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반응에 도리어 어안이 벙벙했다.
우울증. 정신과. 복약. 이 세 키워드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썩 신나고 희망차고 긍정적인 느낌은 아닐 것이다. 위의 세 키워드를 두루 갖춘 사람을 대할 때 조금 더 조심해야겠다거나 걱정되는 마음이 들지 않을까? 그리고 그게 가족이라면 더더욱.
상담, 정신과에 다소 폐쇄적인 사람이면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고 다그칠 수도 있으리라. 상담이나 정신과에 아직도 폐쇄적인 분위기의 한국에서 2030의 부모 세대 중 상당수는 자녀가 우울증이라고 고백했을 때 너무나 놀라고 걱정되는 마음에 야단치듯 '정신 똑바로 차리고 약에 의존하지 말라'고 말해버리기도 한다. 나는 우리 엄마가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엄마아빠에겐 알리고 싶지 않았다. 당연히 좋은 소리 못 들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 부모님은 은근히 열린 편이라 상담 정도는 마음이 괴로우면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셨다. 그럼에도 정신과 상담이나 정신과 관련 약의 복용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왔다(고 생각했다). 병원 상담과 복약이 2개월 이상 지속되었음에도 관련해서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건 안 그래도 힘든데 부모의 부정적 반응까지 버텨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괜찮아, 나는 강해라고 보여주고 싶은 탓도 있었다. 나는 충분히 강하고 괜찮으니까 부모님이 나한테 신경쓰거나 간섭할 필요 없다고 입증하고 싶었다. 부모에게 입증하고 싶었는지 스스로에게 입증하고 싶었는지 명확히 짚어내기 어렵다. 아무튼 나는 정체 모를 누군가에게 입증하려고 악착 같이 입을 닫고 있었다. 동시에 관심과 지지를 받고 싶기도 해서 부모님을 제외한 가까운 친구들에겐 알렸다. 가까운 친구들이 대수롭지 않게 넘김으로써 강력한 응원과 지지를 드러낼 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부모님도 저렇게 반응해줬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사실 나는 강하지 않았지. 어느 날 가족이 모여 밥을 먹다가 정신과 복약 관련 얘기가 나왔다. 아빠는 약의 의존성을 이유로 들며 매우 부정적이었다. 다른 방법을 충분히 시도해야지 바로 복약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두 달 이상 잘 버텼던 나는 그 한 마디에 속절 없이 무너졌다.
나는 성실근면이란 말을 사람으로 빚어놓으면 우리 아빠라는 농담을 종종 했는데, 모든 걸 충분히 공부하고 알아보고 노력하는 아빠다운 말이었다. 아빠의 그 말이 나는 왜 그렇게 아프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꼭 나를 찌르는 말 같았다. 내가 힘들 때에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말,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을 들어야 하나? 단전에서부터 반발심이 치솟았다. 반발심이 치솟는 한편으로 괴상한 괴로움과 외로움을 느꼈다. 난 또 다시 아빠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어, 늘 부족하지 나는. 그런 앞서나가는 생각을 하면서 슬픔이 시시각각 명치로 넘어가는 걸 느꼈다. 태연한 척 하려고 했지만 이미 터진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서 식당 옆 골목에서 한참 울었다.
물론 부모님은 두 분 다 많이 놀랐다. 내가 성인이 된 이후로 아빠와 나는 소통의 과정에서 갈등이 많았다. 서로의 말을 뾰족하게 듣곤 해서 대화할수록 문제가 생겨난 적도 많았다. 그런 탓에 엄마는 나와 아빠가 말하게 두지 않고 먼저 나를 방으로 불렀다. 엄마랑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시시각각 깨달아갔다. 실은 엄마에게 내가 얼마나 힘든지 말하고 싶었다는 것을. 또 엄마에게 위로 받고 응석부리고 싶었다는 사실을. 그 순간을 기회 삼아 괜찮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다.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어 어색하고 이상한 느낌이었다.
엄마는 채근하지 않았다. 의외로 엄마는 '네가 왜 힘들어?'라거나 '젊은 애가 마음을 굳게 먹고 과거는 돌아보지 말고 미래로 나가야지' 같은 말을 하지 않았다. 엄마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내가 바랐던 모습으로 내 말을 들어줬다.
이유는 잘 모르지만 사는 게 그냥, 정말 그냥 버거울 때가 있다는 말을 했다. 미래에 궁금한 것도 아쉬운 것도 하나도 없는 느낌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당장 눈을 감고 영원한 잠에 들어도 억울하지 않다고, 죽음은 하나의 '옵션'같다고 나는 계속계속 말했다. 별 감정은 없이 나의 상태를 서술하는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미 내 옷은 뚝뚝 떨어진 눈물로 흥건했다. 눈물을 훔치고 맑은 코를 닦아내면서도 알 수 없었다. 왜 이렇게 오열하고 있지. 엄마는 왜 혼내지 않고 가만히 듣고 있지. 심지어 엄마도 우네...
엄마는 같이 울었다. 나를 혼내지 않았다. 내가 약해서 그런 거라고도 하지 않았다. 방황하는 내 마음이 안타깝고 걱정된다고 말했고 너무 힘주고 사는 것이 어릴 때 엄마가 너무 몰아대서 그런 것 같다고, 엄만 자책하고 미안하다고 했다. 엄마의 사과를 들으려던 건 아니었지만 엄마가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도 못해서 나는 어안이 벙벙하기까지 했다. 엄마가 나랑 같이 울어주었을 때, 내 이야기를 그저 수용해주었을 때... 나는 직장인들의 사직서처럼 가슴 한 곳에 늘 품고 다니던 죽음이라는 옵션을 지웠다. 뒤늦게 응석 부리면서, 엄마의 걱정과 사랑을 듬뿍 느끼면서, 혼날 걱정하지 않으면서, 그냥 그렇게 엄마랑 살고 싶다고 느꼈다.
물론 후회했다. 엄마와 같이 울고 불고 하면서 편해졌나 싶다가도 내 마음은 변덕을 부렸다. 엄마에게 응석부리고 싶어 실컷 말하고 울어놓곤, 엄마에게 말한 게 극심히 후회됐다. 너무 가감 없이 내 우울과 무기력을 말한 것 같았다. 엄마가 내가 떠난 집 곳곳에서 혼자 깊은 자책의 무한 궤도에 빠질까 봐 걱정이 됐다. 자책 속에 엄마 마음이 시들어버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엄마가 내게 준 것만큼 위로를 내가 줄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생각은 아직도 정리되지 않았다. 어떻게 결론을 내리면 좋을지 잘 모르겠다. 딱 하나 정한 게 있다면, '엄마가 우울할까 봐 걱정하면서 내가 우울해지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즐겁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음가짐의 값을 잘 유지하면 엄마 역시 슬프지 않아도 되니까.
내게 적절한 값을 찾기 위해 지루하고 기나긴 도움닫기를 해야 하지만 과정 속에 나를 지지해주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오늘도 느리게 달린다. 당신의 한 마디가 나를 살고 싶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