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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수화물과 질 좋은 작업의 관계

오늘은 수요일?

by 밈혜윤

탄수화물 더 먹으래!

쉬고 있던 운동을 재개했다. 목표는 주 2회 PT , 주 2회 개인 운동, 도합 주 4회 운동이었다. 아무래도 노예근성이 낭낭한 인간이다 보니 개인 운동은 언제 그런 게 있었냐는 듯이 할 일 목록에서 지워졌다. 개인 운동이 사라진 일간, 주간 일정표는 조화로운 편이다(?). 운동이란 게 원래 있는 힘과 시간을 쥐어짜서 해야 하는 일이다 보니 빠지는 쪽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고 할까.


현재 운동의 목적은 몸의 균형을 회복하는 데 있다. 하도 다리를 꼬고 양반다리를 해대서 골반이나 허리에 무리가 갔을 것 같아 수정한 목표다. 과거에는 목적이 다이어트였다. 그다음은 근 성장이었으며, 지금은 몸의 균형에 이르렀다. 같은 사람이 같은 운동을 해도 목적은 계속 달라진다. 그게 삶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니까.


다행히 골반이 틀어지지는 않았다. 양쪽 다리를 공평하게 꼬아낸 덕분인 것 같다. 이런 비과학적인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설마 없겠지. 다만 가동 범위가 매우 좁았다. 발목이나 무릎, 몸통, 어깨 등… 일상적으로 늘 쓰는 곳이라 어지간하면 잘 쓸 수 있겠지, 하는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내 몸은 특정 방향으로는 거의 힘을 쓸 수도 없고 많이 움직일 수도 없었다. 당분간 나의 숙제는 가동 범위를 넓히고 힘을 기르는 것이다. 가동 범위를 늘리기 위해서 무게가 필요하다. 무게를 올바른 부위에 실어주기 위해서 가동 범위를 늘려야 한다. 말장난 같아 선웃음이 나기도 하는 순환이다.


트레이너는 내 식단을 물었다. 다이어트나 바디 프로필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데도 왠지 긴장되는 순간이다. 약간의 msg를 쳐서 모범적인(척하는) 나의 식단을 줄줄 읊었다. 트레이너는 멋진 등을 갖고 싶냐고 다시 물었다. 운동의 품질을 올리고 싶다면 탄수화물을 더 먹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나는 몸의 균형을 잡으면서 근육을 키우는 겸, 체중도 줄일 겸 탄수화물을 반으로 줄인 참이었다. 진짜로 탄수화물 더 먹어요? 그럼 살찌지 않아요? 트레이너는 단호히 답했다. 당연히 라면은 드시면 안 되죠. 젠장, 물어보지 말걸.


품질 좋은 작업

일명 탄단지, 탄수화물과 단백질과 지방을 고루 맞춰주지 않으면 원하는 운동의 폼이 나올 수가 없고 그러면 멋진 몸을 갖기는 요원해진다고 트레이너는 강조에 강조를 거듭했다. 웨이트를 할 때는 탄수화물을 태우면서 힘을 쓴다고 한다. 음식물 섭취한 지 서너 시간 이상이 지나 힘이 없어서 운동이 어려워지면 중간에 이온 음료를 한 번 마셔주는 것도 좋다고 어디서 주워들은 것 같다.


여하튼 탄수화물이 고품질 운동에 기여한다는 말, 그리고 나는 탄수화물을 더 먹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 충격은 생겨먹기를 진지충인 내가 다시금 진지충 모드가 되어 인생에 대해 고찰하게 만들었다. 좋은 아웃풋은 좋은 인풋에서 나온다는 당연한 사실에 대해서. 그나저나 영어를 쓰고 싶진 않은데 아웃풋, 인풋의 적절한 대체어를 찾지 못하겠다.


고품질의 좋은 결과물은, 시간을 많이 들이면 높은 확률로 생겨난다. 얄궂게도 꼭 시간을 들인다고 질 좋은 결과가 생겨나는 것만은 아니다. 좋은 결과물을 내는 데 꼭 필요한 건 한계의 인식이다. 한계만큼만 시간을(혹은 자원을) 썼을 때 최대 효율이 나는 탓이다. 시간만이 문제는 아니다. 작업의 양 역시 문제가 된다. 나는 여러 가지를 동시다발적으로 하는 일엔 취약하다. 한두 개만 골라서 ‘조져야’ 한다.


스스로의 한계를 잘 안다고 자부했으면서도 지키질 못했다. 근래 벌린 일이 너무 많았다. 운동, 공부, 반려동물 sns 관리, 팟캐스트와 브런치까지. 팟캐스트는 격주에 한 번, 브런치는 내킬 때 업데이트를 하는 주제에 이마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니 숨이 턱턱 막혔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의욕과 조악한 결과물, 부족한 시간에 헉헉대면서 매일 울다가 깨달았다. 나의 한계를 넘어서 몰아붙인 게 패착이었다. 모든 걸 죽도록 할 필요는 없었다.


질 좋은 작업물은 가지치기에서 나온다. 한계를 넘는 것을 조정해야 한다. 마음은 모든 일에 쏟되, 열과 성을 다해야 할 일은 내겐 공부 하나란 걸 단단히 잡았어야 했다. 지금 내 인생에 가장 높은 품질을 요구하는 건 그것 하나다. 운동과 팟캐스트, 브런치, 반려동물 인스타 모두모두 열심히 하고 잘 풀리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겠지. 누군가는 그 모든 걸 척척, 힘든 기색도 없이 잘 해낼 거다. 나는 아니다. 애초에 공부와 운동을 제외하면 모두 가벼운 취미였다. 가동 범위가 안 나오는데 자꾸 묵직하게 무게를 더하려고 하니 버텨낼 리가 있을까. 가지치기를 했다. 안 하게 된 일은 하나도 없지만 결과의 강박을 여기저기에서 덜어냈다. 훨씬 느슨해지고 즐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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