 국가대표 선수(?)급의 부담감을 가져야 하는 시험제도 앞에서 나는 처참히 무너졌다.
나의 이상 속에 존재하던 성적표와 현실 속의 성적표는 확연히 달랐다.
처음 봤던 수능은 그냥 재수를 하면 되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두 번째 봤던 수능은 달랐다. 수능을 보기 전날 고등학교 친구를 예비소집장에서 우연히 만났고 내 옆자리에 앉아 나름 친하게 지냈던 동창 하나가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너무 놀랐고 잠이 오지 않아 밤을 설쳤다. 함께 먹었던 중국 음식은 소화가 되지 않아 밤새 구토를 했다.
컨디션 조절도 능력이라면 할 말이 없다. 사실은 자신이 없었다. 그동안 내가 한 공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 년을 허투루 보낸 것이 들키게 될까 봐 조마조마했다.
역시나 예상대로 두 번째 시험도 망쳤다.
며칠 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고 울기만 하면서 밥을 굶었다.
점수 맞춰 들어갔던 대학을 관두고 수능을 또 보겠다고 선언했다.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그러고 보니 가만히 계시는 부모님께 폭탄선언을 하는 건 내 주특기다.
세 번째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내 인생에 그렇게 산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로 치열하게 살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학원에 가고 학원에서 점심시간과 화장실 가는 시간 말고는 집에 가기 전까지 앉아서 공부만 했다.
무슨 과목을 어디부터 어디까지 어떻게 공부할지 큰 계획을 세우고 세부 계획으로 월별 일별 계획을 세웠다.
아침에 학원에 도착하면 플래너에 할 일을 죽 적어두고 그것을 다 체크할 수 있도록 하루 종일 심혈을 기울였다. 혹시 다 체크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주말 일정을 하루 비워두고 그 사이에 다 했다.
친구들은 보통 점심을 싸와서 친구들과 함께 먹고 저녁은 나가서 먹었다. 처음에 함께 나가서 먹어보니 시간이 오래 걸리고 돌아오면 졸려서 한숨자는 일이 생겼다. 시간이 아까워서 참치김밥 두 줄 선식 두 포를 학원에 도시락처럼 싸갔다. 혼자 기숙사에 살고 있어 차려줄 사람이 없었다. 점심과 저녁으로 참치김밥 한 줄과 선식 한포씩을 먹었다. 이제는 선식은 형체만 봐도 지긋지긋하다. 하지만 아직도 참치김밥은 맛있다.
나는 친구와 지나치게 친해지거나 친구관계를 광범위하게 하면 쓸데없이 신경 쓸 일이 생기고 이리저리 휩 쓸려 다니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해 친구와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다. 사실 굳이 거리를 두지 않아도 어차피 점심 먹을 때 빼고는 혼자서 공부만 하니까 누구랑 깊게 친해질 기회도 없었다.
“나는 친구 사귀러 여기 온 게 아니다. 내 마지막 수능 시험을 준비하러 왔다.”
디스 이즈 컴피티션!
내가 친구들에게 거리를 둔 이유는 티비에 나온 유명 래퍼가 외친 것의 의도와는 조금 달랐다. 나는 학원에 있는 학생들을 경쟁자라고 느끼지 않았다. 그저 그들을 의식하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를 향해 도전했던 것 같다.
우유부단하기 짝이 없어서 할 일이 있는 데도 친구가 놀자는 말에 끝내 노라고 말하지 못한 나에게.
수능 전날 짜장면을 먹자는 친구에게 난 기름진 것이 먹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 못한 나에게.
계획을 세우고 단 한 번도 3일 이상 성공해보지 못한 나에게.
하루 공부하고 하루 노는 패턴을 반복하던 나에게.
스스로에게 나는 꽤 머리가 좋은 사람이야 라고 타이르며 성실함을 간과해버리던 게으른 나에게.
운과 요행을 바라며 무엇인가에 꾸준히 도전해보지 못한 나에게.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에 묻혀 스스로를 끊임없이 자학하는 나에게.
너도 열심히 할 수 있다고.
열심히 하면 잘 될 거라고.
너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보여주고, 증명하고, 도전하고 싶었다.
그 도전은 내 나름의 기준에서 성공했고, 마지막 수능을 본 시험장에서는 마침내 웃으며 나올 수 있었다.
다만 목표 설정을 오로지 점수에만 두고 내 적성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커리어를 선택한 측면에서만 본다면 나는 세 번의 수능을 치고도 실패했다.
하지만 무엇인가 내가 꿈꾸던, 대단한 것을 스스로의 노력으로 성취한 과정을 거친 경험은 인생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엄청난 밑거름이 된다.
나는 선생님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안정적이라서, 친구들이 좋다고 하니까, 이 정도는 가야 좀 테가 날 것 같아서, 혹은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하실 것 같아서 등의 터무니없는 이유로 교대에 갔다.
학교를 다니면서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걸 이내 깨달았지만 더 이상 대학을 관둘 수는 없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자니 당연히 임용시험도 재수를 했고, 또다시 내가 수능에서 거쳤던 시련을 겪었다. 그러고 보면 내 인생은 재수와 실패로 점철된 라이프다.
하지만 거꾸로 뒤집어보면 도전과 성공이기도 하다. 나를 극한까지 몰아붙여 내 한계를 보았고, 그 누군가에게는 별 거 아닐지 몰라도 정신적으로 밑바닥까지 떨어졌다.
데드라인이 있는 단 하루의 결과물을 향한 도전은 인간에게 엄청난 긴장과 공포감과 정신적 스트레스를 준다. 물론 나보다 더 심각한 어려움에 처했던 사람은 세상에 정말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 또한 나의 재수와 실패로 점철된 라이프(?)에서 멘탈붕괴를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이 겪은 것 같다.
그 실패들은 나에게 새로운 나를 보여줬다.
나는 나에게 중요한 일이 있으면 친구에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고,
누군가에게 휘둘리지 않고 내 고집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고,
계획을 세우고 3일 이상 혹은 1년까지 지킬 수 있는 사람이고,
하루를 열심히 살고 그다음 날도 열심히 살 수 있는 사람이고,
나는 머리가 좋은지는 몰라도 성실함으로 승부할 수 있는 사람이고,
운과 요행을 바라기보다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도전해서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이고,
완전할 수는 없지만 나의 이상에 어느 정도 가까워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고,
그 무엇보다도,
너는 할 수 있다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절망 속에서 그 어떤 희망을 찾을 수 없어도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하면 너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재수 삼수 시절 끊임없이 들춰봤던 책의 한 구절처럼,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질 거라고.
그것을 믿고 앞으로 한 발 짝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너는 가지고 있다고.
그렇게 인생에서 돈을 주고도 배울 수 없는 가치들을 배워나갈 수 있었다.
나는 먹고살만하면 나태해진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자극이 있으면 정신이 번쩍 든다.
‘아니, 이렇게 살면 안 되지.’
표를 만들었다.
을 맨 위에 적고
무슨 일을 하든 그 목표를 되새긴다.
내가 하는 일이 내 목적에 부합하는 일인가?를 가장 먼저 고려한다.
그 밑에는 세 가지를 적는다.
목표를 위해서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반면 하고 있는 일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이 글은 잊고 지냈던 나를 돌아보고 지금의 나태한 나를 나무라기 위한 반성문과 같다.
인간의 욕구를 피라미드 표로 정리한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에서 가장 최상단에 있는 인간의 욕구는 자아실현의 욕구다.
자아실현은 인간에게 그 어떤 다른 욕구의 결과물들에 비견할 수 없는 무한한 행복감을 안겨준다
삶을 조금 내려놓고, 스트레스받지 말고, 인생은 한 번뿐이니 여유롭게 즐기며 살으라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나는 감히 외친다.
때로는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것도 엄청난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