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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과마눌 Sep 26. 2018

사물, 그 쓸쓸한 이름을 위하여

정한아 시인


사물, 그 쓸쓸한 이름을 위하여 
                                                   - 정한아

사물, 그 쓸쓸한 이름을 위하여
우리는 아직 쌩쌩한 콧구멍으로 콧방귀를 뀌고
헤프게 헤프게 사랑을 하고
머리는 옆구리에 끼고 달려 달려가며
낄낄거리는 달빛에
서로의 창백한 얼굴을 들여다보는 거지
시간의 물결은 두 몸뚱이를 휘감으며

서서히 해체되어 바람에 흩날릴 그날을
리허설이라도 하려나봐!
밤의 휘장이 열리면 어둠은
무심코 건드린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얼굴에
검댕처럼 문질러 발리고

우리는 웃고 또 웃었지
우리가 마침내 도달할
기다려 마지않는,
다고 거짓말도 할 수 있을
사물, 그 쓸쓸한 이름을 위하여

취하고 또 취했건만
만나면 그곳에 없는
어둔 욕망의 화려한 위장술

달려 달려가며 사방에 어둠을 뿌리며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울먹울먹 발자국에 고이는 새벽
잠든 네 얼굴에 내리는 빛 부스러기

사물이 따뜻할 수 있다면 그건
우리가 마지막 잉걸불로 다 타고 난
아주 잠시뿐
지금
벌어진 너의 입은 무슨 광물(鑛物)인 듯 번쩍거리지만.
                                        
                                                     -문학동네, '어른스런 입맞춤'


사랑..에다 
따위..를  따딱 붙일 때,
청춘은 피식 지나가더라

그리하여, 
바라고 바라던 사물이 된다

좋냐?

다행이라고..
다행이라고.. 
끝끝내 버팅기는
존나 짠한 그 이름

암요,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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