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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과마눌 Sep 29. 2018

소설가의 일

김연수 작가

그 사이 나는 새로운 문명을 만났다.


평생 읽은 소설이 열권이 넘지 않는 과학도,
그래서, 셈이 능한 남편이
늘 흘리는 나 대신
차에 기름을 넣어 주듯,
사 놓고 쳐 박아 놓은 내 신문물에
e book을 다운로드 해 주었다.

그래도 그렇지
소설가의 일..인데,
e book 이라니, 선영아!

글자 크기가 조절된다는  걸
읽은 지 일주일 후에야 알게 된 나인데,
밑줄 칠 것 투성이고, 
접을 페이지 또한 오지게 많은 책을
한달 가까이 신문물 속에 싣고 다니면서
귀신에 들린 손가락이
제 맘대로 

앞으로 혹은, 뒤로 혹은, 다른 책으로 이끌어도

슬그머니 다시 이 책으로 돌아 와서

더디게 읽어 내려 갔다.


아니,
더 정확히는 ,
다 읽고 나서,
안 쓰고 버팅길 그 불편함에 민망해질 것 같아 
돌아 돌아 천천히 천천히 읽어 내려간 게 맞다.



소설을 평생 쓸 수 밖에 없을 것 같다며,

소설 쓰는 법을
이리 재미있게 써 내려간
연수쌤 짱

안 읽은 그대에겐 홀가분의 축복이
읽은 그대에겐 써야만 할 핍진성의 압박이 그득한
어느 길로 가도 모진..젖은 길만이 기다리신다

그냥 북을 다시 주문하여야 하여
시간을 벌 나자식에게 건투를..

같은 책 아니냐고 물을 남편에게
대답하리라

e book 은 소설가의 알
그냥 book 소설가의 일

알을 깨기 위해 읽었으니,

일을 하기 위해 읽는 것이 수순이라고.



세줄 요약:

시간은 벌고 본다.

꽃은 피우고 본다.

글은 쓰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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