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쓰는데도 너무 오랜 세월을 참고 기다렸다
※ 이 연재는 나의 지난 연재들과는 결이 다르다.
글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쓰는데만도 정말 오랜 세월을 참고 기다렸고, 힘들었다.
이 브런치북은 나의 브랜드의 역사를 쌓기 위해서 쓰는 글이다.
지금은 모든게 미미하지만, 훗날 내 브랜드의 역사가 되어줄 것이다. 감사합니다.
고씨일가는 대부분 부자다.
하나의 시(市)에서 이름만 대면 아는 부자다.
그중 가장 큰 부자는 고모다. 몇 백억 대의 자산가이다.
그런 고모가 가장 극진히 사랑하고 살피고, 죽은 후에도 잊지 못해 애달파하는 사람이 나의 아버지이다.
오랜 세월만에 마주한 아빠,
할 수 만 있다면 내 온몸의 혈관의 피들을 다 빼내고 싶다고 절규하게 만들던
그 아빠가 죽기 며칠 전 내게 힘겹게 힘겹게 뱉은 유언은 이랬다.
"아빠가 미안하다. 그리고 행복해라.
고모한테 부탁해 놨으니 다 알아서 해줄 거야.
네 인생이 너무 불쌍하잖아"
현실이 믿기지 않게 한심해서 눈물밖에는 나지 않았다. 미안하다니...
아빠가 죽고 며칠 후, 고모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빠 앞으로 남은 보험금 몇 십만 원과 통장의 잔고 백 얼마를, 너밖에는 해약, 인출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이유였다.
"그 돈 찾아서 아빠 장례비에 들어간 돈 충당하려고 한다."
기가 찼다. 결론적으로 난 주지 않았다.
내 아빠한테 살며 받은 것이 단 한 개도! 없는데, 남긴 거라곤 죽어서까지도 이어지는 고씨 일가의 폭력 같은 무례함 뿐인데, 억울해서라도 줄 수 없었다.
그 마저도 평소의 나처럼 웃으면서 죄송하다 하며 공손히 건네면 정말로 내가 사람으로 행세하며 살 수가 없을 듯싶었다.
한 끼에 몇 십만 원짜리 밥이 우습고, 빌딩에 집이 수채고, 다달이 억대를 버는 게 우습고, 냉장고는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고가의 식품과 선물들로 썩어나고, 벤츠 S 클래스 신형도 모자라 다른 브랜드의 외제차까지 돌려가며 타는 인간들이...세금을 몇 십억씩 내는 이들이... 단 돈 십원이라도 허투루 쓰면 안 된다며 내게 그 돈을 요구하다니......
아빠가 죽기 며칠 전, 아빠가 거동이 어려우면서도 내게 애써 무언가를 애써 주려는 듯 보였다.
어딘가에서 지갑을 꺼내던 아빠.
지갑이 닫히지 않을 정도로 들어있던 지폐와 상품권들.
자식은 일평생을 돈 십만 원 때문에 전전긍긍하며 살았는데... 그 지갑이 화가 나게 미웠다......
그 터질듯한 지갑의 내용물은 알고 보니 병동의 간호사들에게 돌아가는 팁 같은 것이었다.
마약류 진통제와 병세 때문에 섬망증세가 심하던 아빠는 자신의 딸을 알아보고, 지갑에서 잡히는 대로 돈을 꺼내 주려 했지만, 그 모습을 보던 고모는 두 눈이 야차가 되어 단 돈 십만 원을 내게 건넸다.
고모는 말했다.
"그래도 자식이라고 주고 싶은가 보다! 오빠는 하나뿐인 자기 여동생보다도 이제 나타난 딸자식이 더 좋은가 보네!"
아빠에 대한 고모의 사랑이 왜 내게는 미움과 질투로 이어지는지, 그 망상적인 정신세계를 나는 더이상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고모와 작은 아빠는 귀가 딱지가 않게 내게 읊어댔다.
너, 세상에 눈 뜨고는 못 볼 불쌍한 애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자신들이 얼마나 불쌍한 애들을 많이 도와주고 기부도 많이 하는 줄 아냐고. 돈은 그렇게 써야 하는 거라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읊었을 속마음은 생략한다......
고모가 아빠의 보험해지 관련 종이와 통장을 내게 건네며 고모가 마지못해 꺼낸 것이 있다.
순금 한 돈.
그 당시의 순금 한 돈은 삼십여만 원이었다.
고모가 말했다.
"내가 이걸 보며, 우리 오빠가 이걸 대체 누구 주려고 갖고 있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마도 너를 주고 싶어서 갖고 있었나 보더라. 자. 그래서 준다."
대단한 걸 주는 듯했다.
세상에 이보다 더럽고 치사하고 아니꼽고 비참한 유산을 남겨주고 가는 부모가 또 있을까?
고모는 줄기차게 나를 원망하고 질책하듯 질문했다.
"대체 너는 아빠를 왜 안 보고살았니?!"
그걸 물어보는 고모가 사람 같지 않았다.
나를 질책하는 건 고모만이 아니었다.
대체 당신들은 당신의 형이자 오빠가 하나뿐인 자기 자식에게 어떤 꼴을 보여주고 살았는지,
그 자식이 어떤 고생을 하며 살았는지 몰라서 그러나?
정말 치 떨리게 무섭도록 이기적이고 못된 집안 사람들이다.
아빠가 죽기 며칠 전, 나를 찾는 아빠의 전화를 받으며 평생에 쌓인 한과 원망을 딱 한 번 터트렸다.
"제발 아빠 나 좀 잊고 가! 제발 우리 다신 만나지 말자!
아빠는 아빠 딸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
어린 내가 어떻게 뒤꿈치 들고, 까치발로 이 불지옥, 가시지옥 같은
세상을 나 혼자 얼마나 무섭고 외롭고 고통스럽게
땅에 발 한 번 제대로 붙이지 못하고! 이 사람 저 사람한테
온갖 받지 못할 수모와 모욕과 핍박과 갖은 구박은 다 받아가며!
너는 그때 뭐 했어?
내가 여자애로 태어나 맨 몸뚱이 하나로 세상에 버려진 아이처럼
당할 때! 대체 너는 어딨었어?!
너는 편하게 먹고살았잖아?!
제발! 그러니까 제발! 나 좀 잊고 가! 다신 만나지 말게!"
나의 말은 내 귀에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절규를 넘어 포효에 가까웠다.
아빠를 왜 그토록 미워하고, 아빠와 왜 멀어졌는지, 자식이 어떻게 아비가 아픈데도 안 찾을 수 있는지,
그런 조카인 내가 밉고 원망스럽다는 사람들.
살며 딱 한 번 아빠에게 손 내민 적이 있었다.
돈을 달라거나 무슨 사건을 해결해 달란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 편인 사람이, 혈육이 그리웠다.
서른이 넘어서였고, 여름이었고 폭우로 세상이 멈춘 날이었다.
엄마의 의붓딸, 즉 그 언니의 갖은 횡포에 더 이상은 살 수가 없어 아빠에게 힘겹게 전화를 걸었다.
거부당할 것이 두렵고 무서웠지만 그보다는 그 당시의 현실이 더 무서웠다.
그러나 아빠는 그 폭우 속에서, 울며, 떨며 나 좀 도와달라는 그 애원에 전화기 너머로 욕과 함께 소리쳤다.
"네가 뭔데 이런 전화를 해! 네가 감히 뭔데 내 동생들 이름을 올리며! 도와달라 그러냐?!
너랑 나랑은 부모 자식 지간도 아니니까! 다신 나한테 연락하지 마!"
난 단순히 아빠의 호의를 사고싶어, 어른들의 안부를 물었을 뿐이었다....
아빠가 심장 떨리게 무서웠고, 울며 가지 말라고 바지단을 잡고 매달리던 나를 발로 차고 버리고 갔던 그 겨울, 6살 이후로 아빠에게 두 번째 마음의 문을 닫는 순간이었다...
나는 고씨 일가의 시선과 폭력의 언어가 두려워, 아빠의 장례식장에 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 언저리를 새벽부터 돌고 또 돌았다......
그리고 아빠의 장례와 49재의 막재를 끝으로 더 이상 만날 일이 없을 줄 알았던 고씨일가와의
인연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나는 내 아빠만 죽으면 내 세상 반의 불행이 끝나는 줄 알았다.
나는 내 아빠만 죽으면 모든 일이 끝나는 줄 알았다.
나는 내 아빠만 죽으면 내 인생 반은 드디어 나로 살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고시 시험의 낙방이었고 투병의 시작이었고 경제적 정신적으로 무너짐의 시작이었고
무엇보다 고씨 일가가 펼치는 막장의 이야기 역시 절정의 이야기가 남아 있었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밟히다, 밟히다 어느 순간 이를 물며 절치부심하게 되는 때가 온다.
더 이상 참지 못해서가 아니다.
변하지 않는 악인들과 과거로부터 도망치는 대신, 나로 살기로 각성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