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쓰기 위해 너무 오랜 세월을 기다렸다
※ 이 연재는 나의 지난 연재들과는 결이 다르다.
글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쓰는데만도 정말 오랜 세월을 참고 기다렸고, 힘들었다.
과연 힘들단 말로만 가능할지 싶다.
이 브런치북은 나의 브랜드의 역사를 쌓기 위해서 쓰는 글이다.
지금은 모든게 미미하지만, 훗날 내 브랜드의 역사가 되어줄 것이다.
감사합니다.
내 성씨는 고(高)가이다.
나는 내 성이 그토록 싫었다. "고" 자가 들어가는
단어들도 싫었다.
나의 아버지는 3년 전, 종합병원의 VIP 병실에서 75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고씨 일가가 한 번씩 그 병원에 억대 기부를 하기 때문으로 알고 있다.
결국 손과 발에 땀 한 방울, 흙 한번 제대로 흘리고 묻혀본 적 없이 사셨지만
누릴걸 다 누리고 간 분이시다.
받을 수도 없고, 받아서도 안 되는 하나뿐인 외동딸의 눈물과 희생까지 기어이 받아내고 가셨으니.
그런 아버지가 내게 물려주고 간 유산은 단 돈 삼십여만 원과 핸드폰, 신분증, 텅 빈 지갑이 다였다.
그마저도 하나뿐인 아빠의 여동생이자 나의 고모의 지독한 질투와 시기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핑계 같지만, 아빠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아빠가 나를 찾는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수십 년 만에 걸려온 고씨 일가의 무례하고 폭력적인 연락은 결국, 시험을 일주일 앞둔 시점에 나를 완벽히 무너트렸다.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서른아홉 이토록 아픈 생리통> 투병기의 시작역시 이때부터 시작이였다.
나는 말이 없는 아이였다.
반항을 하거나 반문조차 해 본 적 없고,
원망이 뭔지도 모르던 아이였다.
모두들 나 때문이라 했기에 나만 탓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으려 무던히 애쓴다.
그럼에도 종종 상대방의 감정을 위해 바보나 이상한 애를 자처할 때가 있다......
나의 무정한 아버지는 내게 성씨만을 물려준 사람이다.
사실 물려준 게 그것만은 아니다.
막장 드라마가 명함도 내밀지 못하고 부끄러워 도망칠 정도의 파란만장한 한을 내게 죽은 뒤에까지, 고모와 그 형제들을 통해서 빠짐없이 물려주고 가신 분이다.
내 기억에 속 아버지와 그 고씨 일가에 대한 모든 기억과 만남은-아버지가 죽은 후까지도- 무도막심하거나 인면수심 하거나 파렴치한이다.
에피소드를 하나 하나 적을 수도 없다. 눈물이 흐르다 못해 경악을 금치 못할 테니.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내가 성인이 되어서도 어쩌다 한 번 만나면, 밥상머리에 앉혀놓고 말했다.
너 때문이라고, 너만 안 태어났었으면, 너만 없었으면 내가 네 엄마를 버리고 바람을 피우지 않았을 거라고.
고씨일가는 아버지보다 나이가 네 살 연상의, 이미 한 번의 결혼 전력과 다 큰 성인 자식이 둘이나 있는, 거기에 배우를 뺨치게 미모가 뛰어난, 거기에 기질적으로 성정이 화려한... 엄마를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외가에서는 땀 흘려 본 적 없는, 나이까지 어린, 거기에 집안까지 잘났다고하나 정작 본인은 일이 없는, 외모와 기골마저 기생보라비 같은, 무엇보다 가정을 책임일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 나의 아버지를 끝까지 사람취급 하지 않았다.
아빠는 무언갈 책임지고 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고, 또 모든 사람들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다.
외가에 가면 할머니는 꼭 내 이름만 부러 부르지 않으셨다.
맛있는 것을 줄 적에도 다른 사촌들의 이름을 크게 다 호명하시면서도 나만은 절대 부르지 않으셨었다.
내 머리를 한 먼 만지거나 내 손을 한 번 잡아주신 적도 없다.
그런 할머니가 이십여 년 전 94살의 연세로 돌아가실 적, 딴 한 마디 내게 남기셨다고 한다.
"우리 나운이 가여워서 어쩌나......"
그럼에도 나는 서른이 넘어서까지, 선물을 바리바리 싸 들고 간 이모한테서 식탁에 앉아 이런 소릴 듣는다.
"그때 우리가 너 지우라고, 엄마한테 너 낳지 말라고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렸어! 너 가진 게 정말 우리는 싫어! 네 아빠 때문에! 그런데 기어이 너를 낳아서는..."
"네... 이모..." 대답하며 웃는 나다.
이모들이 나를 대함이 다 이런 식이다.
마흔넷에 낳아서 애달프게 기른 자식을 유일하게 목숨 걸고 지켜줘야 할 나의 어머니는 이 세상에서 고씨들 다음으로 나를 세상 끝에 몰아세우고 핍박 하고, 내게 없는 내 캐릭터를 외가에 입이신 분이시다.
그리고 내게 악마보다 더한 (62년생) 스물네 살 위의 언니까지 덤으로 얹여주셨다.
그 언니로 인해 겪은 내 인생의 파란만장은... 지금은 이야기할 수조차 없다. 거기까진 아직 내가 힘이 부족하다.
판도라의 상자... ...
다만 악인은 지은대로 갈 것이라 믿어볼 뿐이다.
그 성이 다른 의붓언니조차 서른이 넘은 다 큰 나를 앉혀놓고, 그랬다.
"나는 네 아빠를 찢어 죽이고 싶게 미워. 그래서 너도 징그럽고 미워 너만 안 태어났었으면!"
그런데 내 아빠의 혜택, 하나뿐인 자식도 못 받은 그 보호와 혜택을 받아본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의붓언니였다.
언니는 미성년자 때부터 방탕했고, 아빠는 엄마의 부탁으로 그 사고들을 어렵지 않게 해결해 주었었다.
그게 남자문제이건, 돈 문제이건, 깡패들과의 문제이건, 술 문제이건, 결혼할 때의 자금이건......
그러나 그녀의 어린 딸이 또 나를 사람 취급 하지 않았다.
그 아이 핸드폰에 내 이름은 "미친년"이었다.
제 엄마에게 어릴적부터 듣고 산 이모 이야기가, 네 이모는 병신이라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 였으니
말 다했다.
나를 앞에 두고도 얘기했었고, 엄마, 언니, 조카 셋이서만 앉아서 밥을 먹으며 나를 유령취급하는 일을 일상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형부라는 이는 날 존중해준다.
엄마에게 부탁 끝에 나와 인사를 나눈 그 분은, 나와 헤어진 후 엄마에게 전화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머니! 처제가 이렇게 이쁘고 착하고 멀쩡한데...! 왜 00가..."
그 다음은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언니의 친구들도 나를 보면 그랬다.
"어머! 애가 이렇게 멀쩡한데! 00은 왜 그렇게 지 동생 말을...!"
내 귀로 듣고 살았으니, 거짓은 없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아빠와 엄마와 양가 어른들은 왜 나를 미워했을까? 할까?
믿기지 않고 경악스럽겠지만, 이유는 단순하다.
아빠는, 아빠 눈에 절세미녀, 지역 조폭을 동원해서라도 무력으로 가진 엄마를 결혼을 통해 다 가졌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가져지지 않는 엄마의 마음을 지독히 짝사랑하다 결국은 증오해 버렸고, 그 모든 원망을 미숙한 아빠는 하나뿐인 딸자식에게 돌렸다.
아빠는 그랬다.
너만 아니었으면 내가 바람을 안 피고, 집 밖으로 안 나돌았을 거라고.
엄마는, 엄마라는 단어가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자유영혼.
게다가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싫은 남자 중에 한 사람인 아빠에게 무력으로 꺾였으니, 아빠가 좋을 리 없었다.
그럼에도 의문이 생긴다.
왜, 양가에서 가장 늦게 태어나, 아무 죄도 지은게 없는 나를 그토록 핍박하고 미워하나?
아빠 쪽은 엄마에 대한 미움이 나에게 전가된 것뿐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메두사보다 더 못된, 고씨 집안의 하나뿐인 여동생이자 나의 하나뿐인 고모의 아빠에 대한 지독한 사랑과 시기 질투가 있다.
엄마 쪽은 예쁘고 잘난 언니를 주저앉히고 발목 잡는 짐덩이었다.
내가 성인이 되어서야 통화 내용을 몰래 듣고 알게 된 사실인데, 엄마는 나를 키우며 학대만 한 것이 아니었다.
외가에서의 나를, 엄마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사람 구실도 할 줄 모르는, 짐 덩어리 자식으로, 수십 년간 만들어놓았던 것이다......
그 충격과 배신감이란......
엄마 덕에 돈 쓰고 먹고살고 공부해 본 적 없다.
그럼에도 버리지 않고 밥 먹여 키우고, 옷 입혀 키운 것 마저 대단한 무기로 사십 년째 쓰시는 분이다.
이번생 이렇게 시작된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