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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욕꼬질이들 Aug 12. 2019

민익씨의 형제들의 여자 친구들

미국 남자와 연애는 처음이라 ep.19


오늘은 민익씨 여조카의 돌잔치에 초대받았다.

(여기서 잠깐 틈새 영단어 공략: 여조카는 니스(niece), 남조카는 네퓨(nephew)라고 합니다. 하도 헷갈려서 네퓨는 고츄랑 발음이 비슷하니까 남자라고 외웠습니다.(네?!))


민익씨의 잘생긴 남동생 닉, 그리고 터프하게 잘생긴 맏형 빈센트도 온다. 왜인지 마음이 설렌다. 그들은 내가 편치만은 않은 가족모임에 기꺼이 참여하는 이유 중 하나다. 물론 민익씨는 아직 모른다.


#1 레즐리를 만나다

민익씨의 차를 닉과 함께 타고 가기로 했다. 반갑다며 따뜻하게 볼을 맞댄다. 아, 난 미국식 인사가 정말 좋다. (민익씨, 미안~)

닉은 아직 스무 살의 귀요미인데, 그에게는 여자 친구가 있다. 이름은 레즐리란다. 오늘은 그의 여자 친구도 온다고 한다. 여자 친구 얘기가 나오니 팔불출 닉의 입이 귀에 걸렸다.


“내 여자 친구야.”


묻지도 않았는데 조수석에 앉은 내게 여자 친구 사진을 보여주려고 핸드폰을 스윽 내민다. 귀엽다. 여자 친구를 보니 좋아할 만하다.


“와, 진짜 예쁘다~!”


아기처럼 대해줘야 하는 귀여움은 이 집의 내력인가. 나는 양손 엄지를 척척 들어 너무 예쁘다며 그 자리에 있지도 않은 닉의 여자 친구에게 칭찬을 날렸다.


닉이 자랑스러운 웃음을 만족스럽게 짓는다.


닉은 민익씨에 비해 감수성이 예민하고 비교적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유행이나 스타일에 민감해서 옷도 예쁘게 입는다. 닉의 여자 친구네 집은 시계 장사를 하는데 대학생에게는 꽤 비싼 시계인데도 한 달 동안 꼬박 아르바이트를 해서 여자 친구네 시계를 사줬다고 한다. 민익씨가 조용한 심해에서 조심스레 흐느적거리는 해조류 같은 사랑꾼이라면, 닉은 동네방네 시끌벅적한 상어 같은 사랑꾼이다. 민익씨의 형, 빈센트 또한 열정적인 사랑꾼인데, 민익씨와 닉의 딱 중간쯤인 것 같다. 빈센트는 줄여서 빈이라고 부르는데(닉은 니콜라스의 줄임말이다), 역시나 가장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츤데레라서 대놓고 챙겨주지는 않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임팩트 있는 감동을 주는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게다가 성숙하지만 어딘지 불안해 보이는 눈빛을 갖고 있어서인지 레즐리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그에게 너무 섹시하다며 만나보고 싶다고 했단다. 분명 같은 피이고 같은 사랑꾼인데 서로들이 이리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른 것이 신기하다.


아무튼 돌잔치에 참석한 나는 닉의 여자 친구 레즐리와 처음으로 만났다. 빈센트의 여자 친구 멜리사는 오지 않았다. 레즐리는 소탈하고 목소리가 매력적이고 정말 예쁜 열아홉 살 꽃 같은 소녀다. 둘은 이미 오랜 기간 교제를 한 터라 그녀는 민익씨의 가족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나와도 짧게 인사를 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먼저 친하게 다가가자니 어색하기도 하고, 낯선 자리라 긴장이 되기도 하고, 핵인싸인 그녀에 비해 나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게다가 족히 50명은 되어 보이는 파티장에 동양인은 오로지 나 한 명이다. 언어, 생김새, 사고방식, 문화 등 갑자기 민익씨의 가족들과 나는 모든 것이 다를 것만 같은 이질감이 든다.


“괜찮아?”


“응..”


닉의 여자 친구와 친해지려는 시도는 관두고 민익씨의 손을 꼭 붙잡고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가 따뜻하게 대해줘서 다행이다. 닉과 레즐리가 셀피를 찍는다. 힙한 친구들이 하는데 우리도 한번 해보자 싶어 나도 얼른 따라 해 봤다.


민익씨는 애늙은이 스타일이라 나는 그와 단 둘이 있을 때 나이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나는 우리 집에서도 내 남동생과 11살 차이가 난다. 그래서 나이 차이는 내게 큰 이물감이 없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민익씨의 동생, 민익씨 동생의 여자 친구를 보고 있자니 내가 이들보다 늙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민익씨도 언젠가는 저런 파릇파릇한 여자 친구가 더 좋지 않을까?’


괜한 마음에 시무룩해진다. 레즐리와 나는 그렇게 먼발치에서 각자의 남자 친구와 꽁냥거렸다.


그 후 몇 번이고 그녀를 만났을 때마다 우리는 비슷한 상태를 유지했다. 하루는 그녀와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할 기회가 생겼다. 그녀가 말했다.


“나는 술을 안 마시면 수줍음이 굉장히 많아. 나는 그게 너무 싫어. 닉도 싫어해.”


그녀가 강한 악센트로 찡그리며 ‘내 그런 부분이 싫어!’라고 이야기했을 때는 깜짝 놀랐다. 첫째는 사람마다 누구나 자기가 자신 없는 부분이 있구나 싶었고, 둘째는 그녀가 insecure 한, 한창 자신을 찾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할, 아주 아주 소녀라는 점을 깨달았다. 이내 그녀가 내게 나이를 물었다.


“삼십 대야. 사실은 서른둘이야.”


“아~”


그녀가 답했다.


그 후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번에는 민익씨의 동생들의 첫 영성체 날이다.

미국의 가톨릭교도들은 첫 영성체를 굉장히 큰 행사로 여긴다. 첫 영성체는 보통 9-10살쯤 받는데 남학생들은 반바지에 정장을, 여학생들은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일렬로 줄을 지어 대부(godfather)나 대모(godmother)의 손을 잡고 성당에서 행진(?)을 한다.


민익씨는 민익씨의 동생들 중 한 명인 마이클의 대부가 되었다. 그는 새로운 임무가 주어진 로봇답게 나를 내팽개쳤다. 내가 어렸으면 민익씨와 크게 싸웠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닉과 레즐리를 찾아내 그들의 곁에 앉았다.


오랜만에 성당에 오니 졸리다. 나는 모태신앙이지만 성당을 매주 갈 정도로 신실하지는 않다.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잔뜩 긴장하다 자리에 앉으니 잠이 쏟아진다.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성당에서는 일어났다 앉았다 하는 일이 많다. 일어날 때마다 휘청거리다 보니 본의 아니게 닉에게 자꾸 치댔다. (정말 고의가 아니었다!!) 그러자 레즐리가 닉과 자리를 바꿔 내 곁으로 왔다. 이런. 그녀의 심기를 건드렸나 보다. 정신이 번쩍 든다. 그녀에겐 치대지 않았는데 레즐리가 더욱 의심할까 걱정이 된다.


#2 멜리사의 등장

첫 영성체 행렬을 마치고 파티장으로 향했다. 본격적으로 민익씨 가족들을 만날 시간이다. 오늘은 빈센트의 여자 친구 멜리사를 처음 보는 날이다.


그녀는 활기찼다.


“안녕.”


인사도 간단하다. 반갑게 인사를 나눌 새도 없이 그녀가 계속 이야기를 이어간다.


“성당은 못 갔어. 내가 이런 옷을 입어서 주목받고 싶지 않았거든. 가슴이 크면 이래서 힘들어.”


뭐라고? 내 귀를 의심했다.

그녀는 가슴도 크고 몸도 큰 편이다. 이 여자는 오자마자 자기 가슴을 자랑하는 건가. 지극히 보통 가슴을 가지고 있는 레즐리와 나를 은근히 보내는 건가 싶은 아마 사실이 아닐 추측이 들기도 하고, 첫인상이 좋지 않다.


그녀는 닉을 무시하고, 민익씨에게 유난히 말을 많이 걸었다.


“요즘 젠더 플루이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요즘 유치원에서 남자, 여자 성별을 못 부르게 한대. 내가 아는 유치원애 하나가 ‘저는 고추가 있다고요!!!’ 하고 소리 질렀어.”


가슴자랑에 이어서 이제는 고추 타령이다. 민익씨가 웃는다. 심기가 불편하다.


그녀는 세 번째로 샤워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녀가 샤워를 안 한다 뭐다라고 해서 민익씨가 되물었다.


“그러니까, 샤워를 할 때 샤워부스에서 안 한다고?”


“아니, 나 빈센트 집에서 놀 때 우리 집이 가까우니까 집에 가서 하려고 샤워 안 한다고.”


그렇게 그들의 대화가 대충 마무리되었다. 오 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신기한 주제들이 난무하는 대화의 한가운데에 있다 보니,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싶다. 멜리사는 얼굴도 예쁘고 가슴도 크고 통통 튀는 매력 있는 성격인 것 같다. 그래서 더 싫다.


나는 술을 흠뻑 마시고 빈센트랑 닉이랑 민익씨랑 실컷 춤을 췄다.


멜리사는 무슨 이유에선지 춤을 추지 않았다. 내 남자 친구랑 그런 얘기들을 하다니 나도 너 남자 친구랑 춤출 거다!!! 물론 빈센트와 둘이서만 춤을 춘 것도 아니지만,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다. 쓸데없는 신경전은 정말 소모적이다. 상대에게 뭔가를 잘못하면 그건 언젠가 되돌아오고, 내가 앙심을 품으면 또 다른 업보가 생기는 법인데. (요즘 불교사상에 푹 빠져있다.) 그때는 질투심에 약간 눈이 멀었던 것 같다...라고 하기에도 너무나 소심한 혼자만의 복수였다.


그 이후로 다행히 멜리사는 내 심기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녀의 대학 졸업 기념으로 집에 초대되었을 때 그녀는 내게 예쁘다고 칭찬을 해줬고 나는 너도 예쁘다고 했다. 그녀는 예쁘다. 그리고 처음엔 수박이 잘게 그려진 팔이 들어가는 구멍이 세로로 아주 깊게 파인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옆에서 보면 가슴이 다 보인다고 누군가가 말했는지 옷을 갈아입었다.


가슴이 크면 안 좋은가보다.








민익씨 형제의 여자 친구들과도 친하게 잘 지내고 싶은데... 참 쉽지 않네요 ㅠㅠ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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