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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빈 May 22. 2024

비행기 이륙 후 5분, 스피치 초반의 5분

# 오프닝은 짧을 수록 #본질과 핵심에 집중 #유머는 나중에 

청중의 집중과 몰입을 유지하고, 기대한 바에 부응하기 위한 오프닝은 비행기가 이륙한 후 5분만큼 중요한 순간입니다. 발표자가 인사하는 몇 초 동안의 기운이 그대로 가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요즘은 채용 면접에서 프레젠테이션 전형도 많이 하는데요, 취업 준비생 여러분들이 준비를 많이 해서 그런지 대체로 잘 수행합니다. 주어진 시간도 여유 있게 잘 지키고, [서론-본론-결론]도 짜임새 있게 잘 구성합니다. 낯설고 긴장감으로 가득한 면접장에서 주어진 자료를 몇 십분 동안 읽고 소화하기에도 버거울 것 같은데 그렇게 정리해서 발표까지 잘하는 지원자들을 보면 정말 대단합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용두사미가 되는 거예요. 대체로 PT 면접의 발표 시간은 3분~5분인데, 목차와 오프닝 하느라 반 이상을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 생각에 이런 이유들이 아닐까 해요.


- 전체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다. 

- 모르는 분야라서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

- 마음만 앞설 뿐 전략적으로 접근하지 못했다. 


제시된 주제를 아예 모르거나 독해 속도가 느린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다 읽고도 정리를 못해서 발표의 완성도를 놓친 경우라면 교정이 가능하니 다행입니다. 


초반의 내용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대폭 줄입니다.


비즈니스 프레젠테이션에서 앞부분은 목차, 회사 소개(연혁, 구성원, 업적), 시장 현황 분석 등으로 이루어지는데요, 동종 업체들과의 경쟁이라면 회사 소개는 간략하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류 심사를 통과했으므로 기본적인 자격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가중치를 그렇게 크게 두지는 않습니다. 궁금하면 나중에 평가 위원들이 물어봅니다. 


회사 소개 자체가 발표의 핵심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술 평가, 자금 지원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회사의 차별화된 아이디어를 강조해야 하는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집니다. 대표 프로필, 팀원들의 경쟁력, 기술의 독창성을 강조해야겠지요. 특히 스타트업 같은 경우에는 트랙레코드도 없고, 각종 전략이나 마케팅 방안도 '자금 지원을 받은 이후에' 시도할 수 있는, 즉 현재로서는 모래성 같은 이야기니 회사 소개 자체가 주요한 평가 기준이 되어 이 모래성을 견고한 궁전으로 만들어줄 무기가 됩니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도입에 흔히 들어가는 회사 소개, 시장 현황 분석은 전체 분량의 15%를 넘지 않도록 권합니다. 다음 시간에 나올 이야기를 미리 맛보기로 드리면, 목차는 한 장, 회사 소개도 한 장으로 깔끔하게 만들어놓고 실전 발표에서는 이 두 장의 슬라이드를 설명하느라 적지 않은 시간을 쓰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이를 방지할 수 있는 확실한 팁이 있으니 그건 다음 이야기에서 들려드릴게요. 


"처음 아카펠라 부분이 너무 좋았다. 그 감동을 뛰어넘는 부분이 뒤쪽에는 없어서 아쉬운 무대였다."


<팬텀싱어 4> 심사평 중에서 이런 표현을 들은 적이 있어요. 감성적으로 울림을 주던 팀인데 당시 라운드에서는 파워가 돋보이는 선곡을 해서 이전 무대와 좀 다른 분위기이긴 했고 이에 심사위원 두 명이 아쉽다는 평가를 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우승했어요. :) 


우리는 시작할 때 앞부분에 힘을 주기는 해요. 작심삼일, 용두사미, 이런 말들이 그냥 나온 게 아니겠지요. 피트니스, 자전거, 금연, 다이어트, 외국어 공부 등 야심 차게 시작했다가 초반을 넘긴 적이 없는 경험은 모두 있으시죠. 서점에서 책의 앞부분을 읽다가 재미있어서 샀는데 정작 집에 와서 다 읽고 보니 앞부분이 전부였던 경우 있지 않으신가요? 영화도 그렇고요. 초반에 흥미로웠는데, 전개까지 숨 막히고, 반전의 뒷심까지 끝내주는 무언가는 정말 대단한 겁니다. 


도입이 점점 길어지는 브런치 스토리


실은 이 글을 시작하면서 스토리가 모이면 (가칭) <발표 핸드북>이라는 브런치북을 발간할 생각으로 10편을 구성했는데, 2편이면 되겠지 했던 스크립트, 청중 분석, 오프닝에 대한 이야기로 5회까지 왔어요. 발표 때 쓰면 멋있는 표현들, 스크립트 없이 슬라이드를 보면서 바로 말할 수 있는 훈련, 발음 교정, 목소리 톤, 말하는 속도의 밀당, 무대 매너, 디랭귀지 등 풀어놓아야 할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은데 '발표의 오프닝을 짧게 하라'는 메시지를 이토록 길게 하고 있다니. 그러나 저는 제가 알고 있는 팁을 생각나는 대로 모두 꺼내어 알려드리겠습니다.  <발표 핸드북: 오프닝 편>으로 시작해 시리즈가 많아지고 일이 커지더라도 저의 노하우 나눔을 아끼거나 편집하지는 않을게요. :)


용두사미 no no, 분배와 균형 yes


발표 자료 만들 때 처음에는 시간도 넉넉하고 열정에 불타서 힘주어 정리하다가 정신 차려 보니 어느덧 디데이는 코앞에, 마음은 급해지고 체력과 에너지도 고갈되다 보니 마무리는 겨우겨우 마감을 맞추게 됩니다. 하필이면 열정으로 가득 채운 부분은 회사 소개와 리서치고, 가장 중요한 전략은 중간에 질질 끌다가, 결론은 지쳐서 겨우 마무리하게 되니 반드시 전해야 할 내용이 약해집니다. 20분 동안 진행하는 발표라면 15~17분 분량으로 준비하시고 도입과 결론은 5분을 넘지 않게 하시면 좋은 분배가 되겠습니다. 이렇게 잘 짜인 균형이 말로 표현하면서 무너지지 않도록 다음 시간에 알려드릴게요. 


TED처럼 하고 싶은데, 에피소드로 시작하면 약일까 독일까


대중 스피치에서는 초반에 이목을 끌고자 에피소드를 활용하기도 합니다. 이는 발표의 목적과 주제, 청중의 분위기에 따라 잘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TED, 세바시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일반 대중 강연이니 감성적인 접근이 좋습니다. 어려운 기술조차도 쉽고 재미있게 풀어서 강연하죠. 실수담도 곁들여서 인간미도 더합니다.


그러나 비즈니스 스피치나 평가를 목적으로 할 때는 청중의 입장을 잘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설득에 있어 감성은 감초 같은 역할도 하지만 청중이나 심사위원이 그쪽 정서가 아니라면 집중력을 흐리고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서 불편하게 들을 수도 있습니다. 부작용도 반드시 생각해 주세요. 면접, 입찰, 지원 사업 등 평가가 동반하는 비즈니스 스피치임에도 꼭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싶다, 그래야 이 발표가 진심이라고 전해질 것 같다면 결론에 짧게 쓰시는 게 좋겠어요. 이 부분도 위험하기는 합니다. 앞서서 발표 잘해놓고 나중에 괜한 얘기 해서 흐름을 깨버리거나 진지하지 않게 보일 수도 있어요. 


유머, 에피소드는 나중에도 기회가 많습니다. 


에피소드가 짧고, 작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우면서 주제와 찰떡같이 맞는다면 모두의 긴장감을 풀면서 잠시 웃을 수 있는 센스와 유머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약이 아니면 독이 되는 극단적인 리스크가 있으니 여러 번 경험이 쌓이면서 해당 발표의 분위기에 익숙해진 후에 사용하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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