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수요일?
20세 끝무렵에 라식 수술을 했었다. 고3 때 첫 수능을 말아먹은 덕분에 재수를 했고, 두 번째 수능을 마친 지 얼마 안 된 때 안과를 찾았다. 수시에 붙어서 입시 결과는 12월에 난 참이었다. 2월 말에 있는 입학식 전까지 기다림 외엔 할 일이 없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시고, 가보고 싶던 이대와 홍대 거리, 대학로를 쏘다녀도 시간은 쉽사리 발을 떼지 않았다. 어리고 젊은 시절엔 시간이 천천히 흐르지 않는가. 안과 방문은 미루고 미루던 귀찮은 일이었지만 궁둥짝을 굳건하게 붙이고 있는 시간의 지루함에 비교하면 차라리 반가웠다.
당시 내 시력은 형편없었다. 안경을 벗고 팔을 쭉 뻗으면 내 손가락도 보지 못할 정도였으니 두더지가 따로 없었다. 당시엔 안경 맞추는 데 상당히 돈이 많이 들었다. 압축이라도 한 번 하면 가격이 냉큼 몇 계단씩 뛰어오르는 기분, 그래서 엄마 눈치를 슬쩍 본 기억이 난다. 한국 안경값이 싸다 싸다 해도 물가가 두 배 가까이 오른 지금보다 그때가 더 비쌌다. 두더지는 근시가 심했다. 약간의 난시도 있었다. 둘 다 보정하면 안경 렌즈가 매우 뚱뚱해졌다. 그대로 쓰기엔 안경이 너무 무거워서 압축을 두 번인가 세 번을 했다. 그래도 콧잔등이 시멘트 지게를 짊어진 것 같았다. 안경을 끼면 눈이 콩알만 해졌다.
그 안경을 벗고 또렷한 인상을 주고 싶어서 라식 수술대에 올랐다. 요즘 라식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11년 전 수술도 간단했다. 수술방에 들어가면서 몹시 무서웠다. 나는 내 손으로 인공눈물도 못 넣던 겁쟁이 20세였다. 눈을 가볍게 마취하기 위해서 안약을 똑똑 떨어뜨려야 했는데, 겁을 집어먹은 내가 자꾸만 눈꺼풀을 감았다. 간호사 언니는 난감해하다가 의사를 불렀다. 한 명이 내 눈꺼풀을 벌려 잡은 채 다른 한 명이 약을 넣는 식으로 마무리되었다. 수술은 정말로, 굉장히 간단했다. 나는 초록 불빛만 보고 있으면 됐다. 초록 불빛은 이쪽저쪽에서 깜박거렸다. 나는 빛을 따라 시선을 굴렸다.
눈을 고정해야 했던 작은 돔 형태의 수술 기구 안에는 초록 불빛 말고도 빨간 불빛이 은은하게 반짝였다. 실수로 빨간 걸 보면 수술이 망하고 나는 눈을 잃어버리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조금 불안에 떨었다. 의문을 입에 꺼내진 않았다. 의사의 집중을 흩뜨리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진 않았다. 고요히 누워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각막을 예쁘고 정교하게 깎아내는 건 의사의 몫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초록빛만 좇다 보니 5분도 안 되어서 수술은 끝났다. 30분간 회복실에 누워있다가 나온 뒤에도 눈이 조금 시큰하고 시야가 흐렸다. 눈이 나쁜 나에게 시야가 흐린 건 익숙한 일이어서, 나는 능숙하게 대중교통을 타고 집에 갔다.
11년간 내 시력은 1.0을 찍었다가, 0.8로 조금 내려갔다가, 양안 아슬아슬한 0.7 언저리에 머물러 있었다. 부작용이란 것도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몇 달 전부터 급격히 빛 번짐이 심해지고 밤에 보이는 게 잘 없어서 이게 말로만 듣던 부작용인가 싶었다. 점점 형태 말곤 보이는 게 없어서 밤에만 쓰려고 안경을 맞추러 갔다. 시력 검사를 했다. 오른쪽 눈이 0.7, 왼쪽 눈이 0.3이 나왔다. 부작용은 무슨... 그냥 눈이 나빠진 거였다. 화타가 환생해 수술을 집도했어도 눈이 다시 나빠지는 걸 막을 방도는 없었을 것이다. 대체로 건조한 상태에, 자는 시간 빼고 스마트폰에 눈을 처박고 있으며, 심지어는 밤에 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폰질을 했으니 그럴 만도. 간단히 납득했다.
안경을 다시 맞추면서 되려 저렴해진 가격에 놀랐다. 티타늄 안경테에 근시 교정 렌즈, 거기에 압축 한 번, 블루라이트 옵션까지. 이 모든 게 10만 원 언저리였다. 눈 관리를 잘했다면 쓰지 않아도 됐을 돈이다만, 눈을 새로 얻은 것 치고는 싸다(정신승리 중임).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눈 수술을 또 할 것인가? 당연하다. 11년 동안 얼마나 편하게 살았는데. 안경은 아무리 가볍게 맞춰도 콧잔등이 불편하고 렌즈 가장자리의 왜곡이 어색하다. 내 각막은 남들보다 통통하다고도 했고, 11년 동안 기술이 많이 발전했을 테니 분명히 두 번째로 가능한 수술이 있을 테지. 두 번째 수술엔 경력직답게 한 번에 마취 안약을 똑똑 넣어 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