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이 살아야 산다
김어준은 스스로도 강한 개성의 소유자이면서,
개성이 강한 사람들을 알아내고, 모으고, 키우는 콜렉터이다.
그런 의미로 이번 다스뵈이다는 오랜만에
맞아.. 김어준이 저런 사람이었지.. 하는 느낌을 들게 한 회였다.
하늘이 내린 목소리만 빼고 다 갖춘 도올샘
다 가졌다고 쓰고 보니, 빠진 외모와 머리카락.. 도 보이나,
몰빵한 목소리에 묻혀, 다른 외적이 요소는 묻어 넘어간다.
암튼, 도올샘의 성경과 기독교에 대한 스토리텔링은
오직 도올샘만이, 오직 도올샘에 의해, 오직 도올샘만의 방식으로
순식간에 청중을 끌어들이고,
그 청중을 몰고, 수천 년 전의 서사의 골짜기 골짜기를 지나다닌 일인극이었다.
중간중간에 꺼내 들며, 선전한 자신의 책도 쉬었다 가는 호흡처럼 자연스러웠고,
그 특유의 잘난 척도,
그리고, 두꺼워서 조금 비싸다며, 미안해하면서도, 기어이 말해버리는 책값 2만 8천 원까지.
도올샘은 그 나이대의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귀염귀염 하시고
그 강의 역시 레전드끕이라 할 수 있었다.
빤스목사께서 광화문에 신도들 모아 놓고, 하는 그 짓거리에 대한 대응으로
이보다 더 멕이는 것이 없는 고품격 강의였다.
또한, 박경미 의원의 뜬금없는 월광소나타는 어떠한가.
오직, 그녀만이 그렇게 생글생글 웃으며, 주어는 없다며, 나경원베스트를 멕일 수 있고,
할 말을 따박따박 다하면서, 해코지를 당할 생각도,
그 당할 해코지를 그대로 수용할 생각도 없이 당당하며,
오직, 그녀만이 수학과 피아노와 문통을 연결하는 고리를 만든다.
대부분 개성 강한 사람들은 세상에서 그 개성을 유지한 채 살아 나가기 힘들다.
세상은 그 강한 개성을 불편히 여기고, 특이하다는 말로 명명하며, 자주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만든다.
특히나, 한국사회는 말이다.
그러니, 이런 한국사회에서 살아남은 개성이 강한 사람들은 대부분 두 가지이다.
첫 번째 부류는 철저히 자신의 개성을 숨기고, 다른 자아로 세상에 나아가 사회생활을 하는 경우고,
두 번째 부류는 그 강렬한 개성을 상대가 수용하고도 남을 만큼, 스스로의 역량을 보여, 인정받는 것이다.
도올샘이야 말할 필요 없고, 박경미의원 역시 이 두 번째 부류이다.
자신의 일을 똑 부러지게 하고, 타인과의 관계도 잘 이루어 나가면서,
자신의 취향, 개성을 가꿔 나가고, 타인의 평가나 오해를 피해서 그 개성을 숨기지도 않는다.
비례 국회의원으로 지역구에 나가니,
이름 알리라고 불러준 다스뵈이다 같은 곳에 나와서 월광 소나타를 치는 그 스웩은
박경미 의원이 어떠한 부류의 사람인지를 알려주는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총수가 말한 대로, 독특한데, 앞으로는 많아질 그런 스타일의 국회의원이었으면 좋겠다.
박경미 의원 와 나경원 베스트가 잡히는 화면을 보면, 나는 늘 기분이 좋다.
단순히 박경미 의원이 나경원 베스트의 의혹을 묻고, 주의를 환기시켜서가 아니라.
그 둘의 캐릭터가 보이는 시대와 인간형의 대조가 명확해서이다.
계급적인 배경과 학벌을 왕관으로 삼고 있지만,
상상력 결핍과 경직된 사고방식으로,
늘 가진 것 위에 하나라도 더하기 위해 전진에 전진을 더하는 듯보이는 나경원 베스트를 보면,
그녀의 일상이 어떠한 언어로 이루어졌는지 추측 가능하여
보는 사람들마저 숨이 막힌다.
그러나, 그 안달복달하고 맹렬한 그녀가 들이대는 그 계급의 필터에 전혀 주눅 들지 않고
해맑게 할 말 다하며, 그 필터 자체를 우습게 보이게 하는 박경미 의원은 중요하고 고마운 존재다.
나경원 베스트가 훈장으로 내 보이는 모든 것을 훗~하며, 우습게 만드는 존재이다.
여자들은 이 두 스타일 감이 온다.
다이다이 뜨러 나갔는데, 상대가 박경미야
너 법했니? 나 수학했어!
수학과 작곡의 관계 혹 아시려나?
잠깐.. 한곡 듣고 가.. 월광 소나타인데.. 베토벤이.. 잔잔히 비추는 옷.. 처음에는 알레그로야... 그러다가 사랑...
개성은 개성을 품은 자가 소중하게 느끼고, 가꾼다.
개성이라면 남부럽지 않게 부자인 총수
가수나 예술가들뿐 아니라,
우리 사회 도처에 오해받기 쉽고.
특이하다 치부하기 쉬운 개성 강한 사람들을 위해 판을 열어줘서 고맙다.
다른 시각, 다른 성품, 다른 방식은 한 사회를 풍성하게 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다양한 접근 방식을 가능하게 한다.
개성이 강하다고, 한 사람을 진귀품 보듯이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세상과 섞일 수 있도록, 그래서, 세상과 그들이 서로에게 유익할 수 있도록
장을 열어주는 것이 세상의 도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