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수요일?
청춘을 사랑한 자몽이의 역사
나는 자몽이다. 자몽이란, 자우림의 팬들을 이르는 말이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꼬박 18년을 자몽이로 살았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무언가에 마음 빼앗겨 살아본 경험은 스스로도 낯설다. 심지어 그 대상이 역사의 뒤안길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지 않고 현재도 왕성한 활동을 보인다는 것은 뭐랄까, 이상하게 울컥 끓어오르는 깊은 애정을 바치게 만든다.
인생의 너무나도 많은 것들은 우연이 이끈다. 내가 자몽이가 된 것도 기 막히게 우연한 사건이었다. 내가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저작권의 개념이 아주 희박했다. 소리바다, 4shared.com 같은 홈페이지에서 노래를 다운로드하여 듣곤 했다. 무슨 노래가 있는지도 모르고 대충 알집 파일을 다운 받아서 mp3에 쑤셔 넣는 개념이었다. 나는 주기적으로 음악 파일을 다운 받아서는 컴퓨터에서 미리 들어보지도 않고 mp3에 넣은 뒤 길을 걸어 다니며 들었다. 맘에 드는 노래는 남기고 아닌 노래는 삭제했다. 아마 내 생에 가장 폭넓은 분야의 노래를 들어본 때인 것 같은데, 그렇게 자우림의 노래를 만났다. 그때 다운로드하였던 목록에 자우림의 노래는 단 두 곡 섞여 있었다. 낙화. 새.
자우림의 노래는 커다란 문화 충격을 안겨줬다. 그때만 해도 내가 들어본 가요란 아이돌의 노래들 뿐이었다. 청량하고 달콤한 고백을 일삼는 아이돌의 노래들은 가볍고, 신이 나고, 세상엔 그런 녹여먹는 사탕 같은 일만 존재할 것 같았다. 모두들 잠든 새벽 세 시에 홀로 옥상에 우뚝 서서 사실은 좀 더 살고 싶었다고 울부짖는 류의 노래는 처음 들어본 것이었으며 앞으로도 들어볼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들려오는 가사에 깜짝 놀라서, 내가 맞게 듣고 있는 건지 확인하고자 다시 재생했다. 분명히 맞게 듣고 있었다. 이런 노래도 있을 수 있구나.
놀란 마음으로 가수 이름을 확인한 나는 목록을 이리저리 내려 ‘새’를 재생했다. 소리바다가 뭔지, mp3는 뭔지 잘 모르는 세대를 위해 덧붙여 설명하자면 그 당시 다운받은 알집 파일은 노래 순서가 엉망진창으로 들어가 있었다. 가수 이름 순도 아니고, 제목의 가나다 순도 아니고, 그냥 아무렇게나 긁어모은 대로. ‘새‘를 듣고는 한결 더 놀라고 말았다.
피 흘리는 새를 선물하는 사이코 같은 노래가 정녕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었나? 존재해도 되는 것인가? 사춘기를 맞닥뜨리고 있던 13세의 마음은 아까까지 듣고 있던 동방신기고 뭐고 자우림이라는 가수를 좀 더 알고 싶어졌다. 불법 다운로드(언니, 형들 미안해 그땐 내가 잘 몰랐어) 사이트를 뒤져 여러 가지 음울하고 충격적인 노래를 들었다. 밀랍천사, 파애, 애인 발견!!!, violent violet, 죽은 자들의 무도회, 마왕, 그래 제길 나 이렇게 살았어 등등. 셀 수도 없는 노래들이 하나 같이 충격을 선사했다. 특히 김가만세라는 노래는 유독 뼈 아프고 징그럽게 다가왔다. 피아노 학원으로 걸어가다가 소변이 급해 화장실을 찾아 들어갔던 상가에서 어떤 아저씨가 내 엉덩이를 주물럭거린 기억이 으스스하게 떠올랐다.
자몽이의 성장과 눈물
어린 청소년이 그런 심오하고 날 것의, 잔혹하기까지 한 가사들을 들어도 되는가의 문제는 차치하겠다. 내가 팬이라서 편드는 게 아니라 자우림 형들도 어린애 들으라고 만든 노래는 아닐 테니까. 내가 말하는 충격은 부정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세상에 이런 노래도 있을 수 있다니,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된다니! 경탄에 가까운 충격이었다. 보다 오타쿠스럽게 말해보면 세계관의 확장이었다. 세상은 아이돌의 노래 같은 달콤한 천국인 줄만 알았던 만 13세는 지저분한 세상을 직시하게 됐다. 그럼에도 세상과 사람을 마냥 미워하진 않았다. 형들이 가슴을 열어두고 하! 하하! 웃으라고 했으니까. 이 세상엔 아름다운 사람들이 이렇게도 가득가득 많고 많다고, 너무 착한 사람들은 내가 지켜줄 거라고 말했으니까.
그렇게 자몽이는 커가면서 10대 때는 이해하지 못한 채로 <샤이닝>을 들으며 울었고, 20대 때는 드디어 뭔가 가닥을 잡으며 <샤이닝>과 <팬이야>, <슬픔이여 안녕>을 들으며 울었다. 20대 후반부터 30대 극초반까지 <영원히 영원히>의 가사를 오래도록 인스타그램 소개 글에 걸어두었다. 걸어뒀던 글은 “별을 헤며 어느 밤에 나누던 꿈들”. 나는 막차 시간이 넘도록 술을 마시면서, 또 담배 피우는 사람들, 토하는 사람들이 즐비한 새벽의 대학가 골목을 벗하여서 친구들과 별 웃기지도 않는 개똥철학을 끝도 없이 토로하는 멋진 20대를 보냈다. 한때 미디어에서 소비하던 낭만만 있고 대책은 없는 대학생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때 나는 분명히 친구들과 꿈을 나눴던 거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달이 엄청 크다, 호들갑을 떨면서 우리는 어떤 게 올바르고 그른 삶인지를 말했다. 나는 그렇게는 되지 않을 거야라던가, 그렇게 될 거야 같은 말을 정말 많이 했다. 술에 취해 걸어 다닌 골목 담에 부서져 사라졌던 얘기들은, “별을 헤며 어느 밤에 나누던 꿈들”이란 가사를 통해서 낭만으로 재창조되었다.
30대 자몽이는 작년에 처음으로 자우림 콘서트를 갔다. 이것 또한 우연인데, 같이 자몽이를 자처하는 친구 B가 콘서트 좌석 두 개를 잡은 사실을 어쩌다 알게 되었고 내가 그 기회를 낼름 잡아챘던 것이다. 내가 사랑했던 노래들을 내가 아직도 사랑하는 밴드가 라이브로 들려줬다. 윤아 언니는 나이가 무색하게 빛이 났고, 입 안에 우주가 있는 것 같았다. 이제는 적법하게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돈을 내고 음악을 소비하게 된 30대 자몽이는, 핸드폰으로 들을 때는 단 한 번도 눈물 흘린 적 없었던 <있지>를 들으며 콘서트장에서 흠뻑 울었다. 윤아 언니는 <있지>를 부르기 전에 말했다. 인생은 모두가 똑같이 평생 의심하면서, 그런 스스로를 다독여가면서 사는 거라고.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나를 의심해야 하나 앞이 캄캄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나 그렇구나, 정말로 인생은 평등하구나. 안심하며 눈물을 흘렸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18년의 기나긴 애정은 정말로 자우림을 향한 것이었는지, 자우림의 노래들에서 긁어낸 부스러기를 풀칠해 덕지덕지 붙여 만든 내 청춘이었는지. 무어라도 좋다. 내 삶은 자우림을 좇는 그림자였다고도 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직도 청춘 타령을 하는 뜨내기일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가난하고 의심하고 눈물 흘리는 내 마음을 쪼물락대며 청춘을 빚어가고 싶다.
참, 불과 두 달쯤 전 30대 자몽이는 야심 차게 이대 삼성홀에서 진행될 갓윤아의 콘서트를 예매 성공했었는데 삼성홀에 화재가 나는 바람에 티켓을 취소당했다. 이후 연세대학교에서 진행된 콘서트는 예매를 실패하고 말았다. 마음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억지로 가슴을 열었다. 하! 하하!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