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몹시
- 이원규
당신이 몹시 아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프다, 는 말보다
몹시, 라는 말이 더 아팠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은 몹시의 발원지
몹에서 입을 꽉 다물고
시에서 겨우 입술을 뗍니다
그날부터 나의 시는 모두 몹시가 되었습니다
걸어서 지구 열 바퀴를 돌면
달까지, 당신의 뒷면까지 가닿을 수 있을까요
얼굴이 몹시 어둡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대 불면의 눈꺼풀이여..라는 제목에 이끌려 시를 찾다가,
몹시를 몹시 사랑한 이원규 시인의 다른 시를 읽었고,
그 시가 더 좋아 이리 올려 보았다.
사실 시가 시들해졌었다.
시보다는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게시판에 조랑조랑 달린 댓글이
삶으로도 시로도 마음을 더 두드리더라.
한 입시생 엄마가
열심히 달렸는데도
주르륵 안 좋은 결과만 접한 자식이
자신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는 듯 행동하고 있지만,
그 아이의 방문이 열릴 때마다
슬픔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고
공기마다 눈물이 맺혀 있는 것 같아서
아이 방문을 두드리기가 무섭다는 말을 댓글로 달았다.
그 엄마는 아마도 자신이 시를 쓴 줄도 모를 것이다.
위에 시를 쓴 이원규시인은
지리산에 살면서,
비가 내리면 미친듯이 오토바이를 몰고 산 위로 올라가
안개가 내려 오길 기다려서 야생화를 찍는다.
시는 더 이상 문자가 아니라면서
하늘에도 별, 꽃들도 별, 사람마저 다 별이라며
세상에 별들에 홀릭하고 있다.
몹시 옳은 말 같았다.
몹시 사랑하는 이의 아픔을 느끼면,
댓글 장인 엄마처럼
별같은 말을 무심히도 저리 피우겠지.
#사진 위는 이원규시인의 시
#사진 아래는 그냥 내 사설
#꽃나무 사진은 이원규시인 사진
#겨울나무 사진은 내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