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목시인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
공원 벤치에
누워서 바라보면 구름이 수염 같은 나뭇잎들 누워서 바라보면
하얗게 떨어지는 별의 비듬들
누워서 바라보며
칼자루처럼
지붕에 꽂혀 있는 붉은 십자가와
한켠에 가시넝쿨로 모여 앉아 장미 같은 담뱃불 뒤에서 맥주를 홀짝이는 어린 연인들의
눈치를 살피며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
버려진 매트리스에 붙은 수거통 스티커를 바라보며
한때의 푹신한 섹스를 추억하며
일주일에 한 번씩 종량제 봉투를 꾹꾹 눌렀던 손을
씻으며 거울을 바라보는 얼굴로
어느 저녁엔 시를 써볼까
어둠 속에서 자라는 환한 그림자를 밥의 기둥에 쿵쿵 머리로 박으며
방 없는 문을 달고 싶다고
벽없는 창을 내고 싶다고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오래 눕지도 못하는 공원 벤치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으로 칠한 조립식 무지개처럼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
별이 진다 깨진 어둠으로 그어 밤은 상처로 벌어지고 여태 오지 않은 것들은 결국 오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언제나 그대로인 기다림으로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
너는 환하게 벌어진 밤의 상처를 열고 멀리 떠났으니까
나는 별들의 방울 소리를 따 주머니에 넣었으니까
나는
비겁하니까
- 신용목,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 전문
오랜만에 주문하여 받은 책들을 사진으로 올렸더니,
참~ 사람하는 짓이랑 읽는 책이랑 너무 다르단 말이지..
라고 댓글이 달려서, 한참을 쳐다 보았다.
아마, 내 사는 꼴이 제대로 이리 보였겠지?!!
나 다 이룬 거 같다.
원하는 건 이런 것이였다
보기와는 다른 ..
처음과는 딴 판인..
사람 겉보고는 모르는..
그리 사는 것이었다.
홍홍홍
요번에 받은 책뭉치에는 신용목시인의 글들이 몇권있다.
시인들의 글이라는 게,
시보다 나은 수필이면 큰 일 나고,
소설가들의 글이라는 게,
소설보다 나으면 욕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라고 쓰인 동명의 수필은
같은 제목의 시보다 훨 못하다.
아니, 아니, 미안미안~
이 시가 훨 낫다
지구를 반바퀴 돌아서, 내 손으로 들어 온 알라딘은
배송 예상날짜를 한 치에 오차 없이 지켜서 열흘만에 도착했었다,
나는 책을 받기 전날 밤에는 진심 마음마저 두근두근 하더라.
시집이 올 뿐인데, 멀리서 시인이 우리 집에라도 방문하는 것 같아서
엄청시리 부담스럽더라고..
청소상태는?, 요리는..?, 차라도 한잔?
그러다, 저 시를 만나고, 읽는다
저 분..저 분..선수 시인
내 마음을 다 읽었다
한켠에 가시넝쿨로 모여 앉아 장미 같은 담뱃불 뒤에서 맥주를 홀짝이는 어린 연인..이었다가
여태까지 오지 않는 것은 결코 오지 않을 꺼라는 걸 눈치 채고
판 접고, 시마이하려는 비겁한 나를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