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의 존재
누가 보아도
할머니는 이지안에게 짐같은 존재다.
거동 못해,
말도 못해,
벌이 없어,
혼자 살기에도 버거운 이지안에게
얹혀 있는 커다란 짐
나의 아저씨 초반에
이지안이 달이 보고 싶다는 할머니의 말을 흘려 듣지 않고
쇼핑카트를 슬쩍 집으로 가져가
한줌밖에 안되는 할머니를
한줌밖에 안되는 이지안이 끙끙거리며 태운다.
그리고, 그 할머니를 싣고
서울에도 저렇게 큰 달이 뜨나 싶게
엄청시렵게 큰 달이 보이는 언덕에서 같이 보는 장면이 있다
영화 ET라고..
연식 오래된 사람들은 유년시절에 보았을..
그 영화에 나온 달장면이래로
내 가슴에 남아 있을 명장면이다.
그 할매를 다시 끌고 달동네 집으로 올라가려던 걸
이선균이 대신 업어주고
그런 이선균을 보고, 이지안이 선의를 느끼면서도 이런 말을 하지
부자들은 착하기 쉽다고..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화상들은 그 쉬운 걸 안하는 걸로 선택한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그렇게 커다란 달을 쳐다본 언덕배기에서
나는 과연 그 달을 보고 싶어 하던 사람이 할머니뿐이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후에 너덜너덜한 몸과 마음으로
집에 들어 온 이지안이
할머니가 누워 있는 이불을 끌어
달이 잘 보이는 창가에다 데려다 주고,
따스한 물을 끓여 안겨 주고..
맛난 걸 보면 가격표때문에 망설이다 사다준다.
누군가를 케어하는 마음
나보다 약한 가족에게 뭔가를 주는 그 마음 어디엔가
내가 받고 싶었던 어떤 마음과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그 결핍되고 필요한 무언가를
내 손으로 누군가에게 주는 것으로 우리는 스스로를 채워간다
할머니가 있기에
텅빈 방안이 가득차고
차가운 방바닥이 신경쓰이고
뜨거운 물을 끓인다.
할머니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현자마냥
좋은 말..현명한 말..인생의 혜안에 가득 찬 말을 안해도
그저 바들바들 떨며
우리 강아지 불쌍해서 어떻하냐고.
내가 빨리 죽어야 하는데..하고 한탄만 하고 앉았어도.
할머니는 그 존재 자체로
집에 돌아 오는 이지안을 쳐다보는 눈빛만으로도
집 잃은 강아지마냥 거리를 헤맬 이지안을 불러들이고
할머니에게 베풀어지는 선의의 세례를 더불어 받으며
사람을 죽였었다는 낙인에 불도장을 더 할 수 있는 이지안의 타락을 막는다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누구에게는 할머니로..
누구에게는 엄마로..
대부분에게는 어린 자식으로..
사람들 다 하나씩 이런 존재를 키우며 산다.
그런 거다.
나를 파멸에서 건지는 힘도
나를 타락에서 막아 내는 힘도
역설적이게도
나를 죽도록 고생시키는
연약하여 내가 지켜줄 수밖에 없는
나를 사랑하고 아끼며
내게 기댈 수 밖에
그 누군가로 나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