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연애의 치명타 (1)
“응. 잘 자.”
민익씨는 아침에 회사를 가는 길에 전화를 건다. 미국 시각으로는 6:40분에서 6:45분 사이. 그는 전기회사에 다녀서 아침 7시까지 출근이다.
민익씨의 평일 루틴은 고정적이다.
6시 기상
7시 출근
4시 반 퇴근
9시 반 취침
새나라의 어린이보다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잔다. 그와 영상통화를 하다 보면 기지개를 5분에 한 번씩 켜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시 만나면 그의 키가 더 자라 있을 것만 같다.
그는 9시 반에 잠이 들기 1시간 전 8시 반에서 9시 사이에 늘 내게 전화를 건다.
그의 아침/나의 밤에는 간단히 10-15분 정도, 그의저녁/나의 아침에는 30분에서 1시간 정도 통화를 한다.
서울 시각 저녁 8시 40분의 나는, 미국 시각 새벽 6시 40분의 그에게 묻는다.
“잘 잤어?”
그의 대답은
“응.” 혹은 “괜찮았어.” 로 나뉜다.
참고로 민익 언어는 일반인의 언어와는 사뭇 다르다.
민익씨가 표현하는 ‘괜찮은 잠’은 새벽에 갑자기 깼거나, 제대로 잠을 못 잤음을 뜻한다.
그에게 “피곤해?”라고 물었을 때 “조금”이라고 답하면 ‘지금 집에 가서 침대에 누우면 5초 안에 곯아떨어질 정도의 피곤함’과 같은 원리다.
설치는 것도 그냥 설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시각에 고정적으로 잠에서 깨어난단다. 악몽이나 꿈을 꾸지는 않지만 다시 잠에 들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
내가 미국에 있는 동안 민익씨가 잠에 들기 어려웠다고 말하는 것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혹시라도 한국에 오는 것 때문에 부담이 되어서 그런가 싶어서 걱정이 된다.
“혹시 한국에 오는 것이 부담돼서 그래?”
궁금해지면 노빠꾸인 내가 조심스레 묻는다.
“아냐. 너무 더워서 그랬던 것 같아.”
“아냐. 너무 건조해서 그랬던 것 같아.”
민익씨의 두 가지 고정 대답이다.
그의 편치 못한 수면의 질이 신경 쓰인다. 아침 통화에서 주로 거론되는 화두는 그의 숙면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고정 질문이다.
“오늘 하루 어땠어?
“좋았어.”
이후 나는 곤경에 빠진다.
요즘 나의 하루는 대체로 평범하고 평온하다.
백조가 조용한 호수의 물아래에서 겁나게 사이클링을 하듯이,
나는 공부를 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준비를 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공부를 마치면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고, 자기 전 유튜브를 보거나 글을 쓰고, 명상을 하고 잠을 청한다.
나의 친구들은 결혼을 해서 아이가 있거나, 몇 없는 싱글 친구들은 내가 미국에 가 있는 사이 서로의 관심사가 심하게 달라졌거나, 혹은 서로 바빠서 볼 시간이 여의치 않다.
몇 년 전 만해도 가끔 술도 거하게 마시고 아주 가끔은 클럽이나 바에도 가고, 친구들을 따라다니며 처음 본 사람들과 모여 어울리기도 했는데, 이젠 그런 것도 귀찮다. 귀찮다기보단 더 이상은 나에게 맞지 않는 세상같다. 내가 아닌 내가 되기 위해 술의 힘을 빌렸었는데, 이젠 그대로의 나를 좋아하기로 하며 이따금씩 혼술을 하는 것이 최고의 행복들 중에 하나가 되었다.
다만 민익씨의 고정 질문이 들어오면 그에게 신나게 설명할 만한 일이 없다.
“오늘은 공부하고 밥 먹었어.”
비슷한 대답도 한두 번이지 다른 이야기를 해 보려 생각해본다.
1. 내가 공부한 내용
전부 패션에 관한 이야기라 그의 관심 밖이다.
2. 운동을 한 얘기
윗몸일으키기를 했다. 스쿼트를 했다. 한 운동들을 이야기하자니 무미건조하다. 어떤 남성 분이 “우씨! 우씨!”하며 덤벨을 들고 헬스장을 활보했던 날이 있는데 그 이야기는 유일하게 재미있었다.
3. 재밌는 영상을 본 얘기, 좋은 노래를 들은 얘기
그에게 링크를 보내고 서로의 생각이나 느낀 점을 나눈다.
최대치로 할 말을 뽑아내고 나니
이내 다시 조용해진다.
민익씨는 과묵한 편이다. 대신 입을 열면 나를 빵빵 터뜨린다. 그의 강력한 유머 감각도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전해지기는 어려운 것 같다.
그의 입이 만근이다 보니 내 입만 아프다.
굳이 궁금하지도 않은 질문을 이것저것 던지고, 그의 수면에 대해 걱정을 하고, 별로 하고 싶지도 않은 시답잖은 이야기를 주섬주섬 꺼낸다.
그의 엄마가 된 것 같다. 무뚝뚝한 아들 둔 엄마가 아들의 학교 생활에 대해 물을 때 이런 기분일 것이다. 속상하다.
가까이서 데이트를 할 때는 서로 공유하는 관심사나 아는 사람을 만들거나, 이벤트를 함께 하면서 다양한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했는데, 이젠 각자 하는 일과, 아는 일의 오차 범위가 커진다.
점점 표현력에 한계가 온다.
‘지루함’이라는 그림자가 통화 중인 우리에게 드리워진다.
장거리 쉽지 않네요. 주절주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