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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과마눌 Jan 21. 2021

나이 먹어 불행한 게, 자랑은 아니다

그럼 욕일까

이젠 세기도 슬슬 지겨워질

그런 숫자의 생일을 맞았다.

 

애들 아빠와 삼 형제의 티 나는 눈짓도

복도의 숙덕거림으로 건네진

서프라이즈 선물과 카드도

보통 가정의 화목을 그리는 엄마 생일 클리셰의 절정

사랑하는 엄마의 생일 추카 합니다아아 노래까지


맞장구를 박장대소로 치며

절창의 고수로서 맡은 바 임무를 다했지만

실상은 미안하다 의미 없다였다


우울해서도 아니고

뭔 사연 있는 것도 아닌

그냥 괜찮아서이다


세상의 세시풍속의 호들갑에 기가 털렸달까

나이 따라, 세월 따라, 고비고비 깔 별로 부여한 의미에 지쳤고,

이 정도 나이엔 이 만큼은 하거나, 가지거나,

그 정도 나이엔 저만큼 지위와 하다 못해 배포를 가져야 한다는 배틀에 지쳤고,

하다 하다 누가 누가 더 우울한가를 두고

세대별 성별 계층별 진검승부에 지쳤다.


이런 호들갑류의 가장 큰 힘은

듣는 사람들을 듣다가 오지고 지리게 하는 데 있다.

안 불안하면 안 되나 하다가는 특이한 사람이 되고,

안 우울하면 안 되나 하다가는 갬성 약한 사람삘이 나는 것 같다.


사람을 세월 속에 가만히 흐르게 내버려 두면

저절로 불안과 우울과 두려움으로 그득하게 된다.

시간과 더불어 진행되는 노화는

노력하지 않아도 우리를 메마른 사막과 어둠의 골짜기로 구석구석 끌고 댕기기 때문이다.


그래 늙어 외로움은 당연지사이고

그래 늙고 병들어 고통스러운 건

말해 입 아픈 정해진 행로이다.


그런데, 나는 이제 그 정해진 길을 호들갑 떨며 걷지 않기로 했다.

요절이라는 단어로부터 멀어졌을 즈음부터

웃으며, 웃기며, 즐겁게, 그리고 발칙하게 늙기로 마음 먹었다.

물론, 그렇게 늙기엔 품이 많이 든다.

연어가 강물 까꿀로 뛰는 만큼의 품이지 싶다.

연어조차 그 고생을 하는데,

세상에 나와 받은 햇살이며, 들이킨 공기며, 퍼 먹은 곡식의 무게로

상대가 되지 않는 막강한 나는 마음만 고치면 될 일이다.

  

아무도 앞으로의 진로를 물어 주지 않는 나이는

그냥 태어난 김에 살아 보는 태도로

하루하루 제대로 즐기기에는 딱 좋은 나이 아닌가.


결핍이 어떻게든 메꾸어야 하는 카드값이 아니라,

그래 어쩌라고로 퉁쳐지고,

우울의 그늘이 자연스럽고

웃음의 심연이 호기심을 부를

반전에 반전에 반전에 반전을 도모할 나이

개중년일세


내 생일이면 늘 이렇게 축하만개하는 뒷 뜰의 매화, 뭘 좀 아는, 같이 나이들어 가는 매화언니



사람들 속에 살면서

사람들 틈을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다면

진정 나이 맛을 아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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