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자와 연애는 처음이라 ep.20
민익씨의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다. 나와 같은 직업인데 한국과 미국의 대우는 사뭇 달라 보인다. 우리나라처럼 국민 연금은 아니지만 사적으로 연금을 들만한 충분한 봉급을 준다. 그녀가 공립학교에서 일하는지 사립학교에서 일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쓰리잡을 뛴다. 평일에는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하고, 주말에는 평범한 아이들에 비해 조금 느리거나 하는 이유로 학습에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가르친다. 게다가 그녀는 그녀가 소유한 아파트에서 친구가 어린이집을 운영하는데 멘토로 도움을 주고 필요한 법적 절차를 옆에서 보조한다. (부원장 같은 느낌인 것 같다) 어쨌든 교사로서 다른 직업을 병행하는 것이 가능하고, 나오는 급여도 넉넉하다 보니 그녀는 뉴욕의 집 두 채를 가지고 있는데, 이번엔 바닷가에 집을 샀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가 이룩한 이 모든 것들은 삼십 대 초반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서 남자아이 셋을 키우면서부터다. 삼십 대 중반에 대학원을 마치고 교원자격증을 땄고, 세 개의 직업을 그때부터 병행했다고 한다. 남편이 돈을 보내주긴 했겠지만 혼자서 건장한 남자아이 셋을 키우기엔 턱없이 부족했을 텐데,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한 마디로 그녀는 현재 그녀가 이룩한 것들을 충분히 누릴 자격이 있어 보인다.
이번 여행은 민익씨의 어머님 쪽 친한 사람들과 아들들, 아들의 여자 친구들(나는 일 때문에 못 갔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을 모두 데려가는데 비행기표와 숙소를 그녀가 모두 예약했단다. 통도 크다. 미국에서 교사의 말년이란 이런 모습인가. 새삼 부러움이 일지만 나는 한국에서도 더 이상 교사가 아니라는 걸 이내 깨달았다.
‘미국에서 했다면 안 그만뒀을까?’
모를 일이다. 어쨌든 교직은 내게 그렇게 맞는 직업은 아니었다.
아무튼 민익씨가 엄마 덕분에 운 좋게 쿠바로 여행을 떠난다. 민익씨가 지금 사는 집도 그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어린이집의 한 구석 작은 방이다. 렌트비 300불을 내고 사는데 뉴욕에서 혼자서 사는 스튜디오에서 300불을 내는 것은 나와 같이 사는 쥐가 내는 정도의 렌트비다. 터무니없이 싼 가격이다. 낮에는 어린이집 때문에 아이들과 그의 어머니의 친구, 앤지가 있지만 그들은 민익씨가 퇴근할 때쯤 집을 비운다. 그래서 그는 풀옵션의 스튜디오에서 혼자 산다. 300불을 내는데도 비싸다고 가끔 투덜거리는 그를 바라보고 있자면 세상은 불공평한 것 같다. 그나저나 쿠바라는 나라가 낯설다.
쏟아지는 내 질문들에 민익씨의 답변은 하나다.
“글쎄, 모르겠네.”
걱정이 된다. 쿠바에 대해 검색해봤다. 미국인들이 요즘 많이 가는 휴양지이고, 공산주의 국가라 밤늦게만 돌아다니지 않으면 낮동안 치안은 비교적 안전한 편이란다. 사진들을 보니 마치 한국의 6-70년대 풍경을 보는 것 같다. 다만 이국적인 점이 하나 있다면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아주 조그만 어린이가 흥이 넘치게 춤을 춘다. 어디서나 악기 연주가 울려 퍼지고 비교적 순박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란다. 정감 있는 시골의 느낌인가 보다. 안심이 된다.
“그런데 치에를 어떻게 하지. 앤지도 같이 여행을 가서 아무도 봐줄 사람이 없어.”
그는 약 10일 정도 여행을 간다.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나에겐 한국이 그리워지는 순간이 문득문득 가끔씩 찾아오는데, 그중에 하나는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는 맨해튼에 있는 집을 계약해서 룸메이트를 들여서 같이 산다. 맨해튼의 방값은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방이 두 개, 거실이 하나인 집에서 방 하나에 사는데 시세는 보통 한 달에 200만 원이다. 이것은 위치가 중심가와 가까운가, 집의 컨디션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지지만 보통 맨해튼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저 평균치에서 내려가진 않는다.
반면 나는 계약자이고 처음 집의 상태가 안 좋았기 때문에 집을 계약하고 관리하는데 초기 비용을 많이 썼다. 게다가 룸메이트를 못 구하거나 행여 집에 사고가 생겼을 때 내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과 책임이 컸기 때문에, 감히 방에서 살 엄두가 안 났다. 돈을 깔고 앉아 있는 기분이 들 것 같아서 거실에서 사는 것을 택했다. 나는 세상에서 번쩍번쩍하기로 유명한 뉴욕 맨해튼에서 창문도 없는 거실에 커튼을 친 텐트 같은 방에서 3년을 살았다. 커튼이 쳐있어 방음이 될 리 만무하고, 노래도 꼭 이어폰으로 들어야 한다. 블루투스 스피커는 나에게 꿈같은 이야기다.
그러다 보니 민익씨가 없는 동안 그의 넓은 스튜디오를 독차지하고픈 욕심이 생겼다.
선뜻 나서는 나를 보며 민익씨가 되묻는다.
“진짜 그래 줄 수 있어?”
“응. 그렇고 말고.”
나의 시커먼 속을 모르는 그는 활짝 웃으며 고맙다고 한다.
“자기 없는 동안 나도 여기서 휴양을 즐겨야겠다.”
나의 속셈을 은근슬쩍 고백하고 며칠 후 그가 떠났다. 민익씨는 쿠바로 간 이후부터 미국에 돌아오기 직전까지 10일 내내 연락이 없었다. 처음 며칠은 그의 연락을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열이 받아서 그의 반려 조가 굶든지 말든지 가지 말까 생각도 했지만 이내 그의 집에서 쉬는 거랑 그거랑은 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가기 전 마트에서 라벤더향 거품 목욕 볼을 샀다. 내 아파트는 욕조가 더럽기도 하고, 셋이서 사는 집이라 마음 놓고 목욕을 할 수가 없다.
그의 집에 도착해서 치에의 안위를 살핀 후 집을 치워주고 밥이랑 물을 줬다.
‘이제 나의 임무는 끝났군.’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의 집 욕조를 빡빡 닦기 시작했다. 방수가 되는 샤워용 블루투스 스피커에 내 핸드폰을 연결했다. 욕조를 닦고 물을 받는 동안 티비를 크게 틀어놓고 침대에 누웠다. 커다란 티비가 침대 바로 앞에 있으니 영화관에 온 것 같다. 물이 욕조에 적당히 찼다. 거품이 욕조를 가득 채웠다. 은은한 라벤더 향이 온 목욕탕에 가득하고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를 틀었다. 사 온 와인을 한 잔 따르고 책을 가져왔다.
세상에, 어느 호캉스가 부럽지 않다.
비록 내 집은 아니지만 정작 호텔도 내 집은 아니지 않은가?(이런 논리가 있다니)
욕조에 한가득 몸을 담그고 노곤한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이것은 살맛 나는 휴가다. 민익씨에겐 너무나 미안하지만 둘이서 보내는 시간보다 더 좋은 것 같기도 하다.
목욕을 마치고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표정으로 나왔다. 그럽헙(미국에 있는 배달음식 앱)을 열고, 햄버거와 초콜릿 케이크, 스프라이트를 주문했다.
햄버거가 도착했다. 내가 좋아하는 아보카도 햄버거다. 티비를 빵빵 틀어놓고 시원하게 배달음식을 와구와구 맛있게 먹었다. 이것은 이 세상의 행복이 아니다. 휴가 간 혼자 사는 남자 친구를 둔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
다음 주말도 지나고 다음 평일에 민익씨가 돌아왔고 그에게 문자가 왔다.
잘 지냈다고 말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잘 지냈지만 감정을 억제하며 답했다.
“응. 잘 지냈어. 잘 다녀왔어?”
“응. 우리도 휴가 가야 하는데 어디로 갈까?”
민익씨와 사귀기로 하기도 전에 가기로 했던 곳이 있다. 활쏘기를 체험할 수 있는 활쏘기 체험장이다. 헝거 게임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진짜 화살을 쏠 수 있다. 그에 비해 내가 너무 잘 쏜다. 나는 세계를 호령하는 우리나라 선수들처럼 양궁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 이글 아이라고 부르는 정 가운데를 종종 맞혔다.
숨을 내쉬고 과녁을 바라본 후 바른 자세로 과녁을 노려보며 숨을 들이쉬고 잠시 숨을 참으며 손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고 그대로 쏘고 나서 잠시 자세를 유지하면 된다.
둘이서만 하다가 다른 커플이 합류해서 선생님이 넷이서 함께 하라고 짝을 지어줬다. 공교롭게도 여자분은 동양인, 남자는 민익씨와 비슷한 스타일이다. 넷 중에서도 내가 제일 잘한다. 선생님이 민익씨와 다른 커플의 동양 여성에게 계속 코칭을 해 주시며 독려했지만 그들은 영 진도가 안 나간다.
게임을 하면 자기가 제일 잘해야 직성이 풀리는 민익씨가 풀이 죽었다. 마지막에 과녁 맞춘 종이를 들고 사진을 찍는데 내 종이는 과녁의 중앙이 다 찢어져 있는데 민익씨 것은 멀쩡하다. 못하는 연기라도 했어야 했나. 그러기엔 나도 처음이었는데. 민익씨에게 한국인의 디엔에이가 양궁을 잘하도록 프로그램되어있는 것 같다고 농담을 던졌다. 그는 웃지 않았다.
두 번째로 내가 좋아하는 동네인 할렘에 아주 유명한 바비큐 립을 먹으러 갔다. 아주아주 오랜 옛날부터 전해져 오는 맨해튼의 바비큐 립 1호점이라고 볼 수 있는 이 집은 ‘실비아네 바비큐’ 같은 이름이었다.
흑인 여성 한 분이 교회의 찬송가 같은 느낌인 가스펠을 부르며 테이블을 돌아다녔다. 나는 정말 예배를 볼 때 부르는 노래들을 부르실 줄 알고 잔뜩 기대를 했는데, 9할은 사람들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는 노래였다. 사람들은 먹느라 대답하느라 비디오와 사진을 찍느라 제각기 바빴고, 전 세계에서 왔다고 해도 될 정도로 국적이 다양했다. 커다란 홀을 통틀어 이십 팀 정도가 있었는데 한국에서 오신 분들이 다섯 팀이나 되었다. 기대한 노래가 아니었어도 신기하고 재미있고, 무엇보다 립이 정말 맛있었다. 대체 어떻게 오븐에 구운 것인지 정말 부드러웠다. 한번 찌고 나서 구운 것처럼 속은 야들야들 겉은 바삭하다. 너무 맛이 있어서 집에 돌아와 똑같이 만들어보려고 시도를 했는데, 소스 맛은 비슷한데 고기의 질감이 영 다르다. 그들만의 비법이 있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업 스테이트 뉴욕에 있는 대형 몰에 갔다. 대형 몰에 놀러 간 것에 무색하게 우리는 핫도그를 먹었다. 나는 멀리까지 놀러 갔는데 핫도그만 먹는 게 아쉬워서 감자튀김도 시켰다. 파스타 같은 더 그럴싸한 메뉴를 먹고 싶었지만 참았다. 데이트를 하면 같이 먹은 비용에 대해 이번엔 누구 차례인지 누가 사는지 눈치 보고 먼저 영수증을 집고 등등 일련의 과정이 가끔은 피곤하다. 우리는 6:4에서 7:3 정도로 비율을 유지하는 편인데, 나는 민익씨에 비해 버는 돈이 심하게 적어 한 번 데이트 비용을 내면 출혈이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비용을 내주는 그에게 고맙다. 예전에는 많이 버는 사람이 더 많이 사주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고 우겼던 난데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럽다. (물론 나는 내가 더 많이 벌면 더 많이 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말한 거긴 했다.)
몰 내에 있는 오락실에 갔다. 민익씨는 게임을 잘한다.
‘얼마나 이기는 게 좋으면... 이 남자한테는 웬만한 중요한 일이 아니면 이길 수 있더라도 져주는 게 상책이구나.’
아이같이 해맑게 좋아하는 그를 보니 활쏘기 체험장에서 헝거게임의 주인공마냥 대활약을 한 내 모습이 민망해진다.
그렇게 우리의 신나는 어드벤처 여름휴가는 막을 내렸다.
그가 없는 휴가가 좋은지 그가 있는 휴가가 좋았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혼자 있는 시간이 힐링의 시간이고 나를 돌보는 시간이었다면, 둘이 있는 시간은 재미있는 일들을 함께 하며 아가를 돌보는 시간이다.
둘 다 나름의 장단점이 있다. 둘이서 즐겁게 놀다가도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예쁘게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앞으로는 적당히 져 주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아이구 그래쪄요? 우쭈쭈...
가끔 한국말로 정말 이렇게 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