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목. 안희연 엮고 씀
기억과 공존하기엔 힘겨운 삶
내 기억에게 나는 쓸모없는 청중이다.
기억은 내게 끊임없이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길 바라지만,
나는 잠시도 가만있질 못하고, 헛기침을 하고,
듣다가 안 듣다가,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왔다가, 다시 밖으로 나간다.
그는 내 모든 시간과 관심을 독점하길 원한다.
내가 잠들어 있을 땐,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일과 중에는 변수가 생기게 마련, 그래서 속상해한다.
오래된 편지와 사진들을 내 앞에 안타까이 내밀면서
중요한, 혹은 그렇지 않은 일련의 사건들을 상기시킨다,
내 고인(故人)들로 우글거리는,
내가 미처 못 보고 지나친 광경들에 시선을 돌리게 만든다.
기억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늘 현재보다 젊다.
기쁘긴 하지만, 왜 항상 그 타령이 그 타령인지.
모든 거울들은 내게 매번 다른 소식을 전해주는데.
내가 어깨를 으쓱거리면 화를 내면서
불쑥 끄집어낸다, 내가 저지른 모든 해묵은 실수들,
심각하지만, 훗날 가볍게 잊혀버린 실수들을.
내 눈을 빤히 쳐다보면서, 내 반응을 주시한다.
하지만 결국엔 이보다 더 나빴을 수도 있다며, 나를 위로한다.
내가 오로지 기억을 위해, 기억만 품고서 살기를 바란다.
어둡고, 밀폐된 공간이라면 더욱 이상적이다.
하지만 내 계획 속에는 여전히 오늘의 태양이,
이 순간의 구름듯이, 현재의 길들이 자리 잡고 있다.
때로는 기억이 들러붙어 있는 것에 진저리가 난다.
나는 결별을 제안한다. 지금부터 영원히.
그러면 기억은 애처롭다는 듯 미소를 짓는다,
그건 바로 나의 마지막을 뜻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그렇게까지 공평할 필요는 없는데.
모든 사람마다 아버지가 주어 진다지.
무분별하게 공평하게 주어진 아버지는
역시나 무분별하게
가장 연약하여 대책 없을 때
절대반지처럼 기억의 각인 찍어댄다지
그리하여
그 누구도
그 누구에게
아버지란 정의가 이러하니
이 사람에게 어떠한 대의를 가지라고 말하지 못한다지
알면 다친다니까..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세상의 아버지에 대하여,
그가 나에게 주었고, 주고 있고, 끝끝내 주다주다 끝날.. 사자성어로 정리한다지
슬프면서 웃길 희,
슬프면서 열받을 로,
슬프면서 다시 슬픈 더블샷 슬플 애,
슬픈데.. 집중 빠지게 즐거울 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