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밈혜윤 Feb 16. 2023

[하루의기적] 부끄럽고, 사랑하고, 여러 마음들.

오늘은 수요일?

   1. 바람이 뺨을 치대는 길을 걸으면서,

   친구들과 하는 팟캐스트 녹음을 마치고 집으로 걷고 있었다. 전에 하던, 마음의 건강을 다루던 팟캐스트는 접었다. 새로운 구성원을 꾸려서 이런저런 것들의 유래를 소개하는 새로운 팟캐스트를 열었다. 그게 어느덧 시즌1을 마쳤다. 휴식 없이 새로운 시즌의 문을 열 예정이고, 팟캐스트를 함께 하는 우리는 견고하고 건강하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팟캐스트의 미래를 섣불리 점치거나 낙담하려 들지 않는다. 마치 뭘 해도 즐거웠던 대학생 때처럼.


   나는 고요히 견고해졌다. 나의 미래가 무저갱으로 한없이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미래는 그저 알 수 없는 것. 미래를 한 치의 오차 없이 계획하려 드는 것도, 온갖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며 미리 무릎을 꺾는 것도, 그저 잘될 거라며 난 데 없는 자신만만함을 갖는 것도 모두 골라서는 안 될 오답 선지다. 오래도록 고민한 '잘 사는 비법'이란 짐작할 수 없는 변수가 계속해서 끼어드는 흐름에 적응할 뿐이란 걸 돈오頓悟했다. 서른하나의 어느 겨울밤이었다.  


   봄은 언제 오나 싶게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홍대 거리를 걷다가 내가 고요해지기까지 지나온 무수한 생각과 시간이 떠올랐다. 그때의 불안하고 유약한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저질렀던 여러 언행들도 생각났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지만 좋은 사람은 아닌, 지독히 평범하게 못난 사람이었다. 못난 부분조차 평범하다는 사실은 이상하게 내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그리고 나는, 그 상처를 보이고 싶어 안달이 나서 내 불안과 혼란을 방패처럼 들고 타인을 흠집 냈다. 부끄러웠던 마음들. 너무 부끄럽고 미안해서 나는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걸었다.


   2. 토끼를 키운다.

   부모가 되어본 적이 없어서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내리사랑이 뭔지도 알 길이 없었다. 토끼를 거둬 키우면서 그 마음을 대략 가늠해 볼 수 있다. 너를 사랑한다고, 정말이지 벅차게 사랑한다고 감히 말할 만한 사랑을 내 토끼에게 처음 느꼈다. 조그맣고 보드라운, '이것도 발톱인가? 이것도 이빨인가?' 하고 궁금증을 갖게 만드는 것들을 달고 있던 생명체. 까만 눈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그것에게 나는 일순 이해받는 기분을 느꼈다. 나는 나도 지킬 수 없는 사람이지만 너만은 꼭 내가 지켜주마고 약속했다.


   그것에게 시간이 많이 흘러도 결코 촌스럽지 않을, 멋지고 귀여운 이름을 붙여주고 싶어서 우리는 학교 게시판을 통해 이름을 공모받았다. 여러 후보 중에 가장 어울리는 이름을 골라 붙였다. 흑임자. 그것은 이름에 걸맞게 나이를 먹을수록 몸통과 꼬리가 까매졌다. 그것의 쪼끄만 콧구멍으로 새어 나오는 숨을 느낄 때, 뜨끈하고 약간 떡진 뒤통수를 쓰다듬을 때, 나는 내가 그것을 벅차게 사랑한다고 확신했다.      


   무언가를 벅차게 사랑한다는 건 나를 끊임없이 시험대에 올리는 일이다. 그것이 귀여운 얼굴로 하는 기상천외한 일들을 화내지 않고 감당하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택배나 물건을 다 갉아놓는 것까지는 참을 만한데, 거의 하루 걸러 하루마다 이불에 오줌을 싸재끼는 만행은 그야말로 '뚜껑이 열리는' 경험을 향유할 수 있다. 이불에 오줌을 싸는 이유는? 새벽에 우리가 깊이 자느라고 본 토끼가 원하는 만큼 쓰다듬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행성 인간과 야행성 토끼 서로가 억울한 상황이다.


   새벽에 막 짜증을 냈다가도 토끼의 억울함을 생각하면서 자기반성 속에 풀이 죽는 게 그것을 사랑하는 나, 그리고 동물과 아기를 거둬 키우는 자들의 피치 못할 숙명이다. 짜증이나 화를 내놓곤 그것의 까만 눈이 어쩐지 시무룩해 보였다는 둥 내가 너무 심했다는 둥의 생각을 하다가 그것은 알아듣지도 못할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내가 미안해, 그런데 네가 오줌을 갈기는 시간은 우리가 코-하는 시간이거든, 그래서 짜증이 나서 그랬어, 그래도 내가 사랑해? 울 애기도 누나 사랑하지? 울 애기 누나 사랑하면 오줌 그만 싸줄 수 있어? 아니야 아니야 오줌 싸도 누나가 사랑해!...


   지가 잘못했거나 말거나, 내가 뭐라고 지껄이거나 말거나 깊이를 알 수 없는 까만 눈으로 나를 지긋하게 바라보는 그것은 때로는 머리가 지끈하고 때로는 울분이 울컥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것은 내가 그것을 진심으로, 벅차게 사랑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토끼별로 떠나는 날이 오면 나는 눈물을 와락 흘릴 것이고 내 일상은 벼락 같이 무너질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상상에 과몰입해서 벌써 조금 울었다. 그것을 잃을 날이 벌써 두렵다.


   그래도 아마 나는 곧 일어나리라. 내가 너무 힘들어하면 내가 사랑한 그것이 슬플지도 모르니. 너무 슬퍼서 토끼별에서 친구를 사귀지도, 뛰어놀지도 못할지도 모르니. 나는 그것의 행복을 위해서 그것을 떠나보낸 뒤에도 씩씩하게 살 거다. 뭔가를 너무 사랑하면 그게 부재할 때조차 애쓸 수 있다는 걸 배운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툰 피아노 소리가 살랑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