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자와 장거리 연애는 처음이라 ep.3

우리의 랜선 데이트 (1) - 게임, 그리고 노래방

by 뉴욕꼬질이들


민익씨는 하드 코어 게이머다.


중고등학교 때 게임에 푹 빠져 게임만 하다가 대학도 게임 학과를 갔다.

들어보니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하는 공대인데, 게임을 처음부터 끝까지 개발하는 방법을 배운단다.


그가 만약 우리나라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면 학교 마치자마자 pc방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게임을 하다, 어머니에게 등짝 스매싱을 맞았을 것만 같다.

하지만 민익씨 어머님은 그의 취미를 열렬히 지원해주셨고, 학과도 함께 알아봐 주셨다고 한다. (리스펙!)


미국은 우리나라만큼 많은 학생들이 대학교 진학을 선택하지 않는다.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에 따라 대학을 갈지 말지를 결정한다. 민익씨는 게임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드는 법을 배우기 위해 학교 진학을 선택했다. 하지만 대학교에 진학한 후 게임을 개발해보니, 본인이 게임을 즐기는 것과 게임을 만드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돈 내고 다니는 학교와 돈 받고 다니는 학교는 너무나 다르다고 말하던 선생님의 삶 같은 것인가 보다.)


게임을 좋아하는 민익씨와의 장거리 데이트는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우리가 함께 즐길만한 랜선 아이디어가 풍부하다.


“이 게임 해보자.”


그는 나와 함께 게임을 할 때 유독 더 신나 보인다. 여자 친구와 게임하기가 버킷리스트에 있었던 것 같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여러 가지 힌트로 이 곳에서 탈출하는 게임이야.”


인터넷에서 이뤄지는 방 탈출 게임 같다. 방 탈출 게임방에 좋은 기억이 있던 나는 진작부터 흥미가 생긴다.


그는 실제로 방탈출 게임을 하러 갔을 때와는 사뭇 다르게(그 당시 우리는 잘못된 힌트를 읽어 온 무리에 혼선을 주는 역할을 했다.) 곳곳에 숨어있는 힌트를 척척 찾아낸다. 게임을 시작하는 순간 모든 주도권은 민익씨가 가진다.


우리가 게임을 하는 스타일은 매우 다르다.

나는 성격이 급하다. 내 게임 스타일은 무대뽀다. 알 수 없는 상황에 빠져도 대부분 겁 없이 뛰어든다. 결론은 어차피 두 가지이기 때문이다.


죽거나, 살거나.


삶과 죽음은 내 알바가 아니니 무작정 빨리 깨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나는 게임을 하는 동안 여기저기에서 죽거나, 사건사고를 빵빵 터트리거나, 이상한 곳으로 다니며 얼토당토않은 시도들을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민익 씨 머리 위에 말 그대로 앉아서 상황을 관조하며 편하게 있는다.

경쟁심도 대단해서 내가 지고 있으면 성질이 나고, 목소리가 커진다. 누군가는 그 사람의 성격을 보려면 운전하는 모습을 보라는데 나는 게임할 때 나도 모르던 내가 나온다. 가끔 게임이 끝나고 게임할 때 의 내 모습을 떠올리며 이불을 찬다.


반면 민익씨는 신중하다. 다리 하나를 앞에 두고도 시간을 갖고 생각을 한 뒤에 건넌다. 내가 이미 건너다가 죽었거나, 우연찮게 성공해서 건너편에서 기다리고 있는 동안 말이다. 그는 불사신처럼 죽지 않는다. 게알못(게임을 알지 못하는 사람)인 나에겐 그가 게임 상의 목숨을 현실과 동일시하는 것 같이 보인다.(가능성이 높은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민익씨는 머리를 써서 숨겨진 힌트 같은 것을 찾아 풀어나가는 게임에 특히 강한데, 내가 가장 못하는 분야다. 내가 한 구석의 벽 모서리에 머리를 박고 가만히 있는 동안 민익씨는 혼자 곰곰이 생각하며 해결한다. 과정을 주욱 지켜보니 믿음직스럽다. 내가 지루해서 방을 뱅글뱅글 도는 동안에도 그는 이내 다음 단계로 나를 인도한다.


묘한 포인트에 신뢰감이 생긴다.

마치 우리의 운명과 나의 목숨이 그에게 달린 것만 같다. 내가 혼자 뛰어다니며 자폭하지만 않으면 말이다.


한창 게임을 하다 문득 평소에도 민익씨가 이렇게 신중하게 생각을 하고 말을 했으면 나랑 싸울 일이 훨씬 덜 했을 텐데 싶은 생각이 든다. 그의 생각하고 행동하는 회로는 게임할 때만 작동하나 보다.(부들부들)


나는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모르는 편이라 대부분 민익씨가 먼저 게임의 마무리를 제안한다.


그는 자신이 해결한 게임이 재미가 있었는지, 스스로가 자랑스러운지, 내가 귀여운지(?) 혹은 무서운지... 목소리가 한층 더 나긋나긋해진다. 흉폭하던 내 모습에 조금 놀랄 법도 한데 말이다.

하드코어 게임보이도 묘한 포인트에 애정을 느끼나 보다.


신나게 게임을 하고 나면 조금 허탈한 기분이 든다. 같이 마주 앉아 밥도 먹고 싶고, 손 꼭 잡고 밖에 나가서 데이트도 하고 싶고, 커피숍이나 바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고 싶은데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라 통탄스럽다. 그래도 한 시간 정도 다른 데이트를 더 하고 싶다.


이제 뭐하지?”


“노래방 할까?”


이제는 노래방 가자가 아니라 노래방 하자가 되었다.


유튜브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제목과 노래방 버전이라고 찾으면 노래방 같은 음원이 나온다.


민익씨가 하나 셋을 외치면 동시에 재생 버튼을 누른다.

나와 민익씨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지켜봐 주신 분들은 알겠지만, 내가 그에게 반한 포인트는 두 번째 데이트에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영어로 멋들어지게 부르는 모습이었다.


민익씨는 내 기준으로 노래를 잘하는 편이다. 미국인이니까 영어를 잘하는 건 당연한데, 그에게는 묻고 더블로 비트 위에서 박자를 타는(?) 재주가 있다.


그는 대중적인 백인 노래보다는 그루비한 흑인 노래를 부른다. 비교적 오래된 음악도 많이 안다. (그것들은 나의 취향이다.)


한국에서 대중적이지 않은 음악을 좋아하던 내가, 좋아하던 노래들을, 모를 것만 같던 외국인에게 듣는다는 것은 가히 충격적인 행복이었다.


그가 종종 자장가로 불러주던 ‘저 높은 하늘의 달이 피자로 보이면 그것은 사랑~’이라는 딘 마틴의 that’s amore를 들으면 민익씨가 새삼 이탈리안의 피가 흐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하늘을 둥둥 날아다니는 기분이다.


그는 중저음의 목소리도 아니고, 자신의 목소리를 딱히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그래도 내 귀에는 찰떡이다.

짚신도 짝이 있다는 속담이 뼈를 때리는 순간이다.


단 한 가지 커다란 문제는 그가 한밤중의 분위기에 잔뜩 취해 혼자 사는 아파트에서 열창을 하는 동안 나는 해가 중천에 부모님은 밖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가 신나서 노래를 부르면 나는 티비쇼에 나오는 음악 서바이블 프로그램의 심사위원 마냥 목을 끄덕거리며 리듬을 탄다. 나른한 주말 아침에 내가 할 수 있는 응원의 최대치다.


“자기는 안 불러?”


. 자기 노래 듣는 좋아.”


나도 부르고 싶기도 하지만, 그랬다간 부모님에게 아침부터 뭐하는 짓이냐고 뒷목을 세게 잡힐지도 모른다.


우리의 랜선 노래방 데이트는 민익씨가 지쳐 쓰러질 때쯤 막을 내린다.








‘그녀(Her)’라는 영화에 나오는 사이버 애인이 생긴 것 같고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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