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수요일?
수요일엔 창작을 하기로 했었어
일주일 중에 가장 덜 바쁘면서 동시에 가장 바쁜 날은 수요일이다. 통상 수요일에는 다른 요일보다 여유를 가지려는 편인데, 그런 이유로 평소에 처리 못한 일들을 몰아하다 보니 평소보다 훨씬 바빠지는 기현상이 매주 일어난다. 몰아하는 일이란 은행 가기, 산책하기, 굳이 굳이 카페에 나가서 책 읽기, 팟캐스트 녹음하기 등이 있다. 바쁘게 되기는 하지만,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바쁜 날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일하고 공부하고 나를 쥐어짜느라 바쁜 게 아닌, 나를 채우며 바쁜 날이.
그런 연유로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과거의 어느 날엔 수요일마다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었다. 심지어 브런치에 떡하니 박제되어 있다. 그리고 소리소식 없는 선언이 되어버렸다. 채움을 목적으로 일주일에 하루는 비워놓겠다던 다짐이야말로 알맹이 없는 소리가 되어버린 이 아이러니를 어쩔 것인가! 그러나 인간은 우매하다. 우매하기 때문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도 하고 무의미할지도 모르는 같은 다짐들을 되풀이한다. 나는 다시금 수요일마다 글을 짓기로 다짐한다.
우울과 불안, 그리고 창작의 관계
내가 브런치를 시작한 때는 몹시 마음이 힘든 때였다. 내가 나를 상대로 이길지 질지 모를 싸움에 응해야 했다. 매일 링에 수건을 던지는 기분으로 연이은 패배를 거듭하면서, 나는 나의 괴로움을 토로했었다. 브런치는 그 모양이었지만 인스타에는 희망과 소망을 담은 글도 자주 썼었다. 그때 글을 읽으면 나는 놀란다. 어, 내가 이런 문장도 지을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그때 내 문장들엔 외로움과 우울함이 벼려낸 ‘샤프함’이 있었다. 극도의 예민함은 나를 괴롭히기도 했지만 매우 날카롭게 다듬어진 문장을 선사하기도 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퇴고가 필요 없는 문장들. 내가 생각해도 쩐다! 싶었던 것들. 다름 아닌 내가 만들었지만 다시 나에게 만들어 보라고 요구하면 결코 되풀이되지 않을 영광 어린 문장들. 물론 과거의 기억은 세월에 풍화되어 거침없이 아름다워지기에 내 과거의 문장들이 거짓 없이 뿌듯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저 스스로를 너무 사랑했을 뿐인 무일푼의 알량한 느낌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주변에 창작과 관련한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이들에게 고견을 구했다. 우울에 잡아먹히기 직전이 창작은 더 우수했던 것 같아. 그들은 비록 성향에 따라 문장을 달리하기는 하였으나 한결같은 속뜻으로 응했다. 우울과 불안이 섬광 같은 영감을 일부 주었을 수는 있으나 지금의 쇠락은 게으름 혹은 원하지 않음 때문이라고 말이다. 맞다. 어쩌면 ‘라떼는, 왕년에는 말이야’를 시전하면서 과거의 나 뒤로 숨어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꾸준하게 다시 쓸 자신이 없으니까.
서툰 피아노 소리가 살랑거리는 골목
자취방은 아파트 촌과 맞닿아 있다. 아파트 단지 바로 옆에 뜬금없이 나 홀로 붙어있는 빌라는 창문을 열면 기가 막힌 햇살이 쏟아진다.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음악을 틀어놓고 뛰어다니며 지르는 괴성이 또렷하게 들린다. 아파트 단지가 있다 보니 조금 걸어서 내려가면 아이들이 다니는 여러 학원들이 있다. 영어, 논술, 수학 따위의 따분하기 짝이 없는 학원 외에도 피아노 학원과 태권도장, 합기도장이 있다. 그중 내가 자주 다니는 생활 반경에 있는 건 피아노 학원이다. 상가의 2층에 있어서 무관심하게 고민에 골몰해 걸어 다니면 눈에 띄지 않는 학원이다.
나는 따가운 햇볕을 피해 땅바닥을 보며 천천히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똥땅똥, 땅, 하는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소리의 진원지를 찾으니 창문에 누덕누덕 붙은 스티커 간판이 보였다. 로시니 피아노학원. 피아노 학원에서는 피아노 외에도 동요 부르기 등을 가르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틀림없이 피아노 교습이 주일 그 학원에서는 누가 들어도 이제 막 건반을 누르게 된 누군가가 애쓰는 소리가 창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가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우며 쳤던 곡들이 제멋대로 편곡된 박자로 들렸다. 요즘도 피아노 학원에서 아이들은 연습한 횟수만큼 동그라미에 빗금을 치고 있을까.
마침 그 피아노 학원의 창문이 보이는 자리에는 그늘이 드리워진 벤치가 하나 있었고 또 오래간만에 급한 일이 없어서 나는 한참 피아노 소리를 들었다. 얼굴 모를 그 수강생은 느리고 많이 틀리지만 성실하게 한 곡을 오래오래 쳤다. 그러고 보면 피아노 학원에서 이룬 성실함이 나로 하여금 하농, 체르니 30번 등을 떼게 만들었었지? 한때는 악보를 보면 그 즉시 그럴듯하게 연주를 해낸 적도, 콩쿨을 나간 적도 있었더랬지. 너무 좋은 노래가 있으면 악보나라 같은 사이트에서 악보를 뽑아서 혼자 연습을 할 때도 있었다. 그랬었다.
오래도록 쉬며 퇴화된 감각은 이제 악보를 읽어내는 데에도 한참 걸리게 하지만 매일 고꾸라지면서 시간을 쌓아 능숙해지던 기억도 흐릿하게 만들었다. 비록 열다섯 번 연주하고 스무 번의 빗금을 그으며 떡잎부터 누런 기질을 보였었으나 여하튼 그때는 성실했다. 능숙해지기 위해서는 시간을 쏟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째서 어른은 아이보다 게으르고 보다 쉽게 꺾이는 마음을 갖게 되는가. 잠시 후 피아노 소리는 멎었다. 무겁지 않은 통탄을 쓸어 담아 벤치에서 일어났다. 반드시 시간을 쏟아서 글을 써야겠노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