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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밈혜윤 Nov 03. 2021

[긴낮짧밤]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땐 ‘하루 한개만’

우울 타파하기 스텝 1

   생각이 너무 많아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면? 뭐 하나를 하려고 해도 시작부터 열 수 앞쯤 내다보느라 분주하고, 이게 별로니 저게 별로니 따져보다가, 부딪치게 될 난항들을 생각하다가, 실제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방전된다면?


   ‘뭐야, 그렇게 피곤하게 사는 사람이 있어?’하고 놀란 당신은 행운아. ‘뭐야 내 얘기잖아?’하고 놀란 사람은 필독. 숨쉬는 것 빼고 모든 게 지독하게 피로하게 느껴져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오면 속는 셈 치고 따라해보길 권한다.


   물론 누구에게도 그런 힘든 시기가 오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누구든 삶은 예측 불가능하고 정말 싫은 것들을 견뎌야 하는 때가 오기 마련이니까, 불가피하게 그런 시기가 온다면 마음이 잘 갈무리되길 바란다. 내가 피로하고 무기력한 스스로를 견뎌낸 확실한 방법을 하나 소개한다.


   세상에 마상에,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어떻게 하루에 한 개만 하고 살아? 이 글을 꼭 읽어야 할 사람들, 그러니까 핸들을 잃어버린 8톤 트럭처럼 앞서가면서 폭주하다가 생각만으로 피로해져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은 거의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다.


   내가 그랬다. 할 일이 너무너무 많아서 그걸 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계획을 짜다가 지쳐버렸다. 엄밀히 말하면 큰 범위의 계획만 짜야 했는데 갑자기 딴길로 엄청나게 새서 지치는 거였다. 대략적인 얼개를 짜다가 갑자기 하나하나의 세세한 계획에 집착하고, 단 하나의 세부 계획도 마무리짓지 못했지만 아직도 계획을 세워야 할 것들이 산처럼 쌓여있으니 항상 짜증이 나고 피곤했다. 계획도 온전히 짜지 못하는 사람이 수행은 다 할 리가 없다. 게다가 엄청나게 피로해져 있으니 할 방법이 없지. 그렇게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한 것들’과 피로는 쌓일 대로 쌓이면서 무기력해진다.


   위의 과정들이 패턴화되면, 다시 말해 무기력이 반복적으로 학습되면 어느 새엔가 계획 세우기를 포기하고 마는데, 그렇다고 무계획이 썩 즐겁지도 않다. 여태껏 하려고 마음 먹은 것들이 찝찝한 잔여물로 남아있고, 나는 결코 끝낼 수 없으리라는 생각과 ‘내가 마음만 굳게 먹으면 언제든지 할 거’라는 이상한 자신감이 양립하면서 기분을 아주 변덕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울과 무기력이 극에 달했던 그 시기에 동생이 내게 권한 건 ‘딱 하나’의 목표였다. 딱 하나만 목표를 세우는 대신 매일 반드시 지키고, 지켰다는 표시로 스티커를 붙이는 것.


   그 얘기를 처음 듣고난 내 감상은 이랬다. ‘아니 세상에 마상에,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계획을 딱 하나만 세우고 스티커를 붙여?!’


   그게 되더라니까? 효과는 놀라웠다. 속는 셈 치고 동생의 말을 따라보기로 한 나는 ‘딱 두 개’의 목표를 세웠다. 와중에 과다 계획에 중독된 탓에 하루에 하나만 목표로 잡지는 못했다. 내가 계획으로 세운 건 매일 마그네슘 챙겨먹기와 플랭크였다.


   왜 하필 플랭크였냐고? 그건 그냥 내가 확찐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먹는 건 행복했지만 불어난 내 턱살과 배는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넉넉해진 풍채를 불만족스럽게 쓰다듬다가 섬광처럼 스친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냅다 거실에 엎드려 땀을 뻘뻘 빼며 플랭크 30초를 했다. 기분이 좋았다. 성취한 자의 상쾌함은 아주 오랜만에 느꼈다. 그리고 35일의 계획지에 플랭크를 적었다. 머뭇대다가 마그네슘 먹기도 넣었다.


   출퇴근만 간신히 하고 있을 때, 읽으려던 책을 못 읽고 나가려다가 산책을 포기했을 때……. 결국 또 아무 것도 안 했다는 생각이 시작될 때면 나는 다시 거실에 냅다 엎드렸다. 그렇게 30초를 끙끙 버티고 시뻘개진 얼굴로 일어나면 나를 향해 다가오던 비난은 수증기처럼 흩어졌다.


   시간은 쌓여요. 30초를 겨우 버티던 플랭크가 35초가 되고 40초가 되고 마침내 1분까지 버틸 수 있게 되었다. 35일에 걸친 플랭크와 영양제 여정은 매일 나를 향했던 분노와 적개심 역시 습관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게 했다. 단 하나(물론 나는 두 개ㅎ)의 목표를 이루고 칭찬스티커를 붙이면서, 칭찬스티커가 연달아 붙은 계획지를 보면서, 증오하지 않고도 나 자신과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몇 번이나 놀라워했다. 그런 당연한 사실을 느껴보기까지 나는 얼마나 헤맸던가.


   게다가 부수적인 효과도 있었다. 집에서 5분 남짓한 지하철 역에 가는 것만으로 지쳐있던 내가 이제는 지하철 환승지점에서 가뿐하게 뛰기도 한다. 플랭크 외의 운동은 일체 하지 않았음에도 35일의 몇십 초들은 차곡차곡 쌓여 티가 난다.


   살은 좀 빠졌냐고? 아 글쎄, 살 빼려고 플랭크한 건 아니라니까! 아무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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