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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빈 May 25. 2024

목차 소개부터 청중과의 밀당이 시작됩니다.

#발표에서 칼자루 쥐는 법 #마이크를 잡는 순간 카리스마는 그대에게

발표가 시작되었습니다. 첫 장을 넘기자 다음 슬라이드가 나옵니다.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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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회사소개

2. 시장 현황

3. 서비스 경쟁력

4. 마케팅 전략

5. 사후 관리

6.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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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지금부터 오늘 말씀드릴 순서를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회사 소개를 하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시장 현황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저희 회사가 가진 서비스의 경쟁력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는 마케팅 전략을 말씀드리고 다음으로는 사후 관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론을 설명드리는 것으로 오늘의 발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발표할 때 가장 많이 쓰이는 말은 무엇일까요? 


"설명드리겠습니다."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특별히 잘못된 점 없이 무난한 표현이지만 매번 마무리할 때마다 반복되면 재미가 없죠. 더 깔끔하게 말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문장의 길이보다도 핵심을 담아서 전달하는 게 중요해요. 


말을 길게 할수록 발표를 잘하고 말을 잘한다는 생각을 갖고 계신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정말 말을 잘하는 것은 '쉽고 짧고 간결하게' 핵심을 전하는 능력입니다. 달변가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처음에는 말을 잘한다는 느낌을 받지만 막상 다 마치고 나면 "그래서 뭐라는 거지?" 하고 아무런 골자가 남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떠한 메시지도 전달받지 못한 거죠. 


주어진 시간 안에 말할 수 있는 글자 수가 5,000 자라고 생각해 봅시다. 이 글자는 어떤 말들로 채워야 할까요? 오랜 기간 준비한 결과물을 단 몇 십분 안에 담아야 합니다. 불필요한 부분은 물론 필요한 부분마저도 마음 아프게 편집해야 겨우 맞출 수 있는 시간입니다. 제가 시간에 있어서 너무 구두쇠인가요? 그런데 발표를 보면서 시간이 너무도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상황이 있습니다. 불필요한 단어, 표현들이 반복됩니다. 대표적으로는 목차에 대한 소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앞의 예시에 있는 것처럼 자세하고 길게 목차를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슬라이드에 있는 그대로 읽으면 되니까 틀리지도 않습니다. 시작이 좋은 것 같은 느낌마저 듭니다. 이런 분위기로 자신감 있게 계속 가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초반이라 잔뜩 긴장한 나머지 목차 소개를 하면서 버퍼링이 발생합니다. 한 번 엇박자가 나니 말이 꼬이고 틀린 곳을 반복해서 말합니다. 슬라이드 보랴 청중 눈치 보랴 시선도 몸도 흔들립니다. 아직 갈 길이 멀었는데 아득합니다. 큰일입니다. 


청중과의 밀당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느슨하면 안 됩니다. 탄력 있게 운영하세요. 


위의 예시 문장을 소리 내어 읽으면 30초 가까이 됩니다. 그런데 청중, 아마도 심사위원이 눈으로 목차를 읽는 데는 3초면 충분합니다. 이 슬라이드에 없는 중요한 정보나 흥미로운 내용을 발표자가 덧붙여 말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목차 소개를 마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내 시선을 내려 하드카피로 나누어준 제안서를 뒤적이면서 다음 장으로 계속 넘깁니다. 다 비슷한 내용들입니다. 가장 궁금한 건 입찰 가격인데 나눠준 제안서에는 공란이네요. 발표하면서 말로 하려나 봅니다. 그걸 들으려면 앞으로 20분은 더 기다려야 하네요. 청중은 흥미를 잃고 스마트폰을 꺼냅니다. 이 무렵이면 발표자는 앞에서 한창 회사 소개를 하고 있겠네요. 오랜 시간 공들여 노력한 결과물을 긴장된 마음으로 애써 말하고 있지만 청중에게 닿지 못하고 공기 중에 흩어집니다. 청중들이 시선을 받으면 긴장되서 힘들다던 발표자, 지금은 아무도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이 상황이 더 난감합니다.


발표는 슬라이드를 그대로 읽어주는 음성 서비스가 아닙니다. 


목차를 지나치게 친절하게 소개하고 싶어 하는 분들께 제가 늘 드리는 말씀입니다. 다들 한국말 읽을 줄 아니까 그렇게 설명할 필요 없다고 말이죠. 심사위원이나 청중들이나 모두 제안서 읽어보면 그만인데 굳이 사람을 앞에 세워 발표를 듣는 건 그만한 의미와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안서에 담지 못한 내용, 슬라이드에 없는 내용을 추가하여 구어체로 부드럽게 이어서 잘 전달하는 게 발표의 목적입니다.


발표자가 등장하면 청중은 일단 주목합니다. 이때 확보한 집중력을 유지하며 몰입하게 하기 위해서는 지루하게 운영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슬라이드에 그림이나 도표도 넣고, 동영상도 넣습니다. 발표 현장에서는 말로 하는 밀당을 활용합니다. '발표자가 말하는 속도'와 '청중이 받아들이는 속도'의 차이를 조절합니다. 세세하게 모든 것을 말해주면 흥미가 떨어집니다. 설명이 부족하면 생각을 많이 해야 하니 귀찮아서 그만둡니다. 때로는 이해하기 쉽도록 친절하게, 때로는 호기심이 들도록 여지를 남겨두어 청중이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참여하도록 만듭니다. 발표자에게는 이렇게 운영하고 리드할 수 있는 카리스마가 필요합니다. 무대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떨려 죽겠는데 무슨 카리스마까지나 하실 텐데요, 생각보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안녕하십니까, 000에 대해 발표할 000의 000입니다." 


이와 같이 소개를 마친 후 목차 슬라이드가 나오면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말씀드릴 순서입니다." 


그리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3초 시간을 준 뒤 다음 슬라이드로 넘어갑니다. (이후 무대 매너, 보디랭귀지 편에서 자세하게 다룰 텐데, 이때 발표자의 시선과 몸의 방향은 청중을 향합니다. 몸을 돌려서 슬라이드를 기웃거리지 않습니다.)


발표와 더불어 사회 보는 방법에 대한 코칭도 수요가 종종 있습니다. 회사 행사, 워크숍, 결혼식 등 다양한 상황에서 사회를 보게 되는 경우입니다. '멋지게' 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으세요. '나 때문에 망치면 어떡하나' 이 부분이 가장 큰 걱정입니다. 그럴 때 드리는 팁이 있어요. 앞에서 마이크 잡는 역할에 대한 콘셉트를 잡아드리면 흥미를 가지면서 기왕이면 '멋지게' 하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되고, 결국은 잘 마쳤다는 후일담이 들려옵니다. 


사회자, 발표자는 카리스마가 '필요한 게 아닌, 저절로 주어지는' 자리입니다. 


여러분, 발표자나 사회자가 하는 말에 청중들은 무의식적으로 따르는 편입니다. "화면 가운데를 보시면" 하면 화면 가운데를 보고, "국민의례가 있겠사오니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의 국기를 향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면 아무리 높은 분들이라도 일어납니다. 점심시간 되었으니 이동하라고 안내하면 모두들 부지런히 나갑니다. 이런 부분들이 앞에서 마이크를 갖고 말하는 사람의 카리스마입니다. 권한이기도, 책임이기도 합니다. 사회자가 아니면 그 많은 사람들을 나의 말 한마디로 움직일 수 있는 일이 평소에 가능할까요? 회사 워크숍에서 사회를 맡았습니다. 이번 신사업 전략을 누구 팀장이 발표하니 다들 큰 박수로 맞이하라고 사회자가 청하면 대표와 임원들도 박수 칩니다. 직원이 높은 분들을 언제 그렇게 말 한마디로 움직일 수 있을까요? :D


디소 당돌한 발상이긴 하지만 이렇게 하면 무대공포증과 청중의 시선을 이겨내고, 행사나 발표 전체를 운영할 수 있는 자신감과 카리스마를 갖는 데 도움이 됩니다. 면접관을 두려워하는 지원자들이 마인드 컨트롤할 때도 비슷하게 하잖아요. 지금 내 앞에 있는 면접관은 동네에서는 그저 옆집 아저씨일 뿐이다, 무서워할 것 없다. 


청중과의 밀당에서 칼자루를 쥐는 방법, 청중을 나의 발표에 몰입하도록 만드는 방법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런 부분들입니다. 이 발표와 청중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단단한 마음과 카리스마를 품고, 태도와 표현에서 존중과 예의를 갖추면 마이크 앞에 서는 여러분의 마인드는 세팅 완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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