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경, 공터에서
한참 동안 그대로 있었다
썩었는가 사랑아
사랑은 나를 버리고 그대에게로 간다
사랑은 그대를 버리고 세월로 간다
잊혀진 상처의 늙은 자리는 환하다
환하고 아프다
환하고 아픈 자리로 가리라
앓는 꿈이 다시 세월을 얻을 때
공터에 뜬 무지개가
세월 속에 다시 아플 때
몸 얻지 못한 마음의 입술이
어느 풀잎자리를 더듬으며
말 얻지 못한 꿈을 더듬으리라
-허수경, < 공터의 사랑 >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다가,
틈틈히 읽으려 옆에 놓은 시집이였다.
나에게 소설이란
시인의 가이드를 받아서 입구까지 가야만
집중이 가능한..
실상보다 덜 참혹한데도 더 불편한 그런 이야기이기에.
학생회관의 상석에 앉아
신입생들 데리고 구라를 풀고 있는
졸업시기가 훨씬 넘은듯한 복학생같은 하루키인데..
그게 또 먹히네.
숨만 쉬어도..
시크가 되고,
스톼일이 된다네.
한숨이 방울방울 맺히고,
내 기필코
말 수를 줄여서, 적을 줄이리라..고 다짐했건만.
막말러의 맹세가 흔들릴 때,
손에 든 허수경 시인
첫 장에 입부터 돌아 간다.
서른도 안되었던 시인이 쓴
너무도 나이들어 버린 시는,
하루키옵하의 Evergreen 이
형형한 눈빛 소녀가장의 희망보다
지켜 보는 입장에서는 덜 아프겠다는
셈 빠른 계산이 서더라.
타이밍은 언제나 양아치라던데..
사람용량마다 다르게 멕이는 시간의 양도 역시, 양아치임이 틀림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